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11:25 (금)
 실시간뉴스
코트를 점령한 마흔 살 아줌마 현역 최고령 여자 프로농구 선수 전주원 가족 인터뷰
코트를 점령한 마흔 살 아줌마 현역 최고령 여자 프로농구 선수 전주원 가족 인터뷰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1.03.10 13: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주원 가족과의 인터뷰는 그녀의 소속팀인 신한은행이 라이벌 국민은행을 5점차로 이기고 정규리그 5연패라는 대기록을 달성한 다음날 이뤄졌다. 이 경기 결과로 신한은행은 향후 승패에 상관없이 우승을 확정지으며 곧 있을 챔피언 결정전이라는 고지만을 남겨두게 됐다. 치열한 접전 끝에 승리를 거둔 뒤라서 더 그런 듯, 서울 구의동 자택에서 만난 전주원과 가족의 얼굴은 매우 밝아 보였다.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외동딸 수빈이는 부부의 사랑을 한몸에 독차지하는 마스코트.
경기와 훈련 일정으로 좀처럼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은 그녀가 엄마와 아내로 돌아와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면 쉴 새 없이 대화가 이어진다. 딸은 딸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그동안 미뤄뒀던 자잘한 일상까지 이야기꽃을 피우는 모습이 정겹다. 스포츠에이전트 출신으로 현재는 고려대학교 강단에 서고 있는 남편 정영열 씨는 결혼 12년 차 ‘외조의 달인’으로서 아내와 딸을 바라보는 그윽한 시선에는 행복감이 그득하다. 선수로서 성공은 두말할 나위 없고, 가정적으로도 ‘행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거머쥐고 있는 전주원.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코트 위에서 빛을 발하는 그녀의 삶에 열정이란 에너지는 무한한 듯 보였다.

욕심 없이, 그러나 최선을 다해
역시나 전날의 소감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한 번의 은퇴 선언 이후 돌아와 플레잉코치로 활약하고 있는 그녀이기에, 이제는 후배들만 가득한 코트에서 등대와 같은 존재로 그 감정을 모두 드러내진 않지만 입가에 번지는 미소만큼은 감출 수 없는 듯했다.
“5연패를 달성했다는 것은 사실 농구를 포함한 프로 스포츠에서 힘든 일이잖아요. 더구나 그 속에 제가 있었다는 자체가 영광스럽고 또 이런 기록이 언제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하지만 정규리그 우승이 그 시즌 내내 1위를 지켜야 하는 힘든 성과임에도 챔피언전 우승을 더 크게 보기 때문에 어제는 조금만 기뻐하기로 했어요. 마지막 챔피언전까지 남겨뒀다가 그때 다 같이 더 기뻐하려고요.”
굳이 이번 경기가 아니더라도 전주원의 경기 운영 능력은 최고로 꼽힌다. 그러나 선수에게 따라다니는 부상 위험은 그녀 역시도 가장 두려운 적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 무릎 부상으로 관절경 수술까지 받아야 했지만 후배들의 동요를 걱정해 알리지 않고 홀로 입원 이틀 만에 퇴원해 경기를 치르기도 했다. 그런 그녀를 두고 ‘악바리’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닌 듯싶다.
“지난해 정규리그 7라운드 KB 전에서 다쳤죠 아마? 다들 어떻게 아무도 모르게 수술을 할 수 있었냐고 반문하더라고요(웃음). 우선 우리 선수들한테 알리지 않은 건 결승과 플레이오프 등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있어서였어요. 또 그 상황에서 나이 든 것도 리스크인데 아프다는 핑계까지 대고 싶지도 않았고요. 제가 아픈 일로 인해 선수들의 사기가 저하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팀에 조용히 넘어갔으면 좋겠다고 말했어요. 나중에 후배들이 알고 나서 ‘왜 이야기를 안 했냐’며 ‘미리 알았으면 시합 때 보호해줬을 것’이라고 걱정해주더라고요. 그런 후배들이 너무 고마웠죠(웃음).”
코트 위에서는 거칠어 보이는 여전사들이지만 힘든 훈련과 경기를 함께하기에 서로 보듬고 아끼는 마음은 더 크다. 어쩌면 보통의 여자들보다 더 눈물이 많은 편이라고. 겉은 강해 보여도 속은 천생 여자라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다. 경기에 승리하기까지 팀워크는 그러한 끈끈한 동료애가 바탕이 된다는 것.
여자로서 또 격한 경기를 뛰어야 하는 농구선수로서 전주원의 선수 인생은 참 드라마틱했기에 그런 애틋함은 더하다. 1991년 현대산업개발에 입단해 최고의 포인트가드로 이름을 떨친 지도 벌써 20년. 지난 2004년 출산 뒤 은퇴를 선언하고, 팀을 신한은행이 인수하는 속에서도 그녀는 코치로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그 기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이듬해인 2005년 겨울리그에서 꼴찌로 체면을 구긴 팀이 그녀의 복귀를 원한 것. 공백을 무색하게 그녀는 단박에 어시스트 왕을 꿰차며 팀을 여름리그 3위로 끌어올리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전성기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기량을 유지하며 노련미는 더욱 빛을 발했다. 그러나 이제는 치기 어린 시절의 마음보다는 선배로서 후배들을 위한 역할을 생각해야 하는 시기라고 말하는 그녀다.
“제 포지션이 가드다 보니 팀에 좋은 가드 하나는 키워야겠다는 욕심은 있어요. 어릴 때는 뭐든 다 하겠다는 욕심을 부렸다면 지금은 후배들을 뒷받침해주는 농구를 한다고 할까요. 지금의 제가 욕심을 낸다면 추하게 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주연을 위한 보이지 않는 조연이 되고자 해요. 그래야 제가 은퇴했을 때도 팀이 아무런 흔들림 없이 잘 나갈 수 있을 테니까요.”

불혹을 잊은 열정
전직 스포츠에이전트로 일했던 남편이기에 아내의 나이가 프로선수로서 현역 생활을 하기에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한때는 결혼 후 운동을 계속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남편. 그럼에도 한결같은 열정을 드러내는 아내를 보며 남편은
“인간 대 인간으로서 존경스럽기까지 하다”는 말과 함께 칭찬을 쏟아놓았다.
“인생이 100이라면 그중 99가 농구를 위해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어요. 남편 입장에서는 섭섭한 경우도 없지 않지만(웃음), 그래서 지금의 전주원이 있지 않았나 싶어요. 아내가 스물두 살 때부터 지켜봤는데, 몸 관리라는 게 정말 하루아침에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자기 스스로 섭생부터 체력 관리까지 철저하게 챙기더군요. 출산하고 나서부터는 주위에서 뭘 먹였기에 저렇게 뛸 수 있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아요(웃음).”
그 말에 전주원은 “좋은 것을 찾아서 할 정성까지는 못 되고 나쁜 것을 안 했을 뿐”이라고 재치 있게 받아넘겼다. 술과 담배는 원래부터 해당사항이 없었을뿐더러 탄산음료나 인스턴트식품같이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은 아예 입에도 대지 않았다. 대개의 선수들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운동을 등한시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녀는 그와 반대로 후배들에 비해 떨어지는 근력을 보충하기 위해 꾸준히 웨이트트레이닝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렇게 꾸준한 노력으로 최고의 포인트가드라는 평가를 받으며 여자 프로농구계에 주역으로 살아온 지도 어느덧 20년이 지났다. 이제는 지겨울 법도 하지만 “하면 할수록 농구의 묘미를 알고 재미를 느낀다”는 그녀. 뒤돌아보면 영광의 순간도 많았지만 꼭 그만큼의 아쉬움도 존재하는 기억이 떠오른다.
“아무래도 시드니올림픽 때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올림픽 4강을 이뤄내기도 했고 올림픽 최초의 트리플더블을 달성하기도 했으니까요. 최고가 되는 것보다 최초가 된다는 것은 더 어렵잖아요. 정말 제가 죽을 때까지 영광으로 생각할 만큼의 기록이었죠. 반면 아쉬운 기억은 부산아시안게임 당시 눈앞의 금메달을 놓친 거예요. 막판 역전패로 아쉽게 져서 지금도 두고두고 ‘금메달이 눈앞에 왔다가 갔다’고 이야기하곤 해요(웃음).”
지금으로서는 팀을 위해 선수로 최선을 다할 생각이지만 한편으로 불혹을 맞은 올해 은퇴 이후의 인생에 대해서도 더욱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선수로서 이미 이뤄놓은 것도 많고, 첫 번째 은퇴에서 복귀 이후 그동안 쌓아온 것들을 잃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필사적으로 뛰어온 터라 이제는 후배들을 위해 물러나야 할 시기를 준비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 코트 위에서 보였던 그 엄청난 열정을 앞으로는 어떤 식으로 발현할지 궁금해진다.
“은퇴 후에는 지도자로 살아갈 것 같아요. 국내에서는 아직도 여성 지도자로 성공하는 경우가 드물잖아요. 지도자로 나서게 된다면 이왕이면 다른 후배들에게 롤 모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