UPDATED. 2024-04-26 06:40 (금)
 실시간뉴스
‘로마의 방랑자로 살다’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의 성지순례기
‘로마의 방랑자로 살다’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의 성지순례기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1.03.10 13: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첫 여성 로펌 대표이자 첫 여성 법무부 장관, 첫 여성 서울시장 후보. 모두 그이에게 붙었던 화려한 수식어다. 지난 2008년 아무 미련도 없는 듯 정치권을 훌훌 떠나버렸던 그이는 변호사로 바쁜 나날을 보내던 중 이탈리아 가톨릭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7년 전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해오던 그이가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을 비롯해 성 프란체스코의 아시시 일대를 다녀온 것이다. 순례하는 동안 매일 미사를 드리고 성경을 확인하고 또 걷고 생각하는 동안 그이는 어느 때보다 내면을 성찰하고 신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되었다.

눈으로 담고 마음으로 기도하며 걷다
변호사로 일하는 동안 그이가 꼭 하고 싶었던 일은 공부였다. 학창시절부터 정치활동을 하는 기간까지도 시간을 내어 제대로 공부할 여유 없이 살아왔기에 그이는 2008년 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에서 수업을 받았다.
“대학원에서 ‘종교와 과학’, ‘생명과 영성’ 등의 강의를 들으며 한국의 정치사회구조의 틀에 갇혀 있던 사유의 범주를 우주와 전 지구적 차원으로 확대해 좌표를 재설정했어요.”
그이는 2004년 신앙을 갖게 된 것을 두고 “신 없이 살기에는 너무 불안해서 세례를 받았다”고 고백하며 당시 심리적으로 어려웠던 상태에서 신앙으로 큰 위로를 얻었다고 말했다. 이후 스스로 내면을 다스리는 힘을 갖게 되었던 그이에게 이번 순례는 세속적인 것에서 우주적인 존재를 발견하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순례여행을 다녀온 뒤 책을 쓰기 위한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제가 원래 여행을 떠나기 전 철저히 준비하고 가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무언가를 미리 알고 가면 선입견이 생기기 마련이잖아요. 더군다나 이탈리아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받은 인상과 영감을 마음에 주로 담아왔죠. 하지만 현장에서 느낀 단상만을 붙들고 글을 쓰려니까 여러 가지로 걸리는 것이 많더라고요. 이런저런 사정으로 미루다 2년여의 시간이 지난 지금에야 책이 나오게 됐내요.”
쉽지 않은 작업이었지만 그이는 책을 쓰기 위해 뒤척이며 고민했던 시간이 의미 있었다고 말한다. 순례여행에서 사회에 대한 근원적 의문을 해결하는 관점이 생겼고 예수와 사도들의 이야기를 더 공부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는 것. 더불어 신앙과 영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의 중요성을 가장 크게 깨달았다며 미소를 지어 보인다.
“순례를 다녀오고 책을 쓰면서 가톨릭에 대해 더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신앙이 깊어지려면 영성뿐 아니라 지성과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됐죠. 저의 순례기를 보는 모든 분들이 한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사람이 자기 삶의 고민을 담아서 보고 듣고 생각하고자 노력했다고 여겨주면 좋겠어요.”
가슴으로 걸어간 성지순례길
그이의 성지순례길은 로마, 바티칸시티에서 시작해 아말피, 수비아코, 피렌체, 시에나, 몬탈치노, 아사시의 순으로 이어졌다. 길 위에서 그이는 살아 숨쉬는 옛 성인들의 숨결을 느꼈고 각지마다 자리한 성지에서는 생명의 오묘함과 신의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을 경험했다. 신과 인간의 영역이 혼재하는 땅 위에서 그이가 느꼈을 그 모든 것들의 기록.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과 광장

‘원망과 분노가 존재하지 않는 안식처’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세요”. 6년 전인 2005년 4월, 이 말씀을 지상에 마지막으로 남기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제264대 로마 가톨릭 교황)가 선종했을 때,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 앞의 광장은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다양한 인종,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로 가득 찼다. 며칠 동안 밤낮을 쉬지 않고 조용히 기도하는 자세로 교황을 추모하며 서 있는 그들 사이에는 하나 된 평화로운 침묵이 감돌았다.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일어나는 이 세상의 싸움과 소란, 일그러진 얼굴빛의 원망과 분노는 거기 없었다. 나는 텔레비전을 통해 그 장면을 지켜보면서 참 색다른 감회를 느꼈다. 비록 일시적이긴 하나, 이 지상에 저 많은 세계인이 모여 평화의 일치를 이루는 장면이 저렇게 존재한다는 사실이. 바티칸의 광장은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고, 적어도 거기에서만큼은 삶의 지치고 힘든 피곤함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서 이 세상에 하느님의 평화를 이루고자 했던 사람들을 생각해보게 한다.
태초에 우리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며, 삶은 어떤 의미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인지. 베드로의 무덤 위에 교회를 세웠고, 이것이 그리스도교의 공식적인 시작을 기록하는 매우 중요한 종교적인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을 나는 로마에 와서야 비로소 알게 됐다. 무덤 위에 교회를 세운다는 것은, 예수의 죽음을 통해서 부활의 은총을 나눌 수 있듯이, 육체적 생명을 내놓아 죽음을 극복했을 때라야 비로소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져주는 듯했다.

성 알폰소 성당

‘사랑과 배반, 그리고 용서의 땅’
대성당을 순회하던 도중에 에스퀼리네 언덕 산타마리아 마조레 대성당과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 사이 길가에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는 성 알폰소 성당에 잠시 들렀다. 신 고딕 양식의 비교적 평범하고 자그마한 현대식 성당 분위기가 대성당들과 대조를 이루면서 나그네의 마음을 편안하게 안아주는 듯했다. 마침 날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할 무렵이라서 몸과 마음이 피곤해져 보금자리를 찾아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 성당은 1859년경 구속주회가 설립자인 성 알폰소 리구오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성당이다. 성당에 들어서니 입구 가운데 구속주 예수의 조각상이 서 있다. 포승줄에 묶인 채 가시면류관을 쓰고 피를 흘리는 모습이다. 얼굴 위로 점점 붉은색 피를 그려놓았고, 손이 묶여 앞으로 모은 채 서 있다. 이 조각상에서 보는 예수는 참으로 슬프고 담담하며 조용하다. 십자가에 못이 박혀 인류를 구속하는 그리스도 예수라기보다는, 아파서 피 흘리며 체념하고 다소곳이 잡혀가는 한 사람일 뿐이다. 그런데 이 조각상의 예수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긴 것 같다.
내가 가톨릭 세례를 받은 후 성경을 읽으면서, 예수가 숨을 거두기 전에 남긴 말이 ‘용서’라는 사실을 알고서도 경이로움을 느꼈다. 저렇듯 수치스러운 죽음을 당하면서 그 모욕을 어떻게 견뎠을까 하는 의문에 대해 예수의 대답은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였다. 자기의 목숨을 앗아가는 사람들과 세상을 향해 생명이 끝나 가는데도 용서를 구하는 것. 우리는 보통 생애 속에선 사랑과 용서가 있다 해도 죽으면 모두 끝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생과 죽음을 넘어 사랑과 용서를 지속시키는 것이니, 이것이 불멸의 원리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사랑과 용서의 태도가 희생을 초래하는가 하면, 그 불멸의 원리를 끌어안을 때 우리는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나라는 개체의 소멸을 넘어 영원 속에 동참할 수 있다. 이게 아마도 영원한 생명의 차원인지 모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