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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Queen 다시보기] 1991년 2월호 -감동수기/밤무대 가수 오현숙의 억척 처녀가장 생활 16년
[옛날 Queen 다시보기] 1991년 2월호 -감동수기/밤무대 가수 오현숙의 억척 처녀가장 생활 16년
  • 양우영 기자
  • 승인 2020.08.23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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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2월호

"동생들 대학, 유학, 시집 보내느라 노처녀로 늙었지만 후회는 없어요"

16년간 지병으로 시달리는 어머니와 동생들의 뒷바라지를 해온 무명가수 오현숙(35). 3일굶고 수도물 마시다 기절한 기억을 지우지 못하는 한 서린 처녀가장인 그녀가 토해 놓은 눈물의 고백.

1991년 2월호 -감동수기/밤무대 가수 오현숙의 억척 처녀가장 생활 16년1
1991년 2월호 -감동수기/밤무대 가수 오현숙의 억척 처녀가장 생활 16년1
1991년 2월호 -감동수기/밤무대 가수 오현숙의 억척 처녀가장 생활 16년2
1991년 2월호 -감동수기/밤무대 가수 오현숙의 억척 처녀가장 생활 16년2

 

선박회다 다니던 아버지의 순직 그 보상금은 낳은 절망의 시작

새벽 1시 20분. 욕실에서 빠져나온 나는 머리의 물기를 수건으로 털어내며 화장대 앞에 앉는다. 졸음을 참느라 연신 하품을 해대는 꼴을 어머니가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거울을 통해 화장기가 없는 서른 다섯살의 내가 비쳐진다. 머리를 말리던 나는 거울속의 내 눈가를 뚫어져라 응시한다. 잔주름.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는 주위사람들의 말을 곧잘 듣곤하던 나였지만 역시 세월은 속일 수 없는가 보다. 

돌아보면 아득한 시간들이었다. 내가 어떻게 그 절망의 시간들을 이겨내고 지금 이곳에 있게 된 것일까? 스스로 대견스럽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16년의 긴 세월. 숫자로는 간단히 표현되는 16년이지만 내게는 백년도 넘은 것 같다. 자살을 꿈꾸던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눈물로 얼룩진 16년. 

어둠과 고통만이 머무는 긴 회랑과 같은 16년의 시작은 아버지의 임종으로 시작됐다. 경찰관 출신의 아버지가 박봉에 시달리던 긑에 전업, 선박회사에 취직한 뒤 근무중 사고로 순진한 것이 73년 11일 22일. 어머니와 오빠를 포함해 일곱 식구는 슬픔을 되씹을 시간도 없이 가난이라는 모진 고통속에 내 던져졌다. 게다가 인기가수를 꿈꾸던 세상물정을 모르는 나의 실수는 우리 가족들의 숨통을 더욱 조이는 결과를 낳았다. 

당시 우리 가족은 부산에서 살았다. 나는 열 일곱살의 여고생, 인기가수가 되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철부지 같은 생각이었다. 스타의 길이 얼마나 험난하고 힘겨운 것인지 알 턱이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일년도 채 되지 않았던 74년 나는 서울의 외가에 다니러 왔다가 신인가수를 찾는다는 주간지의 광고를 보고 작곡가 L씨를 찾아갔다. 

L씨는 내 노래를 몇번 들어보더니 쓸만하다며 백만원만 있으면 음반을 취입하고 월 25만원 정도의 출연료를 받을 수 있는 밤무대에 알선해 주겠다고 했다. 분홍빛 미래가 성큼 다가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앞뒤 재 볼 틈도 없이 그길로 부산행 기차를 탔다. 

끝없는 절망의 연속 수면제 사먹고 자살기도

당시 백만원이면 매우 큰 액수였다. 그런데도 내가 희망에 부풀었던 것은 아버지의 순직 보상금으로 받은 백만원이 집에 고스란히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어머니와 오빠를 조르고 설득했다. 

평소 노래를 잘 한다는 칭찬을 듣던 내가 서울에서 작곡가로부터 확실한 언질을 들었다며 약간의 과장을 섞어 설득하자 어머니와 오빠는 어렵지 않게 동의해 주었다. 

나는 아버지의 순직보상금 백만원을 들고 서울로 올라왔다. 가족들도 뒤따라 상경했다. 신바람이 난 나는 모 레코드사를 통해 '푸른 꿈'이라는 데뷔앨범을 취입했다. 벌써 스타가 된 기분이었다. 그러나 금방 희망은 좌초하기 시작했다. 

가끔 방송전파를 타던 내 노래는 시간이 자나며 뜸해지더니 아예 묻혀버렸다. 남은 것이라곤 홍보비라는 명목으로 작곡가에게 바친 돈 때문에 불어 오른 빚 뿐. 내 뒷바라지 때문에 서울로 올라와 미아리 산동네에 40만원짜리 전세를 얻었던 식구들은 석관동 산동네로 옮겨가 사글세를 살고 있었다. 

나는 작곡가에게 따지기도 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신세 한탄도 해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절망의 거대한 벽이 사방에 우뚝 솟아 있었다. 가족들을 대할 용기도 나지 않았다.(중략)

 

Queen DB

[Queen 사진_양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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