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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년 보성군 의병 역사는 지금도 현재진행형"
"350년 보성군 의병 역사는 지금도 현재진행형"
  • 김도형 기자
  • 승인 2020.05.25 1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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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의병의 중심, 의향 '보성'… 대한민국 의병사 종합판
350년 보성 의병 역사는 지금도 현재진행형-마스크의병단(가운데, 김철우 보성군수)
350년 보성 의병 역사는 지금도 현재진행형-마스크의병단(가운데, 김철우 보성군수)

 

2020년 3월 전라남도 보성에 ‘마스크 의병단’이 결성됐다.

코로나19로 마스크 공급량이 턱없이 부족해 마스크 대란이 일자 의향의 고장 보성에서는 군민들이 ‘없으면 직접 만들자’라면서 밤새도록 재봉틀을 돌렸다.

100여 명의 자원봉사자는 2주 만에 면 마스크 4만 장을 만들어 냈으며, 이 마스크는 전 군민에게 돌아갔다. ‘보성 마스크 의병단’에는 고령에 나이에도 불구하고 손을 보탠 84세 김갑순 할머니가 참여하면서 전국적인 이슈가 됐다.

작년 8월에는 일본의 경제 보복에 대항하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 현수막 100장이 보성군 곳곳에 걸리며 진풍경이 연출됐다. 보성군민들은 일본 정부를 규탄하며 일본 제품 불매운동 결의 퍼포먼스를 열기도 했다. 언론에서는 현대판 물산장려운동이 보성군에서 시작됐다며 보도했다.

의향과 의병의 고장 보성에서 아직도 의병 정신이 이어져오고 있다는 증거다.
350년 의병사를 관통하는 보성의 의병 역사는 의병정신을 물려받은 보성군민들과 함께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군민들 못지않게 보성군도 지자체 차원에서 역사선양 사업 추진을 주요 과제로 다루면서 무게를 두고 있다. 2018년에는 「보성의병사」를 발간해 777명의 의병을 발굴해냈다.

방진관, 열선루 복원 사업, 의병을 소재로 한 연재소설과 연극, 뮤지컬 등의 콘텐츠 개발, 의병 역사 학술 세미나 등 의병 역사를 다양한 시각에서 다루고 기념하며 연구하고 있다.

또한, 오는 6월 1일에는 의병의 날을 기념하여 홍암 나철 기념관에서 의병 선양 공연을 비롯한 기념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보성 의병사는 대한민국의 의병사의 축소판이자 종합판이라고 할 수 있다.

임진왜란이 발발했던 1592년부터 조국이 광복한 1945년까지 약 350년간 위험에 빠진 나라를 지키고, 이웃을 보호하려는 의병들이 분연히 일어났으며 전국에서 가장 많은 의병이 발굴되었으며, 내로라하는 독립운동가들이 보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 이순신 장군의‘금신전선 상유십이’장계와 보성
이순신 장군이 쓴 ‘신에게는 아직 열두척의 배가 있습니다.’장계 ‘금신전선 상유십이’가 쓰인 곳이 바로 보성의 열선루다. 수군을 폐하고 육군으로 편입하라는 선조의 명에 항명하고, 명량해전에서의 대승해 나라를 지켜낸 역사적이고 상징적인 장소가 보성에 있다.

보성 열선루는 조선 수군 재건의 현장이며,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이순신 장군은 열선루에서 장계를 올린 뒤 조성 조양창에서 군량미를 얻고, 보성 의병을 모집해 회천에서 명량해전으로 나갔다. 보성 출신 선거이 장군, 최대성 장군, 전방삭 장군은 임진왜란 전반에서 이순신 장군과 함께 싸웠다.

▲임진왜란부터 양란, 일제강점기를 거쳐 독립까지 의병사 포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광해군의 스승이자, 퇴계이황의 제자 죽천 박광전 선생은 노령한 나이에 의병 700여 명을 거병하여 전국 최초로 전라좌의병을 창의했다.

임계영 장군은 의병장이 되어 진주성 전투에 참전했으며 진주성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보성에서 창의한 전라좌의병은 전남지역뿐만 아니라 진주성 전투 등 전국구로 의병활동을 펼쳤다는 기록은 보성 의병이 지역방위를 넘어 전국적인 의병활동에 적극 나섰다는 것을 뜻한다.
 
병자호란에는 보성에서 우산 안방준 의병장이 호남병자창의소를 세워 창의했으며, 한말에는 머슴출신의 담살이 의병장 안규홍을 배출하기도 했다. 호남에 가장 먼저 3.1만세 함성이 울려 퍼진 곳 또한 보성이며, 보성은 호남지역 만세운동에 불을 댕겼다.

보성은 6.25전쟁 전후로 민족상잔의 아픔을 담은 소설 태백산맥의 주무대로 아픈 역사를 문학적으로 승화하는 등 의병 역사와 함께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포괄하는 문화 자원까지 겸비하고 있다.

▲근대적 사상가 죽천 박광전, 신분을 뛰어넘은 리더십 담살이 의병장 안규홍
죽천 박광전 선생는 선비정신의 표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창의했는데, 당시 그의 나이는 각각 67세와 72세로 조선시대 평균수명이 30세였음을 고려한다면 지금의 100세도 넘는 나이라 짐작할 수 있다.

특히, 당시 창의 격문에는 불참할 시 연좌제로 가족까지 벌하겠다는 내용들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는데, 박광전 선생은 왕에 대한 충성이나 불참자에 대한 복수 보다 가족과 이웃, 민족을 구하기 위해 창의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시대를 앞서간 근대적 민권 사상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다.

한말 의병 활동에 나선 담살이 의병장 안규홍은 전국 유일의 머슴 출신 의병장이다. 안규홍은 전투기술과 신출귀몰한 위장술로 인해 일본군이 신원 파악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으며, 안규홍을 ‘거괴’로 분류, 일본군 중 가장 악랄한 육군 정규군 14연대를 파견해 안규홍 부대를 말살하려고 하기도 했다.

안규홍 부대의 특이점은 일제 강점기에도 팽배했던 신분의 벽을 뛰어넘어 양반 유생들이 머슴 의병장의 휘하에서 뜻을 함께했다는 것이다. 이는 신분의 격차를 뛰어넘어 구국정신으로 민족이 하나로 융합되는 항일투쟁의 대표적인 예로 볼 수도 있다.

▲ 백범 김구,  송재 서재필, 홍암 나철 등 굴지의 애국지사와의 인연
독립운동가의 정신적 지도자 백범 김구 선생은 1898년 보성 득량면 쇠실마을에서 약 40일간 피신 생활을 했다. 그는 광복 후 고마운 마음을 잊지 못하고 다시 쇠실마을을 찾을 만큼 보성에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민족 독립운동의 선각자 송재 서재필 선생은 외가인 보성 문덕면 가내 마을에서 태어나 갑신정변에 참여하고 독립신문 창간과 독립협회 창립, 상해임시정부 활동 등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

독립운동의 아버지 홍암 나철 선생은 벌교읍에서 태어나 민족 대종교를 창시했다. 나철 선생의 대종교는 일제강점기 주권을 잃은 우리 민족에게 ‘정신적 의미의 나라’를 선사하며 독립에 대한 열망과 희망을 잃지 않고, 민족을 하나로 묶어주는 구심점 역할을 했다.

나철 선생은 유신회를 조직하고, 포츠머스 강화회의 참석, 을사오적 암살단을 조직하는 등 독립운동 1세대이기도 하며, 무오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9명의 독립지사 중 25명이 대종교 출신 인사일 만큼 대한민국 독립운동사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의향의 고장 보성에는 이처럼 이름만 들어도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의병장과 독립운동가들이 줄을 잇고 있다. 하지만 보성 의병사가 더욱 빛이 나는 건 역사 책에는 실려 있지 않은 이름일지라도 조국을 위해 그리고 이웃과 가족을 위해 창의했던 777명의 의병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살아남아야만 기록되는 평민 의병의 특성상 이 외에도 아직 발굴되지 못한 수많은 의병이 있었을 것이라는 믿음과 선조들의 의병정신을 계승해 현대에서도 그 뜻을 이어가며 아직까지도 보성 의병사를 써 내려가고 있는 보성군민들이 있기 때문 아닐까.

[Queen 김도형기자] 사진 보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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