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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Queen 다시보기] 1991년 3월호 -최초공개 현대그룹 명예회장 정주영 VS 박대통령 차녀 박근영
[옛날 Queen 다시보기] 1991년 3월호 -최초공개 현대그룹 명예회장 정주영 VS 박대통령 차녀 박근영
  • 양우영 기자
  • 승인 2021.01.24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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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3월호

현대그룹 명예회장 정주영 VS 박대통령 차녀 박근영

슬프고도 아름다운 아버지 이야기

Ⅰ. 어느날 문득 아버지 얼굴이 보고 싶었던 정주영회장은 화가를 불러 구술만으로 최상화를 그리게 했다. 이것이 완성되면 동상을 만들어 서산간척지에 세워 평생 고생만 하신 아버지의 한을 풀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이 작업은 미완성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Ⅱ. 육영재단 박근영씨로부터 이사직 제의를 잗은 정회장은 아버지에 대한 동병상련의 정을 느끼며 이를 수락했다. 

Ⅲ. 손자들을 데리고 북한산에 올라간 정회장은 석양을 바라보며 '가족화목론'에 대한 산상교육을 했다.

정주영 회장이 가슴 깊이 묻어 둔 눈물의 사부곡(思父曲)

"아버님 살아 생전에 사진 한 장 찍어 두었더라면···"

1991년 3월호 -최초공개 현대그룹 명예회장 정주영 VS 박대통령 차녀 박근영1
1991년 3월호 -최초공개 현대그룹 명예회장 정주영 VS 박대통령 차녀 박근영1
1991년 3월호 -최초공개 현대그룹 명예회장 정주영 VS 박대통령 차녀 박근영2
1991년 3월호 -최초공개 현대그룹 명예회장 정주영 VS 박대통령 차녀 박근영2
1991년 3월호 -최초공개 현대그룹 명예회장 정주영 VS 박대통령 차녀 박근영3
1991년 3월호 -최초공개 현대그룹 명예회장 정주영 VS 박대통령 차녀 박근영3

 

평생을 일욕심으로 살아오면서 오늘날의 현대 '왕국'을 건설한 76세의 정주영회장도 눈물을 보일 때가 있을까. 미루어 짐작하건대 그는 두 아들과 한 며느리를 먼저 보내는 등 평생을 통해 숱한 애환을 겪었으니 눈물사연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 말고 요즘 노회장의 가슴에 파문을 일으키며 불면의 밤을 보내게 하는 일이 있다. 그것은 아련한 추억이 되어 그를 마냥 들뜩 하기도 하지만 이내 그의 눈시울은 붉어지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본다. 

바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회한 때문이다. 사람이란 한번 나서 가기 마련인데 이제 여든 고개를 바라보는 정회장이 무슨 까닭으로 고인이 된 아버지를 생각하며 잠을 설쳤을까.

그의 청운동 자택을 방문해 본 사람들은 응접실 탁자 위에 외롭게(?)얹혀 있는 빛바랜 초상화를 발견하게 된다. 정회장의 어머니 한성실여사의 모습이다. 방문객은 으례 이런 질문을 한다.

"선친 초상화는 왜 없습니까?"

정회장은 약간 풀이 죽은 듯한 목소리로 이렇게 답변을 한다.

"내가 왜 아버지 사진을 한장 찍어두지 못했는지 후회가 됩니다. 아무리 가난하게 살았어도 내가 조금만 신경을 썼더라면 어머니 사진과 나란히 걸어 둘 수 있을 텐데······이게 다 불효자식의 불찰입니다"

그의 눈시울이 금세 붉어진다. 이야기는 그의 유년시절로 돌아기는데 그가 자수성가한 이야기가 아니라 아버지가 '땅 파고 먹고 살던' 궁핍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런 날 밤이면 그는 찾아온 손님과 함께 술을 대작하며 밤새는 줄 모르고 아버지 이야기를 한다. 그러다가 홀로 남게 되면 울적한 심사에 겨워 그의 마음은 고향 땅으로 가 있다. 

함박눈이라도 내리는 날에는 눈속에 묻혀 긴긴 겨울을 보내던 통천(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아산리)의 유년시절을 떠올리며 아버지의 추억을 더듬기 시작한다.

"아버님 역시 6남1녀의 장손이었고 저도 장손으로 태어났습니다. 아버님은 동네에서도 소문난 부지런한 농사꾼이었지요. 해가 떠 있을 동안에는 논밭과 화전에 나가 일만 하다보니 손톱이 다 닳아 일부러 깎을 필요가 없었지요"

정회장의 아버지 정봉식씨는 장손으로서의 책임감이 강했던 모양이다. 장남이었던 정회장을 일등 농군으로 만들기 위해 혹독한 훈련을 시켰다.

"농토가 7,8킬로미터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새벽 네시면 저를 깨워서 데리고 가는 겁니다. 동녘하늘이 부옇게 밝아오기 시작하면 하루종일 허리를 펴지 못하고 일만 했죠"

정회장은 서당을 다니다가 보통학교를 들어갔기 때문에 15살(1930년) 때 졸업했다. 이것이 그의 최종학력이다. 이때부터 그는 아버지를 따라 다니며 농사일을 배웠는데 18살 때 무작정 상경으로 막노동판에서 일할 때까지 3년을 계속했다. 

그러나 그는 농사가 너무 힘들었고 그렇게 열심히 일해도 성과가 적다는 데 불만이 많아 농촌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버님께 말씀드리면 틀림없이 못가게 붙드실테니까 아버님 모르게 떠났습니다. 밤새껏 산길을 재촉해 아버님이 찾기 전에 되도록 멀리 달아날 생각이었지요. 달도 없는 산길을 한 60리쯤 걸어가니 날이 훤히 밝아왔습니다. 어떻게 하다보니 청진부근에서 막노동을 하게 됐는데 추석 때 아버님이 찾아오시는 바람에 붙들려 고향으로 가 다시 농사를 지었죠"(중략)

 

Queen DB

[Queen 사진_양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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