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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 교수, 과학공부의 핵심은 ‘호기심’
김범준 교수, 과학공부의 핵심은 ‘호기심’
  • 송혜란 기자
  • 승인 2020.09.23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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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 성균관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과학공부의 핵심은 ‘호기심’
김범준 성균관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과학공부의 핵심은 ‘호기심’

 


‘물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 아마도 어려운 수학적 기호들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물리를 연구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와의 인터뷰는 진정한 물리란 무엇이며, 이 학문이 사회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알아볼 기회였다. 더 나아가 인공지능 시대에 필요한 능력과 미래 사회가 원하는 인재를 기르는 데 주효한 자녀 교육법에 대해 생각할 거리도 남겼다.   


김범준 교수는 서울대 물리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스웨덴 우메오 대학과 아주대를 거쳐 현재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의 세부 전공은 통계물리학. 2006년 한국물리학회에서 용봉상을 받을 정도로 과학계에서 꽤 인정받는 학자로 명성이 자자하다. 과학의 대중화를 넘어 대중의 과학화를 꿈꾸는 위인이다.   

그런 그가 물리를 한마디로 ‘사물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했다. 물리(物理)를 한자로 풀면 모든 사물의 이치라는 뜻이다.  

“보통 사물이라고 하면 눈에 보이는 물질만 생각하는데요. 이외에도 ‘IOT’라고 하는 사물인터넷을 비롯해 사회, 사람 관계, 조직 등 물리학 연구 범위는 매우 넓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사회에서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경제 현상도 물리학의 시각으로 바라볼 여지가 상당하지요. 물리학은 전통 물리학뿐 아니라 다른 분야로도 얼마든지 확산이 가능하답니다.” 

과학자가 세상을 보는 법  

김 교수는 한창 여러 구성요소가 서로 연결된 자연과 사회를 연구하고 있다. 많은 것들이 모여 상호작용할 때 전체가 어떤 거시적인 특성을 새롭게 만들어내는지가 주된 관심인 것.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현상에 대한 궁금증에서 출발해 빅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복잡계 과학의 연구 방법으로 이해하고 있다. 복잡계란 말 그대로 무엇인가 복잡해 보는 것들을 가리키는 용어다.  
“굉장히 얽히고 섞인 것들이 강하게 상호작용하는 걸 말하지요.” 

개별 요소를 아무리 눈을 씻고 쳐다봐도 보이지 않던 현상이 영향을 주고받는 여럿이 함께하며 질적으로 다른 현상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전통적인 물리학에서 볼 때 제일 전형적인 예가 반도체다. 수많은 원자들이 한 시스템 안에서 수없이 상호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딱딱한 얼음의 성질을 파고드는 과정에서도 복잡계가 거론된다.  

“얼음은 수많은 물 분자로 이뤄져 있는데, 그 분자 하나하나가 딱딱하진 않거든요. 얼음도 마찬가지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다가 ‘딱딱하다’는 거시적인 특성을 만들어낸 겁니다. 이를 또 다른 말로 응집물질 시스템이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통계물리학에서는 어떨까? 통계물리학은 여기서 더 확장된 사회, 경제 현상, 조직 등을 복잡계로 보고 연구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사회가 하나의 큰 얼음이라면, 그 안의 경제 주체는 물 분자가 되는 셈이다. 이로부터 복잡계경영학이라는 융합 학문도 탄생했다.  

“기업은 다양한 개인들로 구성돼 있잖아요. 그 안에서 각자 주어진 일을 수행하며 서로 숱한 영향을 주고받고요. 이를 개인의 측면이 아닌 전체적인 시점에서 보면 아주 전형적인 복잡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는 전체가 가지고 있는 통계적인 특성을 이해하고, CEO가 원하는 규칙을 만들기 위해 어떻게 개입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얻는 데 목표가 있다. 예컨대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고자 할 때 복잡계경영학이 유용하게 쓰인다.  

또한 주식 시장에서 한 회사의 내부 사정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주가를 복잡계로 할 수 있다. 서로 엇물린 수많은 경제주체들 사이의 연결이 바로 주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창의력, 인공지능에도 있다  

이는 곧 김범준 교수가 과학을 공부하는 재미다. 이에 아이들이 수학적 기호를 접하기 전에 먼저 진정한 물리나 물리학자들이 하는 일을 파악했으면 좋겠다고 그는 소원했다.  

“제가 공부한 표준 물리학이 지금에서야 비로소 무기가 되어 통계물리학의 길을 가게 해줬는데요. 현재 학생들이 수식의 형태로 받아들이는 물리가 비록 메마른 지식이라고 해도 결국 모여서 훗날 다양한 분야에 적용할 수 있을 거예요. 다만 어린 나이에 과학 그리고 과학자라는 직업의 매력을 알면 좀 더 동기부여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더욱이 인공지능 시대에 과학 공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김 교수. 누구나 알고 있듯 인공지능 기술은 자연과학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인공지능을 구현하는 인공신경회로망만 해도 뇌과학, 신경과학에서 비롯되지 않았는가. 여느 학문이 그렇듯 기본을 알아야 응용도 가능한 법이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창의력이 각광받고 있지만, 이 또한 과학기술로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는 의견도 많다.  

“상상력이 세상에 없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능력이라고 한다면, 이미 인공지능도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인공지능에게 기존 그림을 학습시키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그림을 그려낼 정도로 기술이 발전했습니다. 고흐의 화풍으로 세잔의 그림을 다시 그릴 수도 있는걸요.” 

물론 아직 창의성만큼은 인공지능이 인간을 따라갈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먼 미래에도 이 능력이 인간만의 독특한 영역으로 남아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고 그는 덧붙였다.  

김범준 교수, 과학 공부? 수학이 아니라 호기심으로 접근해야

 

과학 공부? 수학이 아니라 호기심으로 접근해야 

어쩌면 인공지능이 스스로 인공지능을 만드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는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는 요즘. 갈수록 미래의 불확실성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이를 대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단연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김 교수는 재차 강조했다.  

“기본과학, 자연과학, 물리학, 생물학을 공부하면 어떤 세상이 오더라도 다 적응할 수 있을 거예요. 인공지능에 특화된 지식은 더 이상 써먹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부모라면 일찍이 자녀에게 과학 공부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필요가 있다. 문제는 구체적인 방법론에 있다. 확실한 것은 과학이 단순한 지식의 총합이 아니라는 점이다.  

“태양계의 행성 이름을 다 외운다? 그게 과학 공부는 아닙니다. 수학을 빨리 정확하게 푸는 능력과 과학도 사뭇 다른 이야기예요.” 

그렇다면 과학 공부의 핵심은 무엇일까?  

“호기심이지요. 일상 속에서 자기가 궁금한 것을 찾아내고, 또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름 노력하는 능력이요. 부모라면 자녀에게 이러한 능력을 길러줘야 합니다. 모두가 과학자가 될 필요는 없지만, 아이가 살면서 필요한 교양 과학을 습득하는 측면에서라도 절대 아이의 관심을 뺏지 마세요.” 

이때 책이나 직접적인 경험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그는 조언했다. 그 역시 어릴 때 천체망원경을 보는 게 참 재밌었다고 회상했다.  

“아이를 데리고 천문대에 가보세요. 그곳에서 아이가 즐거워한다면 그 흥미가 끊이지 않도록 관심 분야 책이나 또 다른 경험이 가능한 곳으로 손잡고 떠나 보는 겁니다. 일단 자연 속으로 가보는 것은 어떨까요? 자연 생태계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되, 절대 강요는 하지 마세요. 그곳의 신비로움에서 얻는 감동은 부모가 대신 줄 수 없으니까요. 과학에 정말 꽂힌 아이들은 부모가 뜯어말려도 계속 공부를 해 나갈 겁니다.”


[Queen 송혜란 기자] 사진 양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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