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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말라위에 희망을 선물하다 ‘5월의 신부’ 서영희가 보내온 아름다운 편지
아프리카 말라위에 희망을 선물하다 ‘5월의 신부’ 서영희가 보내온 아름다운 편지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1.05.16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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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으로부터 시작되는 드넓은 하늘에 흰 구름이 끝없이 펼쳐진 아프리카 말라위. 비행기로 꼬박 열여섯 시간을 날아가 수도 릴롱궤에서 다시 차를 타고 두 시간가량 달려 겨우 도착한 곳은 치오자 마을. 도착 직후 처음 만난 이들은 두 다리가 있지만 걸을 수 없었던 네 남매였다. 작은 흙집 앞에 오밀조밀 모여 있던 아이들은 나를 보자 이내 표정이 환해졌다. 하지만 그 누구도 뛰어나와 반기지 못했다. 걸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scene 1 비위생적인 시술로
날 때부터 장애를 갖게 된 아이들
다리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이 아이들의 이름은 그레이스, 치콘디, 자말리, 그리고 마테유. 장녀인 그레이스는 의젓했다.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재잘재잘 놀 나이인데 집 앞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조용히 빨래를 하고 있었다. 일하는 내내 한쪽 어깨로 흘러내리는 옷을 여미느라 분주한 걸 보니 아직 수줍은 소녀였다. 자신의 성치 못한 다리를 원망할 겨를도 없이 어린 동생들의 손과 발이 되어 묵묵히 일하고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그레이스가 식사 준비를 거의 마쳤을 때쯤 아빠, 엄마 그리고 형제들 중 걸을 수 있는 동생 요한이 밭일을 마치고 돌아왔다. 마당 바닥에 차려진 가족의 조촐한 저녁식사에 나도 함께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마음 한구석엔 미안함이 있었다. 내가 다가서는 것이 혹시 이 아이들에게 상처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엄마는 아직도 아이들이 태어나던 날을 잊지 못한다. 제대로 된 병원이 없는 말라위에서는 출산이 임박하면 당나귀 마차를 타고 아잠바라고 하는 민간 산파에게 간다. 말라위 산모들의 출산에 대한 공포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아이를 낳다가 죽을 수도, 평생 아파하며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잠바는 마취도 약도 없이 비위생적인 수술도구로 수술을 진행한다. 그 때문에 첫째 아이를 잃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어 소중한 두 번째 아이의 출산을 맡겨야 하는 부모의 심정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레이스 남매도 산파의 실수로 태어날 때부터 다리 장애를 갖게 됐다. 가족은 태어나서 제대로 된 치료를 한 번도 받지 못했다. 치오자 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까지의 거리는 40km. 변변한 보건소조차 없다.
다음날 아침, 동이 트자 등교를 준비하는 아이들의 손길이 분주해졌다. 두 살배기 막내를 제외한 3남매는 어떻게든 배움의 끈을 놓지 않으려 발버둥치고 있었다. 빈곤의 사슬을 끊기 위해서다. 학교까지는 무려
7마일(11km)이나 떨어져 있지만 남매는 배움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뜨거운 태양 아래 날카로운 흙길을 연약한 다리로 오가야만 하는 아이들. 매일 학교까지 아이들을 데려다주는 아빠는 3남매가 학교에서 주는 밥을 먹는 동안 나무그늘 아래 앉아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다. 학교 급식을 한 그릇 받아 건네자 부끄러운 듯 나무 뒤로 가 허겁지겁 끼니를 때운다. 매일같이 3남매의 발이 되어 700마일의 길을 오가는 아빠의 허기는 아무도 챙기지 않았을 것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집에서는 그저 해맑던 아이들이 운동장 한구석에서 울고 있었다. 치콘디와 자말리가 기어다니는 것을 또래 아이들이 둘러서서 구경을 했다. 그 누구도 놀리거나 욕하지 않았지만, 친구들과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을까, 아니면 자신들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눈이 서러웠을까. 아이들의 맑은 눈망울에 이내 그렁그렁 서러운 눈물이 차올랐다. 빨리 시선을 빠져나와 도망치고 싶지만 아이들은 그럴 수 없다. 나는 울고 있는 아이들을 일으켜 병원에 데려가기로 했다.
scene 2 희망의 휠체어를 선물하다
우리나라 시골 보건소보다 작은 크기의 병원을 겨우 찾아냈다. 엄마는 평소 비싼 가격 탓에 병원 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했다. 긴장이 되는지 병원에 가는 내내 두 아이를 꼭 안고 있는 엄마와 달리, 치콘디와 자말리는 “병원에 갈 수 있어서 너무 좋다”며 연신 싱글벙글이다. 주사도 약도 무섭지 않은 이 아이들은 그저 아픈 다리가 나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들떠 있었다. 나는 아이들이 병원을 나설 때는 희망만 가득 안고 갈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랐다. 진료를 마치고 의사가 아이들의 상태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치콘디는 지속적인 재활과 치료를 한다면 목발에 의지해 걸을 수 있지만, 자말리는 다리와 발의 신경이 손상된 것 같습니다. 계속 치료하면서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진작 병원에 데려왔다면, 아이들의 엄마가 제대로 된 병원에서 아이를 낳았더라면 지금의 상황은 막을 수 있었을 텐데, 몸과 마음의 짐 없이 살 수 있었을 텐데…. 의사의 말을 듣는 내내 왜 내가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병원을 떠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하늘에서는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진작 병원에 데려가지 못해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엄마의 얼굴에도 이내 곧 비가 내릴 것만 같았다.
아이들과 헤어지던 날, 축구공과 휠체어를 들고 집을 방문했다. 일어설 수도, 뛸 수도 없는 접힌 다리로 낑낑대며 공을 모는 아이들.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지만 표정만은 한없이 밝았다. 잘한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주자 치콘디와 자말리도 나를 보며 엄지손가락을 올린다. 휠체어를 보자마자 아이들은 순식간에 휠체어에 올라탔다. 나도 신나게 휠체어를 밀어줬다. 난생 처음 휠체어를 탄 아이들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사실이 신기한 듯 한참 동안 휠체어에서 내려올 줄 몰랐다. 아이들이 이 휠체어로 학교도 가고 병원도 가며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말아주길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이 가족에게, 그리고 이와 같은 아이들이 살고 있는 치오자 마을에는 병원이 꿈이자 희망이고, 걸을 수 있는 기적을 만드는 곳이었다. 집 앞 가까운 곳에 병원이 있다는 사실을 감사해본 일이 없던 나였다. 아프리카와 같은 저개발국가에서는 병원이 한 사람의 미래를 바꾸고, 아이들이 미래를 꿈꾸게 해줄 수 있는 중요한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scene 3 병원이 없어 생명을 잃는 사람들
이름도 생소한 나라 말라위. 오기 전에는 존재조차도 몰랐던 곳이다. 평소 아프리카 여행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기에 비행기에서 내려 땅에 첫발을 디딜 때는 참 설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숙소로 향하는 거리와 사람들의 모습에서 아프리카의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3초에 한 명의 아이가 죽어나가는 이 땅. 5세 미만 아이도 영양부족, 폐렴, 설사병, 말라리아 등 간단한 조치만으로 충분히 예방하거나 치료 가능한 질병으로 인해 사망한다는 것을 전해 듣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하루에 2만4천 명, 매년 약 880만 명의 아이들이 다섯 살이 되기 전에 생명을 잃는다는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인구도 많고 가난한 나라의 사망률이 높은 것에 대해 무감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난하다고 해서 생명이 귀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프리카 평균 영유아 사망률은 14%이지만, 이곳 치오자 지역은 35%에 달한다. 면역력이 약한 아이들이 어른보다 쉽게 병에 노출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태어나자마자 죽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말라위 산모들은 깨끗한 병원에서 의사를 통해 아이를 낳는 것이 소원이다. 10개월 동안 뱃속에 품고 있던 소중한 아기를 낳자마자 잃거나, 겨우 아이를 낳았지만 예방접종을 해주지 못해 병에 걸려 죽었을 때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저 현실을 마주하며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곳 주민들은 병에 걸리면 병원 대신 무당을 찾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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