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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뱅이가 선택한 온라인쇼핑·배달·HMR '최고 호황'
게으름뱅이가 선택한 온라인쇼핑·배달·HMR '최고 호황'
  • 김정현 기자
  • 승인 2020.06.23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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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몰고 온 불황에도 온라인과 물류, 식음료업계가 승승장구하고 있다. '게으른 손님' 덕이다. 심부름을 해주는 '컨시어지 서비스'도 이들이 때문에 생겨난 신산업이다.

시장은 게으름뱅이를 중심으로 분주하게 돌아간다. 이커머스는 '총알배송' 경쟁에 여념이 없다. 음식점은 물론 베이커리, 편의점, 카페, H&B숍, 레스토랑마저 배달이 한창이다. 백화점과 대형마트는 한입에 쏙 들어가는 과일을 진열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다. 중국에선 게으른 소비자가 주도하는 상황을 '란런경제'(懶人經濟)로, 미국은 'Lazy Economy'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한국에서는 '편리미엄'이라는 용어가 자리 잡았다. 

게으른 소비자의 드높은 '위상'은 시장 지표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편리미엄의 대표 산업인 이커머스, 주문 배달, HMR은 코로나19 사태에도 역대급 호황을 누리고 있다.

23일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내 온라인쇼핑 총 거래액은 36조8400억원으로 집계됐다. 역대 1분기 최고액이다. 이중 모바일 거래액은 24조7900억원으로 전 분기를 통틀어 최고치를 경신했다.

음식 배달 거래액도 올 1분기 3조5000억원을 달성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 2017년 1분기 5000억원과 비교하면 3년 만에 시장 규모가 7배나 불어났다.

국내 1위 배달 애플리케이션 '배달의민족'의 올해 주문 건수는 전년 동월 대비 △1월(49%) △2월(66%) △3월(67%) △4월(60%)씩 뛰었다. 배달대행 전문기업 '바로고'의 주문건수도 매달 세 자릿수씩 치솟았다. 5월에는 창사 최초로 '월 1000만건'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급기야 전 산업군이 앞다퉈 '언택트'(비대면)로 몰렸다. GS25는 지난 2월 '편의점 배달 서비스'를 전국 1200개 점포로 늘리더니 6월에는 3300곳으로 추가 확대했다. 24시간 운영 점포는 200점까지 늘릴 예정이다. CU는 네이버와 손잡고 주문 채널을 넓혔다. 세븐일레븐도 올해부터 편의점 배달에 뛰어들었다.

CJ올리브영, 랄라블라, 미샤 등 헬스&뷰티숍(H&B)과 화장품 브랜드도 배달 서비스를 출시했다. 뚜레쥬르, 빕스, 계절밥상, 더플레이스, TGI 프라이데이스 등 프랜차이즈는 물론 이디야, 투썸플레이스, 엔제리너스 등 커피전문점도 잇달아 '배달 메뉴'를 선보이며 고객몰이에 나서고 있다.

HMR 시장도 '언택트 열풍'을 타고 훨훨 날았다. CJ제일제당은 올해 1분기 매출 5조8309억원, 영업이익 2759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16.2%, 영업이익은 54.1% 급증한 '어닝서프라이즈'다.

금융투자업계는 HMR를 대표적인 '언택트 수혜주'로 꼽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집콕 생활이 길어진 데다, HMR의 편의성에 반한 소비자들이 확연하게 많아져서다.

이정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CJ제일제당의 올해 연결 매출액을 전년 대비 9% 증가한 24조4000억원, 영업이익은 22% 증가한1조1000억원으로 전망했다. 박상준 키움증권 연구원도 "코로나19 사태로 가정간편식을 소비하지 않았던 신규 소비층이 유입됐다"며 "향후 매출과 이익이 동시에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이미 마련됐다"고 분석했다.

'게으른 소비자'의 욕구는 뜻밖의 트렌드까지 만들어냈다. '조각 과일'이 대표적이다. 통과일에 비해 값은 비싸지만, '가심비'(가격 대비 만족도)를 충족하면 기꺼이 지갑을 연다.

GS리테일이 지난 1일부터 8일까지 과일 매출을 분석한 결과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조각 수박'의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55.8% 증가했다. 반면 통수박 매출은 2.8% 후퇴했다.

마켓컬리가 이달 1일부터 15일까지 판매한 수박 매출에서도 '조각 수박'의 비중이 45%로 높아졌다. 과일 소비자 10명 중 4명은 손질 없이 바로 먹을 수 있는 '조각 과일'을 선택한 셈이다. 롯데백화점과 롯데마트는 아예 조각과일과 소과종 과일을 확대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게으름뱅이 경제'가 창출한 신(新)사업도 있다. 플랫폼 스타트업 '달리자'가 운영하는 생활밀착형 컨시어지 서비스 '김집사'다. '합법'적인 영역이라면 소비자의 상상력이 미치는 모든 심부름을 김집사가 거들어준다.

예컨대 단돈 2000원만 내면 약국, 편의점, 음식 배달, 커피, 마트에 달려가 필요한 물건을 사다준다. 음식물 쓰레기는 1000원에 버려주고, 3000원을 내면 대신 우체국에 택배를 가져가 붙여주거나 세탁물을 받아준다. 자녀가 놓고 간 준비물을 학교에 가져다주거나, 대신 중고거래를 해주는 것도 가능하다.

'게으름뱅이'에 최적화된 서비스 덕일까. 김집사는 론칭 2년 만에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 지역 40만 세대에 심부름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재주문율은 90%에 달할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코로나19 기간이었던 올해 1~5월 주문건수는 직전 5개월(2019년 8~12월)보다 100% 가까이 폭증했다.

내친김에 사업 영역을 '커피전문점'까지 확대했다. 달리자 관계자는 "오는 26일 위례신도시에 '김집사 커피'를 오픈할 예정"이라며 "김집사 멤버십 등 다양한 신규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게으름뱅이는 어쩌다가 유통업계의 '최고의 VIP'로 떠오른 것일까. 누가, 무엇이 소비자를 나태하게 만든 것일까. 시장은 수요를 따라가기 마련이다. 수요는 소비자의 욕구다. 결국 원인은 소비자 그 자체에 있다.

업계는 '편리미엄' 트렌드가 생겨난 배경으로 1인 가구의 증가와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지목한다. 일이나 돈보다 '개인의 삶'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가 소비 행태를 바꿨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한 발 더 깊숙이 파고들면 소비자가 '가치관'을 180도 바꿔버린 진짜 계기가 드러난다. 1인 가구와 워라벨 문화는 현상일 뿐이다. 근본 원인은 '소득'과 '절망감'이라는 이율배반에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소득'과 '시간'의 가치가 변한 시점에 게으름뱅이 경제가 태동했다고 본다. 시간의 가치가 돈의 가치를 역전하면서 소비자들은 절약에 흥미를 잃고 지갑을 열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이 교수는 "게으름뱅이 경제나 편리미엄 트렌드에는 '시간의 가치에 대한 재발견'이라는 측면이 있다"며 "가난했던 과거에는 돈이 시간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귀했지만, 1인당 국민소득 3만불을 넘긴 지금은 거꾸로 시간이 돈보다 귀하게 된 것"이라고 풀이했다.

한국 1인당 실질 국민총소득(GNI)은 2017년 3만달러를 돌파, 지난해 3만2115달러(잠정)까지 올라섰다. 보릿고개 시절인 1963년 104달러보다 308배, 압축성장을 이룩하던 1977년(1047달러)보다 30배 높아진 소득 수준이다. 중국도 1인당 GNI가 8500달러를 돌파한 2017년부터 '란런경제'가 생겨났다.

이영애 인천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미래에 대한 절망감'이라는 대중 심리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영애 교수는 "경제성장기에는 '노력하면 이룰 수 있고, 가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지만, 지금은 전 지구적으로 경제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젊은 세대는 구조적으로 (성장 가능성이) 닫혔다는 것에 실망감을 느끼고, 부단히 아끼고 노력하기보다 지금의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고 부연했다.
 

 

[Queen 김정현 기자] 사진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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