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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설가 이미지 뒤에 숨겨뒀던 동심을 꺼내놓다 ‘히트곡 제조기’ 방시혁 까칠하거나 매력적이거나
독설가 이미지 뒤에 숨겨뒀던 동심을 꺼내놓다 ‘히트곡 제조기’ 방시혁 까칠하거나 매력적이거나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1.04.14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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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가에서 핫이슈로 떠오른 오디션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을 보면서 가장 눈에 띄었던 심사위원은 단연 방시혁이었다. 백지영 ‘총 맞은 것처럼’, 2AM ‘죽어도 못 보내’ 등 최고의 히트곡을 작곡한 그가 날카롭고 시크하게 참가자들의 노래를 지적하는 모습을 보며 가끔은 참가자들의 편이 되어 가혹하다고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회를 거듭할수록 후배 음악인을 위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이라는 것이 느껴지자 독설은 오히려 그들을 살리는 처방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요사업으로 ‘국민 삼촌’에 도전
방시혁은 최근 최승호 시인과 함께 ‘최승호·방시혁의 말놀이 동요집’을 펴냈다. 동요집은 최승호 시인의 동시에 방시혁이 곡을 붙여 만든 것으로 타이틀곡 ‘원숭이’는 각종 음악 사이트 동요 주간 차트에서 어린이들의 우상(?) 뽀로로를 제치고 1위에 오르는 등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 동요에 대한 그의 관심은 단순히 동요집을 내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동요 전문 유통사 ‘엉클뱅’을 설립한 것. 얼클뱅은 방시혁의 브랜드 네임 ‘hitman bang’에서 착안한 것으로, 어린아이들의 꿈과 희망이 되어줄 동요를 만들어내는 그를 삼촌으로 표현했다. 2005년 2월 빅히트엔터테인먼트를 세워 사업가의 면모를 다지기도 했기에 그의 행보가 전혀 어색한 것은 아니지만 어린이 동요 사업이라니 그간의 독설가 이미지와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듯했다.
그가 이러한 사업에 뛰어든 것은 철저히 사회적 책임 때문이었다. 시대의 변화를 전혀 읽어내지 못한 동요들과 열악한 동요시장, 아이들조차 동요를 ‘수준 낮은’ 음악으로 치부하는 경향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던 것. 엄마들과 아이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퀄리티 높은 컨텐츠를 만들어야겠다는 판단에서 이 사업을 시작했다. 
“동요시장의 판을 다시 짜야 했어요. 무엇보다 동요가 수익성이 있다는 걸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엉클뱅’이라는 유통사를 세운 것도 그 때문이에요. 수익성이 보이면 더 많은 사람들이 동요를 만들 테고 그러면 좋은 퀄리티의 곡들도 많아지겠죠. 이슈가 될 수 있도록 앞으로 창작동요제도 열 계획이에요.”

‘위대한 탄생’에서 하는 독설은 독설도 아니다?
대중 사이에 그는 무엇보다 ‘위대한 탄생’의 독설가로 알려졌다. 그가 처음 참가자들에게 날카로운 독설을 쏟아내면 “너무 심하게 말하는 것 아니냐”며 항의글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그의 독설은 매력으로 다가갔고 심지어 ‘호감형 독설’이라는 말도 적지 않게 듣고 있다. 사실 그가 ‘위대한 탄생’에서 직설적인 말을 사용하는 이유는 출연자를 위해서다. 출연자들 중에는 가수에 처음 도전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동안 오디션에 여러 차례 떨어져 마지막 기대를 걸며 참가하는 사람도 있다.
“‘위대한 탄생’ 참가자들은 노래가 취미인 사람들이 아니에요. 대학을 가거나 노래실력을 뽐내기 위해 나온 것도 아니죠. 사실 기성 가요계는 문이 닫힌 상태라 그 문을 열고 들어가기 위해서는 기획사 연습생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여기 참가자들은 그러한 기회조차 얻지 못한 사람들이 대다수예요. 그런 친구들은 빨리 그만두게 하거나 가수로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죠. 그러니 무엇이든 확실하게 이야기해주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어요. 이들에게는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요.”
사실 그가 방송에서 보여준 독설은 빙산의 일각이다. 소속사 가수들에게는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화를 내기도 한다. 음악에서만큼은 완벽주의 기질을 100% 발휘하기 때문이다.
“임정희, 에이트의 이현은 제가 ‘위대한 탄생’에서 독설가로 불리는 것을 보고 이해를 못하겠대요. 그 친구들의 신인시절에는 제가 더한 말도 하면서 혼을 냈거든요. 사실 상처 주는 말을 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정말 아무 말도 하기 싫은 친구들이 있는 반면에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보이면 말을 해주는 거죠.”
그는 ‘위대한 탄생’의 멘티들과 후배 음악인들에게 언제나 멘토로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초심을 잃지 말고 항상 노력했으면 좋겠다는,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이 진리는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열쇠가 된다고 조언한다.

천재 작곡가? ‘노력형 음악인’에 가까워
‘히트곡 제조기’, ‘천재 작곡가’. 이 같은 수식어에는 그가 음악에 얼마나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는가를 말해준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를 ‘노력형 음악인’이라고 말한다. 번뜩 떠오르는 영감을 받아 적어 빠른 시일 내에 노래를 만들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곡을 만들어주어야 하는 가수를 몇날 며칠이고 생각한다. 이 가수가 어떤 노래를 불러야 가장 매력적으로 보일까 치열하게 연구하다 보면 퍼즐이 맞춰지듯 생각이 떠오른다.
“저는 작업실이나 피아노 앞에서 곡을 만들지 않아요. 일상을 살면서 노래가 만들어질 때까지 언제나 그 가수를 떠올리죠. 그러면 어느 순간에 멜로디나 가사의 형태로 나와요. 찜질방에서나 심지어 회의시간에도 많이 떠오르는 편이에요. 얼마 전에 알게 된 사실인데 이러한 사고법을 두고 심리학에서는 ‘Aha-Experience(갑자기 문제 해결방법이 떠오르는 것)’라고 부르더군요. 실제로 히트한 노래 대부분은 이렇게 탄생했어요.”
매일 생각하고 연구해도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다. 곡을 만드는 작업은 피를 짜내는 것과 같다고 표현하는 그는 그러할 때마다 먹는 것과 술 마시는 것으로 풀어 살이 쪘다고 웃으며 고백한다. 연륜이 쌓인 요즘에는 비교적 태연하게 넘기지만 머리를 벽에 박아도 생각이 떠오르지 않으면 말 그대로 미칠 것만 같다고.
“작곡가가 받는 스트레스는 엄청나요. 자기 자신을 컨트롤할 수 없다는 것만큼 무기력한 게 없는데, 뜻하는 대로 곡이 떠오르지 않으면 미칠 지경이죠. 그렇다 해도 해결방법은 없어요. 나이를 먹는 것의 유일한 장점이라면 경험이 쌓인다는 것인데요. 옛날에는 곡이 안 써지면 미칠 듯이 저를 괴롭혔는데, 지금은 안 나오면 ‘안 나오나 보다’라며 좀 더 여유롭게 기다릴 줄 알게 되었어요.”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온 노래들은 하나하나가 소중하지만 특별하게 애정을 갖지는 않는다. 노래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자식처럼 애지중지하며 듣고 또 듣지만 막상 음반시장에 나오게 되면 철저하게 제작자의 입장으로 바라본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대중의 반응을 살핀 뒤 미련 없이 다음 곡에 몰입한다.
“과거의 곡들을 들으면서 스스로 감탄한다거나 특별한 애정을 갖거나 하지는 않아요. 심한 말로 ‘끝나면 땡’이거든요. 오히려 다음번에는 이 곡보다 더 좋은 곡을 쓰겠다고 다짐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죠. 이겨야 할 대상이라고나 할까요.”

‘모태 범생’이었던 어린 시절
서울대 영문학과 출신의 어머니와 고대 경제학과에 서울대 대학원을 나온 아버지 슬하에서 자란 방시혁은 서울대 미학과 출신으로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1등을 도맡아 해온 그야말로 ‘모태 범생’이었다. 중학교까지는 열심히 놀아도 성적이 좋았고, 너무 놀아서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살짝 순위권 밖으로 밀려났지만 2∼3학년 때는 다시 그 자리를 지켰다. “세상에서 공부가 가장 쉬웠다”고 말하는 그에게 ‘망언’이라는 타이틀이 붙으면 어쩌나 걱정마저 들었다.
“사실 공부를 열심히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학창시절에는 천재라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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