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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을 모독하지 마시라
남성을 모독하지 마시라
  • 전해영 기자
  • 승인 2020.12.12 12: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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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한민국 남자들이 몇몇 사람들 발언 때문에 본의 아니게 수난을 겪고 있다. 개인의 잘못된 행동을 집단의 보편화된 행동으로 정당화하려다보니 애꿎게도 대한민국 남자들이 집단 모독을 당하고 있는 듯하다.

지난 8월, 더불어 민주당 S 의원이 주 뉴질랜드 한국 대사관의 현지 동성 직원 성추행 의혹에 대하여 “같은 남자끼리 배도 한 번씩 툭툭 치고 엉덩이 치고 그랬다”라고 말했다. 정말 그럴까?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내 주변의 남성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편도 그 기사를 보고는 “남자들 안 그래”라고 한마디 한다. 

어떤 세계에서 살기에 이런 발언을 해명이라고 내놓았을까? 발언자의 성인지 감수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남성끼리는 이런 행동은 장난이며 성추행이 아니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성폭력특별법에는 가해자는 자(者)로 명시되어 남성과 여성을 모두 다 포함하고 있으며, 실제로 주변에서도 동성 간의 성희롱 사건도 드물지 않게 회자되고 있다. 또 엉덩이를 치고 만지는 것은 성희롱이 아니라는 잘못된 인식도 읽혀진다. 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 지침에는 가슴, 엉덩이 등 특정 신체부위를 만지거나 만지도록 강요하는 행위는 성희롱의 유형으로 명확하게 적시되어 있다. 

지난 달 한참 떠들썩하게 문제가 되었던 청와대 고위 관계자들의 다주택 처분에서도 남성을 싸잡아서 표현하는 발언이 또 나왔다. K 전 청와대 수석이 잠실 아파트를 시세보다 2억 더 비싸게 매물로 내놓았다는 지적에 대하여 ‘남자들이 잘 몰라서’라고 해명한 것이다. 고위 공무원을 검증하는 청와대 민정수석이 고위공무원이 집을 팔 때 얼마에 내놓을지 모른다는 것은 납득이 쉽게 안 된다. 부동산은 인사 검증의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부동산 폭등으로 서민들은 힘들어하는데 ‘남자들이 잘 몰라서’라고 해명하는 것도 청와대 수석이라는 고위공무원의 책임의 무게를 너무 가볍게 여긴 것이다. 또 그 이면에는 여성들이 부동산에 해박하다는 남녀차별적인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왜 툭하면 개인의 행동을 집단인 ‘성’으로 확대할까? 이런 말들은 해명을 할 때 많이 나온다. 그 해명에는 집단이 하는 것이니 개인이 하는 행동도 괜찮다는 등식이 내재되어 있다. 좋은 핑계거리인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다 한다고 내 죄가 절대 면해지지 않는다. 더구나 대한민국 남성들이 다 성추행을 하고, 대한민국 남성들이 부동산에 대하여 모르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전체를 모독하지 마시라. 개인은 개인의 행동으로만 평가받아야 한다. 여성에 대한 집단평가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여자이니까 그렇지’, ‘집에서 솥뚜껑이나 운전하지 왜 차를 몰고 나왔느냐’ 등 다 거론하기도 힘들다.

대상이 여성이거나 남성이거나 특정 성에 대하여 라벨을 붙이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므로 개선되어야 한다. 능력중심사회에서 시대정신에도 맞지 않는다. 역량의 차이는 성별의 차이보다 개인의 차이에서 온다는 것을 우리는 이제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역할의 인식 변화를 나타내는 긍정적인 신호도 있다. 2018년 여성가족부가 실시한 양성평등 실태조사에 의하면 ‘여성은 직장생활보다는 아이양육에 주력해야한다’에 53%만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의 생계는 남성이 책임져야한다’에는 더 낮은 42%만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나 우리 사회의 남녀 성역할에 대한 의식변화가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남성과 여성을 성별로 구분하여 발언하는 것은 자제하여야 한다. 성역할 고정관념을 확대시켜최근 집단 갈등 현상으로 번지고 있는 여혐과 남혐으로 확대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갈등상황이 오는 것을 사회 지도자들이 선도적으로 방지하여야 하는데 오히려 기폭제 역할을 하니 문제이다. 건강하고 성숙한 사회발전을 위하여 사회 지도층의 성인지 감수성이 요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복실 전 여성가족부 차관
이복실 전 여성가족부 차관

 

글 이복실(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 회장, 전 여성가족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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