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인명피해를 낸 기업에는 엄정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모였습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3일 김영란 대법원 양형위원장을 만나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양형기준에 대한 협조를 요청했다.
산업재해 사업주 처벌을 10배로 강화한 개정 산안법이 1월16일 시행에 들어가며, 법률 개정 취지를 반영한 새로운 양형기준이 절실하다는 차원에서다.
양형위원회는 법관이 법률에 규정된 형벌 중 특정 선고형을 결정할 때 참고할 수 있는 일정 기준을 정해주는 기관이다.
법관들은 보통 이 위원회의 양형기준에 기초해 선고를 내린다.
이에 고용부는 지난달 4일 양형위원회에 산안법 양형기준에 대한 의견을 제출했다. 중대재해 재발을 막으려면 산안법 위반이나 업무상 과실치사에 대한 양형기준을 높여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그간 대형 인명사고 등 중대재해가 반복됨에도 기업이 경각심을 갖고 적극적인 안전조치를 하도록 유도하기에는, 산안법 위반 형량이 낮다는 지적이 많았다.
예를 들어 업무상과실·중과실치사 양형기준이 감경 4~10개월, 가중 1~3년인데, 산안법 위반은 감경 4~10개월, 가중 10개월~3년6개월에 해당한다. 법정형(7년 이하 징역)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는 산재를 낸 사업주와 기업에 대한 낮은 수준의 형벌로 이어졌다.
고용부가 2013~2017년 산재 상해·사망사건 형량을 분석한 결과, 자연인 피고인(2932명) 중 징역·금고형은 86명(2.93%)에 불과했다.
집행유예가 981명(33.46%)에 벌금형이 1679명(57.26%)으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게다가 징역·금고형의 경우 '6개월 이상 1년 미만'이 비중이 높았다. 평균 벌금은 자연인 420만원, 법인 448만원에 불과했다.
지금의 산안법 위반 양형기준은 4년 전인 2016년에 제정됐다.
이에 따라 이재갑 장관은 김영란 위원장에게 산안법 위반사건을 독립범죄군으로 설정해 양형기준을 논의해 줄 것을 요청했다.
산안법 위반에 따른 사망사고는 개인의 주의의무 위반에 따른 업무상 과실치사와 달리 안전관리체계 미비 등 '기업범죄' 성격을 띤 점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산안법 위반은 '과실치사상 범죄군'으로 설정돼 있어 양형기준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별도 범죄군으로 다뤄질 경우 안전보건조치 미이행, 작업중지조치 미이행 등 세부 범죄유형에 대한 기준도 각각 정할 수 있다.
이 장관은 징역이 아닌 '벌금형'에 대한 양형기준도 신설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현재 산안법 위반 사건은 대다수 벌금형이 부과되고 있고, 기업에 대한 제재수단도 벌금형이 유일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