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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에 돌아온 조영남, 비우니 더 채워진 지난 시간들
5년 만에 돌아온 조영남, 비우니 더 채워진 지난 시간들
  • 김은정 기자
  • 승인 2020.11.02 07: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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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진실과 거짓이 교차한다. 진실이 거짓 같고 거짓이 진실 같은 모호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참된 진실을 갈구하며 살아간다. 어쩌면 그런 소용돌이 속에서 기나긴 시간을 인내해야 했던 사람이 조영남이 아닐까 싶다. 미술 대작 문제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그가 다시 대중 앞으로 돌아왔다. 가수로 화가로, 작가로 여전히 식지 않는 열정을 불태우며 활동을 재개한 그를 만나 보았다. 

먼저 그에게 다시 대중 앞으로 돌아 온 소감을 물었다. 잠시 한숨을 쉬더니 그가 하는 말.
“별다른 소감은 없고 ‘내가 참 늙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젊은 친구들과 함께 있어 보니 내가 늙은 것 같아.”  
5년간의 침묵을 깨고 대중들에게 다시 나오는 만큼 뭔가 묵직한 대답을 기대했건만 너무나 가식 없고 솔직한 그의 말에 역시 ‘조영남답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나긴 논란에 종지부를 찍다
2016년 다른 사람에게 대작시킨 작품을 팔아 1억 5000여만 원을 챙긴 사기혐의로 기소되면서 시작된 지난 5년간의 시간. 논란의 핵심은 이것이었다. 


‘조수에게 그려오게 한 작품을 자신이 그렸다고 하고 팔았으니 사기다. 
아니다. 누구 손으로 그렸냐 보다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냐가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조수는 단순작업이었을 뿐 작품의 진짜 창작자는 조영남이다.‘ 
이 문제로 그는 1심에선 유죄에 집행유예가 나왔지만, 2심과 대법원에서 결국 무죄가 나왔다.

긴 논란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서 나온 문제일 수 있다. 사람들은 미술가가 직접 그려 완성한 작품만이 그의 작품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건 전통적인 관념이다. 그런데 현대미술은 상식에서 벗어났다. 이젠 누구 손으로 형상화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인가가 중요하다. 이미 공장에서 찍어 나온 공산품을 사서는,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게 자기 미술품이라고 주장해도 되는 게 현대미술이다.

“마르셀 뒤상의 변기라는 작품이 있어요. 뒤상이 철물점에서 파는 변기를 사와 거기에 자신의 사인만 했는데 이것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거예요. 현대미술의 이정표와 같은 이 작품을 두고 뒤상의 작품이 아니라고 할 사람은 없는 거예요.”   

대법원의 판결문에도 이런 개념이 잘 반영되었다. 조영남이 화투를 소재로 한 고유 아이디어를 냈고, 이것을 조수 작가인 송 모 씨가 기술을 보조한 역할을 한 것에 불과하므로  사기가 아니다. 
 

자신의 작품 세계를 총망라한 개인전

무거운 짐을 벗고 다시 활동의 기지개를 켠 조영남. 
첫 번째 활동은 충남 아산에서 조용히 개인을 여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러자 서울의 한 갤러리에서도 개인전을 열자는 제의가 들어 왔다. 그동안 조영남의 작품을 연대별로 총정리 하는   전시회로 그가 미술을 시작한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 약60년의 작품 세계를 돌아볼 수 있다. 지난 9월 열린 기자 간담회에선  간만에 열린 그의 개인전에  관심과 이목이 집중됐다.

“깜짝 놀랐어요. 난 처음에 몇 명이나 올까 했거든... 그런데 기자가 수십 명이 온 거야. 법원까지 가고 했으니까 관심을 가져 준거지. 누가 요즘같이 어려운 세상에 개인전 한다고 관심가지겠어요? 어찌 보면 국가가 나를 다시 화가로 키워 준거지. 국가 덕 본거야”
역시 솔직담백한 그만의 어법이다.  

‘아트 하트 화투 그리고 조영남’ 전이라는 이름의 이번 전시회에서는 약 50여 점의 그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이번 전시회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그리는 ‘변기’ ‘미싱’이라는 작품도 전시돼 눈길을 끄는데 특히 어려운 시절 부모님에 대한 기억이 진하게 묻어 있다. “아버지가 우리 어릴 때 풍을 맞아 용변을 요강에서 보셨어요. 그러면 나하고 내 동생이 그걸 항상 비우는 당번이었거든.” 

13년간 중풍으로 누워계셨던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작품 요강은 어쩌면 뒤상의 변기보다 훨씬 더 깊은 의미와 울림을 주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그런 아버지를 간병하며 재봉틀 질로 식구들을 먹여 살린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미싱’이라는 작품 속에 녹아 있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화가 조영남의 작품세계를 돌아보고 현대 미술에 대한 의미를 이해해 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미스터 트롯 F4, 쎄시봉과 함께 한 명불허전의 무대 

얼마 전 조영남은 한 종편의 예능프로그램에서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미스터 트롯 F4와 송창식, 김세환 등 쎄시봉 친구들과 함께 인상 깊은 무대를 보여줬다.
한창 어린 후배인 F4와 노련한 선배 가수들의 무대가 어우러진 무대는 시청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안겨 줬다. 특히 조영남과 이찬원이 함께 부른 ‘딜라일라’는 한 번의 리허설도 없이 그 자리에서 즉석으로 이루어져 더욱 깊은 감흥을 끌어냈다. 

“작가한데 일부러 말했어요. 찬원이를 미리 만나지 않고 리허설 같은 거 한 번도 하지 않고 그냥 그날 녹화할 때 보겠다. 미리 내가 찬원이를 보고 찬원이가 나를 보면 감성이 죽는다. 그래서 정말 한 번도 맞춰보지 않고 듀엣 곡을 불렀는데 역시 내 계산이 맞은 거야. 그날 처음 만나 즉석에서 부르니까 더 흥이 나고 좋더라고.” 

이날 방송에선 또 하나 의미 있는 일이 있었는데 쎄시봉 선배들이 F4 후배들에게 감사의 트로피를 증정한 것. 이 또한 조영남의 아이디어였다. 
“이 젊은 친구들이 트롯으로 한국 대중음악의 흐름을 바꿔 놓았잖아요. 그리고 유사 이래 이렇게 우울한 시기에 우리 국민들을 위로하고 용기를 불어넣어 줬거든. 우리가 못한 일들을 이 어린 후배들이 해줬으니 고마운 일이지. 그래서 그것에 대한 감사함을 꼭 표시하고 싶어서 내가 트로피를 주자고 했어요. ” 

후배들을 위해 그는 트로피에 들어갈 문구와 배치까지 직접 해 방송 당일 후배들에게 수여했다. 뜻밖에 선배들의 깊은 마음과 정성어린 트로피를 받은 F4들은 눈시울을 적셨다.  
세대를 초월해 하나가 되는 참 훈훈한 광경이었다.   
         

새로 선보이는 두 권의 신간 

조영남은 재판 기간 동안 두 권의 책을 써 최근 출간했다.  
한권은 ‘이 망할 놈의 미술’이라는 책으로 재판을 겪으면서 대중이 현대미술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생각에서 쓰게 된 것이다. 현대미술에 대한 기초적 개념부터 탄생 배경, 역사, 현황을 살펴보는 내용으로 100문 100답의 형식으로 쓰여져 있어 현대 미술을 쉽게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한권은 ‘보컬그룹 시인 이상과 5명의 아해들’이라는 책이다. 이미 전작에도 ‘이상은 이상이었다’라는 책을 쓸 만큼 이상을 좋아하는 그가 이번엔 이상 시에 함축된 여러 가지 의미를 파헤친 책을 낸 것이다.   

“학창시절부터 이상을 숭배했는데 지난 여름 우연히 말러의 교향곡을 듣게 됐는데 너무 가슴이 떨리고 좋은 거야. 그래서 말러도 좋아하게 됐는데 그럼 이 둘에 대해 책을 써보자 했는데 미학적으로 조금 균형이 안 맞는 것 같아. 그래서 좀 더 넓혀 문학은 이상, 음악은 말러, 미술은 피카소, 철학은 니체, 과학은 아인슈타인으로 해서 5명의 이야기를 엮으니 딱 좋더라고. 이상의 문학 속엔 이 5가지가 다 함축되어 있거든.”     

얼핏 듣기엔 무슨 내용일지 짐작이 안 가고 좀 난해하지 않을까 싶은데 마치 서태지와 아이들처럼 이상과 다른 4명이 보컬을 만들어 노래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이라니 일반인들이 난해해하는 이상의 문학을 조금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책을 낸 출판사 대표도 ‘이런 책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조영남선생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뛰어난 상상력과 기발함을 현실로 구현하는 조영남 선생이 보여주는 폭넓은 스펙트럼이 다양성이 부족한 우리 사회에 자극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라고 하니 이상에 대해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기대해도 좋을 만한 책이다. 
 

나를 더 채울 수 있었던 시간들

아무리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라고 해도 지난 5년간의 시간은 마음고생이 컸을 듯싶다. 그 시간들을 어떻게 보냈는지 물었다.
“유배생활을 한 거나 마찬가진데 옛날에는 어디 멀리 끌려가 갑갑하게 유배생활을 했잖아요. 그런데 난 내 집에서 매일 창문으로 한강을 바라보며 지내다 보니 할 만했지. 그리고 다른 활동이 없으니 내가 좋아하는 그림도 많이 그리고 책도 쓰고 해서 나름 잘 보낼 수 있었어요.” 

처음엔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면 감당하겠다는 생각도 했다는 그는 마음을 비우니 더 편해지고 이번 일을 통해 얻은 것도 많다고 한다. 
“어려운 일을 당해보니 아군과 적군이 확연히 구분되는 거야. 내가 어려울 때 늘 내편이 되어준 사람들을 얻었고 이제 그 사람들과 더욱 끈끈하게 형제처럼 지내게 됐어요. 그리고 어려움에 빠진 후배들에게도 말해주지. 지금 어렵다고 계속 어려운 게 아니라 좋은 일도 분명히 따라올 거라고. 그러니 낙심하지 말고 길을 찾으라고.”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그 말이 기나긴 인고의 시간을 보낸 그 자신에게도 들려주는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로 들렸다. 


[Queen 김은정기자] 사진 양우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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