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10:45 (목)
 실시간뉴스
6월의 독립운동가…'봉오동 전투' 승리 이끈 임병극 선생
6월의 독립운동가…'봉오동 전투' 승리 이끈 임병극 선생
  • 이주영 기자
  • 승인 2020.05.29 08: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제 시기 임병극 선생이 독립전쟁을 벌인 중국 연길의 대한국민회군 주둔지.
일제 시기 임병극 선생이 독립전쟁을 벌인 중국 연길의 대한국민회군 주둔지.

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봉오동 전투 승리를 이끈 임병극 선생을 6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29일 밝혔다.

1885년 평안도에서 태어난 임 선생은 1917년 고향을 떠나 북간도로 망명해 독립운동에 가담했다. 대한국민회가 만든 항일무장단체 국민회군의 제2중대장에 임명돼 독립전쟁의 최일선에서 활동했다.

1920년에는 새롭게 결성된 북간도 독립군 연합체 대한북로독군부에 참여했다.

독립군은 그해 6월7일 왕천현 봉오동에서 홍범도 사령관의 공격 신호탄에 따라 일제히 일본군을 공격했다. 대한북로독군부 피복과장이자 국민회군의 2중대장이었던 임 선생도 부하들을 독려해 적극적으로 공격을 이끌었다.

역사의 기록대로 봉오동 전투는 독립군의 완승으로 끝났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자료에 따르면 일본군은 사망자 157명, 중상자 200여명, 경상자 100여명이었지만 독립군은 전사자 4명, 중상자 2명뿐이었다.

임 선생은 같은 해 10월 청산리 전투에도 참여해 전승을 거뒀다. 이후 1921년 안도현에서 의용대를 조직해 군자금을 모집하고 일제의 기관을 기습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했으며, 1923년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국민대표회의에 연해주 민족운동계 및 고려혁명군 대표자격으로 참가했다.

임 선생은 일제의 감시가 심해지자 지하활동을 이어가던 중 1924년 9월 부하 5명과 함께 체포돼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정확한 사망일자는 알려지지 않는다.

정부에서는 이러한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Queen 이주영 기자] 사진 뉴스1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