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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권에 대한 배신감으로 얻은 정신병 장병두 옹 시인 김지하와 아들들 완치했다
운동권에 대한 배신감으로 얻은 정신병 장병두 옹 시인 김지하와 아들들 완치했다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1.04.14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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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소문은 결국 예기치 못한 논란으로 점화되었다. 105세의 노인이 의사 면허증도 없이 의료행위를 했다는 이유였다. 결국 그는 2006년 의료법 위반 혐의로 고발됐고 제도의학과 민간의술의 대치는 끝내 제도의학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그러나 여전히 그를 구명하고 그의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전승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토지문학관 김영주 관장의 인터뷰는 장병두 옹에게 완치를 경험한 수많은 사람들 중 유신독재와 맞서 싸운 민족문학의 상징 김지하 시인과 그의 가족도 포함돼 있다는 것을 확인시켰다. 사실 이보다 더 오래전 그와 같은 이야기는 김지하 본인의 시를 통해 본지에 소개된 바 있다. 지난 2009년 본지와 만난 김지하 시인은 여성지 첫 인터뷰를 기념하며 자신의 둘째 아들 세희 씨가 영국 유학을 떠나는 즈음 ‘우리 세희가’라는 제목의 시를 본지에 발표하며 에둘러 그간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최근 언론을 통해 알려진 김영주 관장의 이야기는 당시 김지하 시인이 본지에 발표했던 시 속에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절절한 부정을 녹여 공개한 내용이다.
오래전 김지하 시인은 유신독재와 맞서며 저항운동의 중심으로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다. 그 과정에서 독재정권에 의해 도피와 유랑, 투옥과 고문을 반복하던 그는 사형선고와 무기징역, 사면 후 석방이라는 생사의 갈림길을 경험하기도 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김영주 관장에 따르면 당시 운동권 세력은 김지하 시인을 감옥에서 독재정권의 손에 죽게 해 유신독재 저항운동의 동력으로 삼으려 했다는 것. 결국 그러한 시도는 실패로 끝나고 감옥에서 나온 그를 향해 거꾸로 배신자라는 낙인을 찍었다. 이에 김지하 시인은 분노와 배신감 등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수시로 병원을 들락거리게 됐다. 안타깝게도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놀란 두아들의 뇌신경이 마비되고 우울증에 빠지는 등 우환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한 상황에서 그 모든 병을 장병두 옹의 의술로 고치게 된 것이다.
최근 보도로 재차 화제가 되고 있는 장병두 옹의 의술은 현행법상으로는 인정 받을 길이 없는 상태다. 게다가 무수한 증인들이 존재한다 해도 과학적인 검증은 거의 불가능하고, 오직 남아 있는 것은 김지하 시인이 남긴 시 속 이야기뿐이다. 의술의 진위 여부는 둘째치고라도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다 배신자로 매도당해 병을 얻은 김지하, 그리고 그 아버지를 바라보며 함께 병을 짊어진 아들들이 현대판 ‘화타’로 불리는 장병두 옹을 만나 완치 받은 사실은 인구에 회자될 일임은 분명하다. 이에 2년 전 본지에 소개되었던 김지하 시인의 시의 일부를 다시 한 번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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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희가 - 김지하


<상략>

지금도 약을 먹고 있지만
휘경동 할아버지 약 먹고
지금은 많이 나았지만

그래도 
그래

아파
내가 그 점에선 더 아파

왜냐면
그 애 아픈 게
나 때문이라서 그래

나 
기인독방감옥에서 나온 뒤
미쳐서

해남집 살 때
한 밤에 발광할 때

큰놈하고 둘이 발을 구르며

엄마엄마
아버지가 왜 저래?
엄마엄마
아버지가 왜 저래?

세희는 울며
집 뒤에 가 숨었어

그때 
그 애 뇌신경 반이 마비되었대
그 뒤부턴

그 뒤부턴 낮에 자고
밤에 깨어 일어나

학교에도 열두시에나 겨우 가고
기신기신 겨우겨우
고등학교만 나오고

저희 형도 저도
대학도 못 가고


이런 말
청승스러워 하기 싫다만
이게 
사람 사는 걸까

내 언젠가
휘경동에 갔을 때

할아버지가 세희 진맥하던
그 첫 날

얘가 한 번 크게 놀랐구만
쪼끄맸을 때
심하게!

나 그 자리에서 없어져버리고
싶었어
정말

세월너머 그날 밤 생각나
그날 미쳐서
      선생님

‘너 
이제부터 한세월
정신병원 가서 살거라
저기 바깥에
웬 여자가 널 부른다
나가봐!’

나는 나가고
아내는 붙잡고
그래 둘이서 격투 벌일 때

애들 둘이서
마루에서 발을 구르며 발을 구르며.

다 
지났어

다 지난 세월이라 이제 이리
편안히 말해

하지만 한 가지
잊히지 않는 한 가지

있어
없었으면 좋으련만 있어
있다고
뭐냐면
이래

민주화운동 한답시고
나 감옥에 간 뒤

나 죽도록
지하실이며 벽돌담이며
차디찬 독방에서 구르고 구를 때

민주화 운동 한답시고
김지하 구명 한답시고

이랬대
“김지하를 죽이면 민주화되고
통일되고 나라 부강해져“

그랬대
그래서 어떤 위대한 선배는
나 출옥기념 술자리에서 만취한 끝에

‘지하는 지하는
감옥에서 그냥 죽어버렸어야 해’

말이야?
막걸리야?

<중략>

나 정신병원 열두 번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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