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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유지나가 말하는 즐거운 인생
영화평론가 유지나가 말하는 즐거운 인생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1.04.14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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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준비하는 캠퍼스의 오후는 한산했다. 몇 번의 프러포즈 끝에 이뤄진 만남. 그이를 만나러 가는 길이 왠지 모르게 설레었다. 그이가 교수로 재직 중인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연구실 앞에 도착해 전화를 걸었다. 충무로에서 영화를 보고 학교 앞에 도착했다는 말에 약속시간을 넘겼다는 생각보다는 이상하게 ‘영화평론가답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십여 분이 흘렀을까. 검은색 생머리를 흩날리며 가까이 걸어오는 그이의 모습이 보였다.
함께 들어선 연구실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책과 비디오테이프였다. 책꽂이 곳곳에 세워진 액자들은 그이의 지난 인생을 말해주는 듯했다. 굳이 말로 다 하지 않아도 얼마나 열정적으로 살아왔는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이와 함께하고 또 사랑했는지 소소하게 느껴졌다.
점점 창문 밖으로 해가 저물면서 시내의 네온사인 불빛이 반짝거리며 비쳐들었다. 하루 중 후반부가 시작되는 이 시간. 서로 편하게 이야기를 주고받기 좋은 때라는 생각이 들 무렵 그이가 향을 피웠다. 무언가에 몰입하기 전 마음을 정리하는 데 좋은 향이라고 한다. 익숙한 듯 새로운 향이 공간을 가득 채울 즈음 그이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됐다.

자신만의 적성을 발견할 때 인생이 즐겁다
그이 주변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있다. 그중 상당수는 학생들이다.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강의는 기본이요, 만나는 학생들과 연구팀을 꾸려 세미나를 열기도 하고 외부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한다. 교수라는 자리에서 학생들과 보내는 시간이 그리 편하지 않을 것 같지만 그이는 자기보다 많게는 스무 살 어린 학생들과 친구처럼 ‘맞먹고 지내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학생들이 어린데도 가끔은 나보다 더 어른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아요. 요즘에는 취업문제 때문에 너무 현실적이어서 순수하거나 이상적인 면에서는 씁쓸한 마음이 들 때가 있죠.”
영화평론가이자 교수라는 이름이 익숙한 그이에게 몇 년 전부터 새로운 수식어가 생겼다. 호모루덴스라는 조금은 생소한 단어다. 처음 들을 때는 갸우뚱하다가도 그이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그렇게 어려운 말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호모루덴스는 말 그대로 하면 놀이하는 인간, 유희하는 인간이에요. 놀이 자체가 삶이 되는 인간인 셈이죠. 본래 놀이라는 개념에는 부정적인 의미가 없는데 보릿고개를 넘기고 경제개발을 겪으며 근면을 강조하다 보니 노는 것 자체를 나쁘게 여기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열심히 일하지만 제대로 즐길 수 없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놀이와 노동이 일치되기 힘든 거죠. 인생에서 놀이정신을 회복해 즐겁게 살자는 것이 호모루덴스의 핵심이에요.”
그이는 과거 연예계뿐 아니라 요즘 우리 사회를 들썩이게 했던 고 장자연 씨로 대표되는 여성 연예인 자살사건을 지켜보면서 호모루덴스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게 됐다. 많은 이들이 힘들 때 죽음을 선택하곤 하는데 이러한 현상의 근본 원인은 일과 놀이가 분리되어 있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즐겁게 살아야 하는 인간의 본질적인 부분이 비뚤어질 때 자살하는 일들이 생기는 것 같아요. 지금 우리 사회는 일과 놀이가 분리되어 있어요. 그렇다고 정신없이 일하고 화끈하게 노는 분리를 반대하는 게 아니에요. 일을 우선시하는 분위기에서 놀이를 금기시하다 보니 놀더라도 음성적으로 놀 수밖에 없게 되는 분위기가 문제라는 거예요. 심지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자신이 누구인지 물어볼 기회조차 주지 않는 사회 분위기에서 개인이 느끼는 심리적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죠.”
우리가 느끼는 괴로움의 상당수는 적성에서 비롯된 놀이가 삶 속에 녹아들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그이는 말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기만 해도 인생은 놀이가 된다는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제가 진행하는 씨네 콘서트에서 함께 보는 몇몇 영화들이 있어요. ‘즐거운 인생’이나 ‘브라보 마이 라이프’, ‘록큰롤 인생’ 같은 영화들이죠. 모두 힘든 상황 속에서 자신의 한계를 이겨내고 삶을 놀이로 바꾼 사람들의 이야기예요. 그런데 이런 영화를 보고 나면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나도 한때 좋아하고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는 거죠.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전 그 사람들에게 이렇게 대답해요. ‘지금부터 바로 시작하라’고요.”
노래든 춤이든 글쓰기든 뭐든 간에 누구나 젊은 시절 마음에 품었던 꿈이 있다. 그이는 그것이 무엇인지 떠올랐다면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말한다. 매일 하는 것이 아니어도 좋다. 일주일에 한 번, 취미로 시작하더라도 일단 삶에 포함시키고 나면 그로 인해 오히려 인생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어렸을 때 무엇을 좋아했는지 못다 이룬 꿈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떠오르는 것이 생기거든요. 사람은 평생 무언가를 배워야 하는 존재인데 이왕 배울 거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 그만큼 즐겁고 풍요로워질 수밖에 없어요.”
그이는 자신에 대해 잘 노는 편은 아니었다고 추억한다. 어디를 가든 흔히 말하는 내숭(?) 같은 것이 있었다고. 하지만 이제는 잘 노는 것(?)이 소문나서인지 여기저기 불려 다니는 일이 많다.
“패션쇼며 무대에 서서 아이들과 노래부르는 일이며 때로는 영화평론과는 동떨어진 듯 보이는 일을 종종 해요. 그런 일들이 저에게는 놀이인 셈이죠. 공익적으로, 사회적으로 하는 놀이라고나 할까요
(웃음). 호모루덴스에 깊이 들어갈수록 이런 일들이 제게 적잖은 에너지를 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살다 보니 영화가 다르게 보이더라
사회적으로 다양한 놀이(?)를 즐기고 있는 유지나. 무엇보다 그이의 아이덴티티를 가장 분명하게 말해주는 것은 영화평론가라는 타이틀이다. 1990년대 남성 중심적인 한국 사회에 시비를 걸고 자신의 생각을 똑 부러지게 말하는 그이의 모습은 아직도 많은 이들의 뇌리에 남아 있다.
영화평론가로 살아온 유지나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아무래도 아버지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그이의 아버지는 1950∼60년대 시나리오 작가이자 영화감독인 고 유두연 선생이다. 일본에서 불문학과 영상미학을 전공해 당시 엘리트로 불리며 영화계를 대표하는 존재였던 그는 전 재산을 털어 영화 ‘파멸’을 제작했지만 당시 군사정부의 검열에 걸리면서 영화를 개봉하지 못했다. 제목을 바꾸라는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 큰 이유였다. 이후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고 유두연 선생은 충격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영화 쪽은 상업성이 다른 예술분야보다 강해서 냉정한 편이에요. 주변 사람들은 아버지를 보며 엘리트 양반이 영화판에 가서 망했다고 수군거리기도 했죠. 친척들은 영화를 죄악시했고요. 그런데도 저는 영화가 좋아서 결국 영화를 전공하게 됐어요.”
학교도 입학하기 전의 나이였던 그이는 매일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장기를 두거나 그림을 그리고는 했다. 영화 이야기를 나눈 기억은 없지만 예술가인 아버지와 함께 지낸 시간은 그이에게 영향을 주기에 충분했다.
“아버지의 이야기가 당시 신문에 대서특필됐어요.많은 사람들이 아버지를 보러 찾아왔죠. 하지만 저는 매일 집에만 있는 아버지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라 생각조차 못할 만큼 어렸어요. 이제와 돌이켜보면 남다른 어린 시절을 보냈던 거죠. 그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의 저를 만드는 중요한 계기가 된 시간이었어요.”
결과적으로 영화 때문에 아버지를 잃었지만 그이는 누구보다 아버지와 닮아 있다. 이화여대에서 불문학을 전공하고 프랑스 파리7대학 영화기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이수해 영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모습만 봐도 그러하다. “아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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