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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어린이를 사랑한 여성, 비어트릭스 포터 이야기
자연과 어린이를 사랑한 여성, 비어트릭스 포터 이야기
  • 전해영 기자
  • 승인 2020.11.15 11: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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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네이버영화(피터래빗 포스터)
사진 출처 네이버영화(피터래빗 포스터)

 

비어트릭스 포터(Beatrix Potter)가 누군지 금방 생각나지 않으시나요? 그럼, ‘피터 래빗(Peter Rabbit)’은 어때요? 네, 맞아요. 그림책과 영화로 많은 이에게 익숙한 캐릭터, 파란 재킷을 걸친 귀여운 말썽꾸러기, 그 토끼요. 포터는 ‘피터 래빗’을 탄생시킨 영국의 동화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입니다. 그녀는 또 버섯이나 화석 등을 연구한 과학자이자 자연보호운동가이기도 합니다. 

1866년 런던 근교의 부유한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난 그녀는 학교 교육은 받지 않고 가정교사에게 배웠으며 친구도 거의 없었습니다. 그 대신 작은 동물을 무척 좋아해서 강아지, 토끼, 생쥐, 고슴도치, 심지어 박쥐까지 손수 기르고, 곤충과 식물의 관찰 그림 그리기를 즐겼습니다. 포터는 14살 무렵부터 일기를 썼는데, 그 내용이 주변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부터 방문했던 지역 사람들의 삶과 자연에 대한 섬세한 관찰, 미술작품에 대한 감상평, 사회문제까지 다양해서 빅토리아여왕 시대 활력이 넘치던 영국사회를 이해하는데 요긴한 자료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포터가족은 매년 여름휴가를 풍광이 아름다운 전원에서 보내곤 했는데, 특히 그녀가 16살이던 해 휴양지 레이크 디스트릭트(Lake District)에서 만난 그 지역 교구목사 해드윅 론즐리(Hardwicke Rawnsley)는 평생토록 그녀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시인이자 자연보호운동가였던 론즐리 목사는 1895년에 공식출범한 ‘내셔널트러스트(National Trust for Places of Historic Interest or National Beauty)’의 공동설립자 중 한 사람으로 초대 사무국장을 지냈습니다.

당시 산업혁명으로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룩한 영국에서 자행되던 무분별한 개발과 자연환경 파괴, 문화유산의 독점적 소유를 반대하며 출범한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기증한 자산과 기부금으로 보존가치가 높은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을 확보하여 시민의 소유로 영구히 보전하고 관리하는 시민운동입니다.

휴가여행을 갈 때마다 예전 가정교사였던 무어(Annie Carter Moore)의 병약한 아들 노엘(Noel)에게 편지를 쓰곤 하던 포터는 1893년에 네 마리 작은 토끼 플롭시, 몹시, 코튼테일, 그리고 피터의 이야기를 지어 보냈습니다. 

유명한 그림책 <피터 래빗 이야기(The Tale of Peter Rabbit)>는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원고를 사겠다는 출판사를 찾지 못한 그녀는 자비를 들여 만든 책 250부를 1901년 12월 가족과 친구들에게 선물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재능을 믿은 론즐리 목사의 노력으로 다음해인 1902년 정식으로 출판했는데, 이것이 큰 성공을 거둔 것입니다. 이후 꾸준히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을 출판해서 모두 23종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그녀의 책들이 오늘날까지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것은 부드러우면서도 생생한 그림, 굳이 교훈을 주려고 하지 않는 이야기, 시골과 자연에 대한 애정 어린 묘사, 그리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동물 캐릭터들 때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미 1903년에 ‘피터 래빗’ 인형을 만들어서 특허까지 낸 걸 보면 포터는 뛰어난 사업가이기도 했습니다. 그림책은 물론 이 캐릭터 수입이 그녀와 출판사에게 큰 부를 가져다 주었으니까요. 1905년 포터는 자신의 그림책을 출판한 출판사 창업주의 아들이자 편집자였던 노먼 워른(Norman Warne)과 비밀약혼을 했지만 한 달 후 그가 병사하는 비극을 당했습니다.

그들이 정식 약혼을 하지 못한 것은 그녀 부모가 신분차이를 이유로 반대를 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2006년에 영화로 제작되었지요. 르네 젤위거(Rene Zellweger)와 이완 맥그리거(Ewan McGregor)가 주연한 크리스 누난(Chris Noonan) 감독의 영화, <미스 포터(Miss Potter)>입니다. 국내에선 큰 흥행을 거두지 못했지만 화려한 캐스팅이 보장하는 좋은 영화입니다. 


약혼한 무렵 그림책 수익금과 친척의 유산으로 레이크디스트릭트의 니어 사우리(Near Sawrey)에 있는 농장을 구입해서 이주한 포터는 계속해서 주변 토지와 농장을 매입하면서 농사일과 과학연구, 자연보호운동에 몰입했습니다.

그녀는 47살에 자신의 일을 맡아주던 그 지역 변호사 윌리엄 힐리스(William Heelis)와 결혼했는데, 이번에도 시골 변호사를 탐탁하지 않게 여기던 부모님 반대의 벽을 넘어야 했다고 하네요. 이 부부는 자녀가 없었지만 남편의 조카들을 돌보며 30년 동안 자연과 함께 행복한 결혼생활을 누렸습니다.

77세를 일기로 1943년 12월 세상을 떠난 포터는 4,000에이커가 넘는 토지와 16개 농장 등 거의 전 재산을 ‘내셔널트러스트’에 기부했습니다. 20개월 후인 1945년 8월에 그녀의 뒤를 따른 남편 역시 나머지 재산을 전부 ‘내셔널트러스트’에 기부했습니다.

그의 변호사 사무실은 이제 포터의 그림책 원화를 전시하는 갤러리(Beatrix Potter Gallery)로 변신하여 방문객을 맞이합니다. 코로나19로 묶인 발이 풀리면 꼭 방문하고 싶은 곳입니다.   

 

서혜란 중앙국립도서관 관장
서혜란 중앙국립도서관 관장

 

글 서혜란(중앙국립도서관 관장) 사진 Queen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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