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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휴진 강행하는 의사들 불만 폭발 ... "코로나 희생 대가 이거냐"
집단휴진 강행하는 의사들 불만 폭발 ... "코로나 희생 대가 이거냐"
  • 김정현 기자
  • 승인 2020.09.02 1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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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본관 앞에서 한 전공의가 정부의 의료정책에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1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본관 앞에서 한 전공의가 정부의 의료정책에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집단휴진을 강행하는 의사단체가 정부를 불신하는 이유를 찾으려면 김대중 정부가 의약분업을 시행한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의사단체가 기억하는 의약분업은 의료계 역사상 가장 뼈아픈 순간 중 하나다.

의약분업은 쉽게 말해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로 요약된다. 의약분업 이전에는 외래환자도 진료 직후 병원에서 처방약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 집권 이후 의약품 오남용, 그중에서도 항생제 처방률을 낮춘다는 이유를 내세워 의약분업 정책을 밀어붙였다.

의사들 시각에서 의약분업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정책이었다. 자신이 처방한 의약품을 의료기관에서 바로 외래환자에게 줄 수 있는데도, 이 기능을 약국으로 옮기는 것은 핵심 권한을 빼앗긴 것으로 받아들였다.

항생제 등 의약품 오남용을 줄이고 약화사고를 방지하겠다는 정부 설명은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의약분업으로 경제적인 이점이 사라진 것도 의사들을 자극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수가(의료서비스 대가)는 원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게 중론이다. 의사단체가 주장하는 국내 수가는 의료 서비스 원가의 70% 수준이다.

1999년 11월 이전에는 의료기관이 의약품 거래를 통해 마진을 남기고 이를 통해 경영 수지를 맞출 수 있었지만, 이때 실거래가상환제가 도입되고 약가가 평균 30% 인하되면서 경제적인 타격을 입었다. 여기에 2000년 의약분업을 시행하는 것은 의사들 팔과 다리를 자르는 것으로 해석하고 강력 반발했다.

1999년 11월 30일 장충체육관 집회에 2만명, 2000년 2월에는 4만명이 서울 여의도에 모여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의사들이 이 같은 대규모 집회를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같은 해 4월 4~6일에는 사상 첫 휴진을 강행했다. 7월에는 전공의들이 집단휴진에 들어갔고, 9월에는 의과대학 교수들도 단체행동에 동참했다.

전례 없는 실력행사에 나섰지만 의사단체는 큰 후유증을 겪었다. 당시 김재정 의협 회장과 한광수 서울시의사회장 등 지도부가 잇달아 구속되고 법정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김재정 회장은 면허까지 취소돼 오랜 세월 동안 진료를 하지 못했다.

천신만고 끝에 의약분업이 2000년 8월 전면 시행됐지만, 의사들은 정부가 '선 시행 후 보완'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지금까지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의협 이사를 지낸 한 전문의는 <뉴스1>과 통화에서 "의약분업 이전에 의사들에게 휴진이나 파업 같은 단어는 생소했고, 당시 정부와 투쟁하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며 "당시 정부를 믿은 의사들이 순진했다고 생각한다. 지금이라면 절대 받아들이지 않았을 정책"이라고 말했다.

의사단체가 줄곧 문제를 제기하는 수가 문제도 이번 집단휴진을 촉발한 다양한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수가는 환자에게 검사와 처치 등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 의사의 진료행위 값을 매기는 기준이다.

수가가 높을수록 의사들 수입이 많아진다. 의사단체는 현재 수가가 진료 원가의 70%대 수준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이를테면 의사가 환자 1명을 치료하면서 100원이 들었는데, 건강보험으로 보상받는 것은 70원에 그친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은 비급여 검사나 진료를 통해 부족한 수익을 메우고 있다는 게 의사단체의 일관된 입장이다.

갈수록 동네의원 설자리가 사라지는 것도 의사 사회에선 큰 위기감으로 작용한다. 의사들은 주요 수입을 건강보험 재정을 통해 얻는다. 그런데 건강보험 진료비에서 차지하는 동네의원 점유율은 감소 추세 또는 제자리걸음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난 5월 발간한 2019년 '건강보험 주요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건강보험 총 진료비는 86조4775억원으로 전년 대비 11.4% 증가했다. 요양기관별 진료비 점유율은 상급종합병원이 전체 17.5%를 차지했다. 이어 종합병원 17.2%, 병원급 16.7%, 의원급 28%, 약국 20.5%, 보건기관 0.2% 등이었다. 상급종합병원(대형병원)은 전국에 42곳뿐이지만, 의원급 의료기관은 3만 곳이 훌쩍 넘는다.

이 같은 대형병원 쏠림 현상으로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뒤 동네의원을 개업해도 예전보다 자리를 잡는 게 매우 어려워졌다. 전문의 자격을 취득 후 대학병원 교수진으로 남는 의사는 극히 드물다. 대부분 의원을 개업하거나 종합병원 봉직의사로 취직한다. 특히 개업의사는 대형병원으로 환자 쏠리는 현상에 매우 불만이 많다. 정부가 의료전달체계 개편에 손을 놓았다는 지적이다.

의료전달체계는 환자가 의료기관을 방문할 때 중증도에 따라 1차 동네의원, 2차 병원, 3차 대형병원으로 단계를 밟아가는 의료 시스템이다. 단계가 높은 병원에 가면 진료비가 훨씬 비싸져 감기 등 경증질환 환자들이 대학병원으로 쏠리는 현상을 억제한다.

의사단체가 두 번째로 집단휴진을 강행한 이유는 2014년 원격의료 파동이다. 원격의료는 의사와 의사, 의사와 환자 사이에서 정보통신기술(ICT)을 이용해 비대면 방식으로 이뤄지는 의료행위를 말한다.

의사가 없거나 부족한 도서벽지에서 ICT 기술을 이용해 환자가 의사로부터 화상으로 진료를 받게끔 하겠다는 게 정부 목표였지만, 당시 의사들 반발이 거셌다. 의료산업화를 무리하게 밀어붙인다는 표면적인 이유도 있지만, 이 시스템이 자리를 잡으면 대규모 의료자원을 확보한 대형병원이 장기적으로 동네의원보다 훨씬 유리할 수밖에 없다.

결국 동네의원을 죽이는 정책으로 의사사회에서 인식한 것이다. 당시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도 원격의료 도입에 반대했다. 올해 여당과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 정책도 의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다. 향후 10년간 배출되는 공공의사 4000명이 한동안 공공의료 분야에 종사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상당수가 동네의원 시장에 진출할 것이란 분석이 많다.

의사단체는 이런 예민한 사안을 처음부터 협의하지 않고 정부와 여당이 밀어붙인 것에 대해 불쾌해하고 있다. 의료 전문가를 배제한 채 논의한 정책인 만큼 정부가 어떤 명분을 내세우더라도 의사단체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분위기도 팽배하다. 지난 20년간 누적돼온 불만이 이번 의대정원 정책을 통해 표출했다는 분석도 일부 있다.

이번 집단휴진 강행으로 의사단체뿐만 아니라 전공의, 의대생들이 국민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기득권 유지, 환자를 볼모로 정부를 압박한다는 비난도 쏟아진다. 그럼에도 의사단체는 꿈쩍하지 않는 분위기다. 이번만큼은 밀리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의사 사회에 주류를 이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의료진이 희생했는데도, 그 결과가 의대정원 확대냐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개원의사단체 고위 관계자는 "의사는 의학 분야 최고 전문가인데도, 자율성을 인정하거나 대우는커녕 정부 규제만 점점 많아졌다"며 "지난 20년간 일부 대형병원 외에 대다수 의사는 설자리를 잃어갔으며, 더는 밀려서는 안 된다는 의지가 강하다"고 말했다.
 

 

[Queen 김정현 기자] 사진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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