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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의 왕관> 출간한 소설가 김다은
<손의 왕관> 출간한 소설가 김다은
  • 박소이 기자
  • 승인 2020.08.06 17: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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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의 왕관' 출간한 김다은 교수
'손의 왕관' 출간한 소설가 김다은

 

‘왕관’(crown)이라는 뜻의 코로나(corona 라틴어)19가 한창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울 때, 소설가 김다은 씨는 생명의 왕관이라는 뜻의 신작 「손의 왕관」(은행나무 출판사)을 세상에 내놓았다. 소설 첫 부분은 글자로 통도배가 된 방의 묘사로 시작되는데…
작가에게 생명의 왕관의 의미에 대해 들어보았다.

인터뷰 Queen | 사진 양우영 기자

“하루의 마지막 빛줄기가 사랑채로 부드럽게 스며들었다. 벽에서 천장까지 글자로 통도배가 된 방은 빛의 조화를 따라 날쌘 짐승 털 위에서 꿈틀거리는 무늬처럼 살아 움직였다. 박 영감은 벽의 긴 등뼈에 펼쳐진 글자가 아름다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 벽지들을 그때 전부 불태워버렸다면 어땠을까. 종이가 아까워서 일부 남겼다고 말하곤 했지만, 이렇게 사사로이 쓰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 정도의 욕심으로 관가의 명령을 어겼다면 큰 부를 착복했을 것이다.

병인년에 대동강에 출현한 상선은 돛을 세 개나 단 어마어마한 크기의 배였다. 애초에 전투함으로 구축되었던 배는 물건을 사고파는 상선으로 용도가 바뀌었다 해도 위협적일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이 땅을 밟는 외지인은 무조건 죽이라는 ‘쇄국’을 하던 때라 관은 입항을 허하지 않았다. 평양성의 공식의사를 무시하고 배는 대동강 쑥섬까지 들어왔다. 무력충돌이 불가피했다.(…)”

「손의 왕관」의 프롤로그 중에서


퀸 : 신작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작가님은 「훈민정음의 비밀」, 「모반의 연애편지」, 그리고 청와대 땅의 역사를 파헤친 「금지된 정원」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역사를 새롭게 읽어내는 소설들을 써왔습니다. 신작「손의 왕관」의 프롤로그에 언급된 위 사건은 조선시대에 있었던 실화이지요?

김다은 : 1866년(고종 3년)에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가 조선에 나타나 교역을 요구합니다. 당시 쇄국정책을 펴던 조선은 입항을 허하지 않았는데, 제너럴셔먼호는 이를 무시하고 평양 대동강가에 들어와서 약탈까지 일삼았습니다. 성난 평양군사들과 시민들이 썰물에 꼼짝하지 못하는 배에 불을 지릅니다. 승선자는 모두 배에서 뛰어내려 육지에서 생포되었고 참형을 당했지요. 그 중에 책들만 아름 안고 내린 한 양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책들을 해변에 뿌리고 마지막 참수를 당하는 순간에도 그 책만 내밀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위험한 책으로 여겨졌고 결국 수거령이 떨어졌습니다. 평양성에서 그 일을 맡았던 영문주사 박영식(박 영감)이 그 책들을 보관하고 있다가 자신의 집을 지을 때 벽지로 사용합니다. 종이가 귀할 때였으니까요. 신작은 그 책의 비밀을 찾아가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퀸 : 「손의 왕관」에서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다루게 된 이유는 무엇이며, 이전 역사소설과 차이가 있다면 어떤 점일까요?

김다은 : 책 한 권을 위해 목숨을 버린 자에 관한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책이길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지막 순간에도 다른 사람에게 내밀 수 있었을까요. 또한 이 소설은 제너럴셔먼호 사건뿐만 아니라 일제 강점기의 차릉파 사건을 같이 다루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연관이 없는 두 사건은 소설 속 현재를 살아가는 인물들에게서 연결되어 나타납니다. 앞선 역사소설들은 과거의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의미에서 과거 속으로 들어갔다면, 이번 소설은 과거 역사적 사건들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끼치며 현재 우리에게로 흘러 내려왔는가를 보는 것이 차이점입니다.

퀸 : 차릉파 사건도 소개해주세요. 머리에 쓰는 왕관이 아니라 손의 왕관이라고 한 이유는 무엇인지요?

 

소설가 김다은

 

김다은 : 일제 강점기에 평양 박물관이 제1회 고적 애호일을 기념하는 특별전을 연 뒤, 성공을 자축하기 위해서 연 파티에서 평양의 기생 차릉파에게 금관을 씌워 희롱했던 사건입니다. 이 금관은 서봉총에서 나온 것으로 신라 시대의 것이고 당연히 머리에 쓰는 왕관이지요. 반면에 ‘손의 왕관’은 눈에 보이지 않는 왕관으로 그 ‘위험한 책’의 비밀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퀸 : 머리의 왕관과 손의 왕관, 눈에 보이는 왕관과 눈에 보이지 않는 왕관! 소설의 줄거리를 함께 말씀해주시면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김다은 : 첫 드라마 작품을 성공시킨 주인공 천우가 차기작 차릉파의 금관 사건을 집필하기 위해 청송에 사는 친구 우걸 곁으로 갑니다. 우걸은 천우가 농담 삼아 던진 말을 듣고 농가 작업실을 성경으로 도배를 해놓습니다. 그러니까 박영식의 성경으로 도배된 방은 현대에 와서 천우의 임시 작업실로 변하는데, 과거 역사와 현재가 동시에 연결될 수 있도록 장치를 한 것입니다.

그런 ‘한심한’ 방에서 어쩔 수 없이 성경 몇 구절을 읽곤 하던 천우는 밤만 되면 산 중턱에서 놀라우리만큼 환한 왕관 모양의 빛을 발견합니다. 천우는 빛의 왕관을 작품 성공의 징조로 여깁니다. 하지만 상상을 초월한 이 왕관의 정체가 주인공에게 빛과 어둠의 진실을 깨닫게 해줍니다. 세상의 성공을 상징하는 머리의 왕관과는 다른, 손의 왕관의 의미를 찾아가는 실마리가 되지요.

퀸 : 그 ‘위험한 책’이 빛과 어둠을 가르는 성경임을 알겠습니다. 성경이 신작에 영향을 미치게 된 여정을 설명해주세요.

김다은 : 소설가로 25년 그리고 교수로 20년 넘게 재직하면서, 인간을 구원하려면 얼마나 많은 단어가 필요할까를 생각하곤 했습니다. 창작에 대한 사유나 고민을 나름 하다가, 그러니까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언어를 찾아가다가 신의 언어를 만났습니다. ‘창세기’의 천지창조 과정을 보니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고 사람을 만드셨는데, 작가도 언어로 시공간과 인물을 창작하니까요.

흔히 신이 왜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만들어 인간이 죄짓게 했는가를 질문하곤 하는데, 왜 작가가 소설 속에 갈등을 가진 인물들을 설정하는지를 제대로 이해하게 해주는 대목입니다. 소설 창작의 3요소인 시공간과 인물 그리고 갈등의 유기적인 관계가 창조과정에 고스란히 들어 있는 것을 보고, 점점 말씀을 관심을 가지고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퀸 : 그렇다면 「손의 왕관」에서 그 손은 창조의 손이나 창작의 손이겠군요.

김다은 : 책 제목 ‘손의 왕관’은 성경에서 인용한 표현입니다. 창조자의 손이자 전능자의 손이지요.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었기 때문에, 사람도 창작의 DNA를 가졌다고 생각해요. 신처럼 전지전능하지 못하지만, 신을 닮은 인간은 창작을 통해 전지적 시점을 사용할 수 있고, 과거와 미래를 마음대로 상상할 수 있거든요. 창작은 인간이 신의 창조 DNA를 물려받았다는 증거 같아요.

퀸 : 작가의 그런 의도가 들어 있는 문장을 소설 속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여기부터 부각되게 )“시를 통해서 신을 만나는 자가 있고, 시 때문에 신을 만나지 못하는 자도 있어.”(여기까지) 예를 들어 좀 설명을 해주시겠습니까.

김다은 : 주인공 천우가 어린 시절에 쓴 ‘아이스크림 시’가 있었어요. “아버지가 두 시간째 아이스크림을 들고 걸어오신다”라는 시구 때문에 형인 만우에게 거짓말쟁이로 인식되고 맙니다. 폭염이 내리쬐는 여름에 아버지가 아이스크림을 들고 두 시간이나 걸어올 수 없기에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 꾀를 부른 것으로 이해된 것이죠. 천우는 계속 시 때문에 거짓말쟁이로 몰리지만, 시를 포기하지 않고 최고의 시를 꿈꿉니다. 시를 우상화하는 천우는 그래서 말씀을 만나지 못합니다.

반면에, 형인 만우는 결혼하고 아버지가 되어 아들을 사랑하니 비로소 시가 무엇인지 이해하게 됩니다. 시에 담긴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면서, 생명을 담고 있는 신의 말씀도 이해하게 됩니다. 아름다운 시의 언어는 천우에게는 인간의 자부심이었기에 신을 철저히 부인하는 명분이 되지만, 만우에게는 사랑을 깨닫게 해주고 신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이 되어줍니다.

언급하신 소설 속 문장은 인간의 언어와 신의 언어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표현한 것입니다. 성경 속에 인간의 문학 장르인 ‘시편’을 넣어둔 것이나, 역으로 인간의 언어로 신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도록 허용한 신의 기획도 포함한 문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퀸 : 천우와 우걸이 ‘은유’를 놓고 승부를 내는 부분이 매우 강렬합니다. 왜 하필 은유로 마지막 결판을 내게 되었는지요?

김다은 : 천우는 자신을 시의 전사라고 여기고, 우걸은 자신을 성경의 전사라고 여깁니다. 시의 편과 성경의 편이 되어 평생 언어 싸움을 해온 두 사람에게 은유로 마지막 대결을 벌이게 한 것은 역설적으로 시와 성경을 차이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은유는 사물의 움직이나 현상을 함축적인 언어로 말하는 것인데, 천우는 시구를 그리고 우걸은 성경 구절의 가장 함축적이고 아름다운 표현을 내놓기로 합니다. 최소치의 표현 속에 최대치의 의미를 담는 쪽이 이기는 승부입니다.

우걸은 시의 은유가 성경의 비유와 다른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내기에 응합니다.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경의 비유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해주기 위해서였지요. 우걸은 다섯 개의 떡과 두 마리의 물고기로 오천 명을 먹이는 ‘오병이어’로 천우에게 말씀의 의미를 알려주려 하지만, 천우는 설득당하지 않지요. 반면에 천우는 아예 시구조차 내놓지 못하는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결국, 그 둘의 승부의 결과를 보는 것이 이 소설을 읽는 재미일 것입니다.

퀸 : 전작들에서도 다른 시점들을 함께 사용하는 작법을 보여주셨습니다. 「손의 왕관」에서 1인칭과 3인칭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요?

김다은 : 역사소설에서 서로 다른 시점들을 사용한 이유는 사회적 위치와 상관없이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대등한 시점을 가질 수 있게 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국왕이나 농부나 일제강점기의 조선 총독이나 억압받는 조선의 백성이나 동등한 시각을 가지고 자기 입장을 표현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손의 왕관」에서는 인물 각자가 3인칭 선택적 시점을 통해 동등한 위치에서 의견을 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천우에게만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을 준 것은 의도적인 설정입니다.

신을 거부하고 인간이기를 고집하는 천우의 의도를 살려내기 위한 문학적인 장치이지요. 물론 그가 자신의 고집을 끝까지 지
킬 수 있었는지는 작품을 읽으면 아실 거예요.

퀸 : 최근 코로나19 사태에서 ‘코로나’도 라틴어로 왕관이라는 뜻입니다. 코로나19가 죽음의 왕관이라면, 「손의 왕관」을 생명의 왕관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김다은 : 사람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에노스)’임을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합니다. 죽음을 인식하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따라 삶의 목적과 양태가 달라지고, 신에 대한 인간의 의식이 많이 달라집니다. 코로나19 사태는 ‘나도 언제든지 죽을 수 있는 존재’임을 자각하게 해준 점에서 매우 의미심장한 사건입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져온 셈이지요.

코로나19는 여태 우리가 세워놓은 나라 간의 국경도 사람 간의 관계도 무효화하는 놀라운 힘을 보여주었습니다. 죽음의 힘입니다. 그 죽음의 힘에 사람들이 온전히 눌리지 않을 힘이 무엇인지, 그리고 죽음을 통해 생명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새롭게 바라봐야 하는 시간이 된 것입니다.

아시겠지만, 코로나19로부터 타인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린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한 선교사가 목숨을 버리며 전한 ‘위험한 책’이 수많은 이들에게 생명의 비밀을 알려준 것처럼 말입니다. 끝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목숨을 버림으로 사람들에게 새 생명을 준 예수님을 깨달으면 ‘위험한 책’이 왜 생명의 왕관인지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퀸 : 마지막으로 ‘퀸’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다은 : 소설 속 한 등장인물의 말을 똑같이 해드리고 싶습니다. “평생에 한 번은 신과 줄다리기를 해봐야지요.” 살아가면
서 신을 만날 계기가 누구에게나 몇 번은 있지만, 그 은혜가 누구에게나 오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퀸의 독자 가운데 어
떤 분들이 어떤 경로로 제 책을 손에 넣어서 읽게 될지는 정말이지 신비입니다. 하지만 이 책을 만나게 되면 한번은 진지
하게 구원의 문제를 고민해주시면 기쁘겠습니다.

 

김다은(손의왕관_평면이미지)
김다은(손의왕관_평면이미지)


소설가 김다은은…

이화여자대학교 불어교육과와 불어불문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제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첫 소설 「당신을 닮은 나라」가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장편소설 「금지된 정원」,「소통 말통」, 「바르샤바의 열한 번째 의자」, 「모반의 연애편지」, 「훈민정음의 비밀」, 「이상한 연애편지」, 「러브버그」, 창작집 「쥐식인 블루스」, 「위험한 상상」, 문화 칼럼집 「발칙한 신조어와 문화현상」, 「너는 무엇을 하면 가장 행복하니?」, 서간집 「작가들의 연애편지」, 「작가들의 우정편지」, 「작가들의 여행편지」, 「해에게서 사람에게」를 출간했다. 프랑스어 장편소설 「Le Jardin interdit」, 단편소설 「Imagination dangereuse」, 「Le rat de biblioth que」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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