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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에서도 성인지 감수성을
정책에서도 성인지 감수성을
  • 최하나 기자
  • 승인 2020.12.12 13: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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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변하면 사람들의 말과 행동이 바뀌는 것이 당연하다. 과거에 문제되지 않던 발언이나 행동이 나중에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형사 처벌로 이어지는 일도 있다. 이러한 변화를 알려주는 것 중의 하나가 성인지 감수성이다. 

이 말은 젠더 센서티비티(gender sensitivity)를 번역한 것으로서, 일상생활에서 성차별적 요소나 불균형을 감지해 내는 민감성을 뜻한다. 1995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4차 유엔여성대회에서 맨 처음 사용되었다. 2018년 대법원 판결에서 이 말을 사용하면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법관이 성희롱이나 성폭력 사건을 심리할 때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성희롱이나 성폭력의 가해자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아서는 안 되고 피해자가 처한 상황의 맥락과 눈높이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이해해야 사건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이것은 법원의 재판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정부의 정책이나 국회의 입법에서도 성인지 감수성은 중요한 문제이다. 최근에 논란이 되었던 '국토교통부 2019년 주거실태조사'에서도 성인지 감수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국토교통부가 전국 6만 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2019년 주거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주거실태조사는 우리 국민의 가구 특성, 주거 환경, 주거 이동 등 주거생활의 전반적인 사항을 조사하는 조사통계로, 주택 정책을 수립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국토교통부는 신혼부부, 청년, 고령가구 등에 대한 지원을 강화한 결과 주거수준이 개선되었다고 발표하면서, 신혼부부 가구에 대해 ‘혼인한 지 7년 이하이면서, 여성 배우자의 연령이 만 49세 이하인 가구’라고 정의하여 논란이 일었다. 신혼부부의 개념을 어떻게 이해한 것인지 난감하기 그지없다.

애써 이해를 해보자면, ‘여성 만 49세 이하’라는 기준은 ‘가임기 여성’의 나이를 기준으로 삼은 듯하다. 그러나 신혼부부의 기준을 임신과 출산이 가능한 연령의 여성이 있는 가구로 제한한 것은 성차별이라 할 수 있다. 남성의 나이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고 여성의 나이만 기준으로 삼은 것 자체가 차별적이다. 여성이 임신·출산 할 수 있어야 신혼부부라는 전제도 문제다. 아이를 낳을 수 없거나 원하지 않는 신혼부부도 있는데, 아이를 낳을 수 있어야 신혼부부 가구로 본다는 인식은 사회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2016년에는 행정안전부에서 저출산 대책으로 가임기 여성 인구수를 기준으로 대한민국 출산 지도를 만들었다가 폐기한 적이 있다. 국토교통부도 이번 발표 직후 논란이 되자 곧바로 개선을 하겠다고 밝혔다. 주거실태조사 수행기관인 국토연구원에서 관례적으로 이런 기준을 적용하여 조사를 했는데, 신혼부부 중 여성 배우자의 연령을 제한하는 것이 성평등 가치에 부합하지 않고 성차별적 정책이 시행된다는 오해를 살 수 있는 만큼 향후 주거실태 조사부터는 연령제한 기준을 폐지할 계획이라고 하였다.

사회구조가 바뀌고 그에 따라 사람들의 인식도 급속하게 바뀐다. 아무리 선한 의도로 만든 정책이라도 정책담당자가 국민들의 인식에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다. 가족제도나 결혼에 대한 인식은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행정 관료나 입법담당자가 쉽게 따라가기 어려울 수 있느니만큼, 정부 정책을 수립하고 입법을 하는 과정에서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도록 더욱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전현정변호사​
​전현정변호사​

 

 

글 전현정 변호사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1990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23년간 판사로 일하다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를 끝으로 2016년 법원을 떠났다. 현재는 법무법인 KCL 고문변호사다. 한국여성변호사회 부회장, 대한변협 양성평등센터장, 국가기후환경회의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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