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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을 감싸안으며 나눔과 사랑 실천하다 국민가수 조용필,소록도 공연의 위대한 감동
아픔을 감싸안으며 나눔과 사랑 실천하다 국민가수 조용필,소록도 공연의 위대한 감동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1.05.16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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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사슴의 섬’ 소록도에 울려퍼진 희망가
소록도는 나병이라고 불리는 한센병(나병균을 발견한 한센의 이름에서 유래한 명칭) 환자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땅이라는 인식이 강한 섬이었다. 2009년 3월 처음으로 소록도와 육지를 연결하는 도로가 개통되기 전까지는 육지와 거의 단절되다시피 했다. 이처럼 소외 받고 상처받은 사람들의 아픔이 서려 있는 소록도에 얼마 전, 사랑과 감동이 흐르는 희망가가 울려퍼졌다. 가수 조용필이 소록도에 거주하는 300여 명의 한센인과 함께 울고 웃는, 한마음의 자선축제를 펼친 것. 이날 공연에서 조용필은 소록도에 다시 오겠다 한 약속을 지킨 데 대한 소감을 전했다.
“작년에 날씨가 참 좋았는데 올해도 이렇게 화창한 봄날 여러분과 함께할 수 있어 무척 기쁩니다. 이번 공연에서는 여러분의 신청곡도 많이 받아 불러드리려고 합니다. 박수도 치시고 춤도 추시고 마음껏 즐기세요.”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객석 곳곳에서는 신청곡이 쏟아졌고, 조용필은 ‘돌아와요 부산항에’, ‘여행을 떠나요’, ‘친구’, ‘허공’, ‘단발머리’ 등 10여 곡이 넘는 대표곡을 열창했다. 또 그는 노래를 부르면서 객석으로 내려가 한센인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고 포옹하면서 그들을 위로하는 한편, 무대 위에 올라온 한센인과도 함께 어깨춤을 추는 등 진정으로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많은 한센인들은 아무런 편견 없이 자신들을 안아주는 조용필의 선한 마음에 눈시울을 적시며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작은 사슴의 섬’이라는 소록도의 이름에 걸맞게 작지만 따뜻한 감동이 어우러진 공연이었다.
조용필의 소록도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5월 영국의 필하모니오케스트라와 함께 ‘필하모니아 AT 소록도’ 공연에서 게스트로 출연해 자신의 노래 두 곡을 불렀는데, 짧은 출연에 많은 한센인들이 아쉬움을 드러내자 조용필은 “내년에 꼭 이곳에서 제대로 된 공연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정확히 1년 뒤 약속을 지킨 것이다. 공연을 관람하던 한 한센인은 “도로가 개통된 후 몇 번 유명가수들이 소록도를 찾았고 꼭 다시 오겠다고 했지만 말뿐이었다. 그런데 조용필 씨는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이런 가수는 소록도에서 그가 유일하다. 육십 평생을 이 섬에 살면서 이런 감동은 처음이다”고 말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조용필은 이번 공연 소식을 언론에 알리는 것도 꺼려했다는 후문이다. 한센인 자선공연 계획이 외부에 알려지면 자칫 생색내는 걸로 비쳐져서 행사의 순수한 의도가 왜곡될 우려가 있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요란하지 않게, 그러나 진심 어린 사랑으로 세상의 그늘진 곳을 어루만지는 그의 따뜻한 마음이 우리 모두의 가슴을 울리는 순간이다. 이날 조용필은 마지막 곡으로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를 열창한 뒤 아쉬워하는 한센인들을 위해 “내년에 또 오겠다”며 또 한 번의 희망을 약속했다.
나눔을 실천하는 ‘영원한 오빠’
‘조용필’이라는 이름은 가요계 살아 있는 전설이나 다름없다. 데뷔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줄곧 우리나라 가요계의 정상을 지켜왔고, 요즘도 여전히 공연마다 수만 명의 오빠부대를 몰고 다니는 영원한 오빠다.
1968년 록그룹 ‘애트킨즈’로 데뷔한 그의 음악은 록에 뿌리를 두고 있다. 솔로로 전향한 후 1979년 ‘돌아와요 부산항에’, ‘단발머리’가 수록된 1집을 발표하면서 발라드와 트로트를 넘나드는 음악으로 스타덤에 올라 한 시대를 풍미하는 가수로 성장했다. 밴드 출신인 그는 주로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불렀고, “가장 비트를 잘 타면서 노래할 줄 아는 가수”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1980년대는 그야말로 ‘조용필의 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의 매해 모든 방송사의 최우수상, 가수상을 휩쓸었고 1987년에는 일본까지 진출해 해외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한창 정상에 올라 있던 1992년 그는 더 이상 방송 출연을 하지 않고 자신의 고향인 무대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했다. 스스로 마흔이 넘은 나이에 10, 20대를 끌어안으려는 것은 욕심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후로 지금까지 그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관객들과 직접 대면하는 공연을 펼치고 있으며, 거의 모든 공연이 매진에 가까운 기록을 이어오고 있다. 자신의 음악을 사랑해주고 진정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간다는 그는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무대 연출을 위해 여전히 직접 공연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데뷔 40년을 맞았던 지난 2008년에는 100억원의 제작비를 투입해 움직이는 무대를 마련, 무대와 상대적으로 떨어진 스탠드석 2, 3, 4층에 앉은 관객들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의 공연은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어려운 이웃을 어루만지고 사랑을 실천하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소록도 공연 외에도 그는 거의 매해 자선공연을 연다. 지난해 5월에는 잠실 주경기장에서 ‘러브 인 러브’라는 소아암 환자 돕기 자선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이밖에도 남몰래 장학재단을 만들어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돕고 있지만 본인이 직접적으로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아 조용하지만 꾸준하게 후원을 이어가고 있다. 
자신이 받은 사랑을 사회에 돌려주고 보답할 줄 아는 작은 거인 조용필. 뛰어난 가창력과 흡인력 있는 무대뿐 아니라 깊고 풍성한 마음을 가진 그이기에 40년이 넘는 오랜 시간 동안 ‘조용필’이라는 이름이 큰 사랑을 받지 않았나 싶다. 가수 조용필, 앞으로도 우리나라 가요계 그리고 우리 마음속에 영원한 가왕(歌王)으로 남아주길 바란다.

 

“소록도와 육지를 연결하는 도로가
 개통된 후 유명가수들이 몇 번 소록도를
 찾았고 꼭 다시 오겠다고 했지만
 말뿐이었다.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지킨 것은 조용필이 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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