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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의 여제 이성주, 바이올린과 함께한 ‘나의 삶, 나의 음악’
현의 여제 이성주, 바이올린과 함께한 ‘나의 삶, 나의 음악’
  • 김은정 기자
  • 승인 2021.01.25 08: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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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이자 현악 앙상블 '조이오브스트링스'의 예술감독인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교수에게 2021년은 참 의미있는 해다. 이성주 교수로서는 정년퇴임을 맞이하지만 음악가로서는 새로운 인생 3막을 시작하는 해이기 때문이다. 음악가로, 교수로 예술감독으로 한평생을 바이올린과 함께 호흡하며 살아온 그녀의 삶과 음악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 교수는 중학생이던 만 13세 때 미국 유학길에 올라 30여 년 동안 미국을 거점으로 유럽, 동남아 등 전 세계에서 국제적 음악가로 활동했다. 화려한 경력으로 세계무대를 휩쓸다 1994년 귀국해 한국예술종합학교의 교수로 재직하며 음악영재 발굴과 지도에 힘쓰는 한편 클래식 문화 발전에도 앞장서 왔다.

‘상상력 넘치는 연주와 명료한 음악’. ‘나무랄 데 없는 완벽한 기교’ 등 세계 유수 언론에서도 극찬을 받은 그녀는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로 지난 6월 퀸 30주년 기념으로 제정된 여성리더 30인 시상식에서 ‘예술’ 부문 수상을 하기도 했다.


어릴 적부터 남달랐던 음악적 재능

이성주 교수는 5세 때 처음 바이올린을 시작했다. 음악을 좋아하시던 어머니는 자녀들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보셨고 그래서 일찍 악기를 배우게 했다. 바이올린을 시작하고 실력이 일취월장해 만 9세이던 1964년 ‘서울시향 소년소녀 협주곡의 밤’으로 첫 데뷔를 한다. 그 후 각종 콩쿠르에서 수상을 하며 두각을 나타내다 더 큰 세계에서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은 꿈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연주가 담긴 테이프를 줄리어드 음대의 이반 갈라미안 교수에게 보내 합격점을 받는다. 이반 갈라미안 교수는 정경화와 이작 펄만 등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들을 배출
한 저명한 음악가로 그의 교수법은 바이올린뿐만 아니라 모든 음악 특히 현악기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만큼 유명하다. 그런 세계적인 거장에게 인정을 받은 이성주교수는 미국으로 건너가 줄리어드 음대 예비학교에 진학을 하게 된다.

그때 나이 만13세 중 2때다. 그 후 훌륭한 스승으로부터 사사를 받으며 줄리어드 음대에서 프릿츠 크라이슬러 장학생으로 선정되고 줄리어드 음대 대학원에도 들어가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본격적인 데뷔 무대는 1977년 뉴욕 카프만 홀에서 가진 공연으로, 뉴욕타임즈로부터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라는 평가를 받으며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다.


세계가 극찬한 대한민국의 바이올리니스트

20대 때 성공적으로 데뷔한 그녀는 그 후 솔리스트로서 뉴욕 비에냐프스키 콩쿠르 우승을 비롯하여 시벨리우스 콩쿠르, 워싱턴 콩쿠르,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등 세계 주요 콩쿠르에서 입상하거나 파이널리스트로 선정되며 실력을 공인 받았다.

1979, 1980년에는 음악전문지 ‘뮤지컬 아메리카’가 선정하는 미국 최우수 젊은 연주자로 선정됐다. 또한 헝가리 국립교향악단을 포함해 세계적인 오케스트라 세인트 루이스 심포니, 볼티모어, 시애틀, 홍콩 필하모닉, 대만 심포니, 서울시향, KBS교향악단 등 수많은 오케스트라와 협연하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1세대 바이올리니스트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차가운 이성과 따뜻한 감성을 적절히 녹여낼 줄 아는 그녀의 연주에 대해 LA타임즈 지는 ‘드라마틱하고 지칠 줄 모르는 대가의 음악’이라 호평하는 등 세계에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셀 수 없이 수많은 무대에 오른 그녀에겐 평생 잊지 못할 일이 있다. 20대 때 한창 바이올리니스트로 각광을 받으며 여러 공연에 초청받을 무렵의 일이다.

“미국에 와이오밍 주라는 시골에 연주회가 있었는데 겨울이라 눈이 어마어마하게 와 비행기가 결항이 된 거예요. 그래서 공항에서 렌터카를 빌려 반주자와 함께 눈사태 속에 스노우타이어도 없이 로키산맥을 넘어갔어요. 눈만 안 왔으면 차로 30분 거리인데 5시간 만에 간 거죠. 그 다음날 아침 산을 보니 내가 저 험한 산을 어떻게 넘어왔나 싶어 아찔하더군요. 만약 차가 눈 속에 묻히거나 험준한 산길에서 구르기라도 했다면 공연은 고사하고 지금 제가 이 자리에 없었을 텐데 하늘이 도왔던 것 같아요. 그렇게 겁도 없이 산을 넘어와 무대에 올랐고 연주는 성공적으
로 잘 마쳤습니다.”

차가 굴러 잘못 될지도 모르는 위기 상황에서도 오로지 음악에 대한 열정 하나로 물불 가리지 않았던 20대 때의 일화다.

이성주 교수는 공연으로 청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면서 수많은 음반으로도 대중들에게 다가갔다. 1986년 데뷔 음반 <슈만 바이올린 소나타> 앨범을 비롯해 <바이올린 소품집>, <바이올린 협주곡>, <비발디 사계>, <바흐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 <이성주의 작은 사랑 노래> 등을 발매하고 2009년 베토벤 바이올린 콘체르토를 라이브 연주로 녹음해 CD로 발매하였다. 그밖에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바흐 바이올린 협주곡> 등 수많은 곡들을 음반과 CD로 발매해 클래식음악의 대중 보급에도 큰 역할을 해왔다.

 

이성주 교수는 정년퇴임 후 한예종 명예교수로 후학양성을 이어간다.
이성주 교수는 정년퇴임 후 한예종 명예교수로서 후학양성 역할도 이어간다.

 

후학양성을 위해 귀국, 인생 제2막을 시작하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바이올리니스트로 해외에서 왕성히 활동을 하다 보니 한국에서 러브 콜이 들어 왔다. 음악영재들을 발굴하고 키워달라는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요청으로 1994년 귀국해 교수로서 후학 양성의 길에 오른다. 어린 나이에 유학길에 올라 훌륭한 스승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아 본 이성주 교수는 교육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지 몸소 겪어 봤기에 신념을 가지고 학생들을 가르쳤다.

“음악을 하려면 어릴 때 습관을 잘 들여야 합니다. 먼저 음악을 사랑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구요. 악기를 잘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하죠.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어릴 때 제대로 배우지 못하면 평생 고치기가 힘들거든요. 그래서 제가 유학하며 훌륭한 선생님들에게 배웠던 악기에 대한 스킬을 아낌없이 전수했습니다. 그리고 또한 악기 다루는 법뿐만 아니라 좁은 시야가 아닌 넓은 시야를 가질 것을 항상 강조했습니다.”

세계의 무대에서 활동한 그녀였기에 그녀의 경험은 학생들에게 보다 넓은 세계무대에 꿈을 가질 수 있게 하는 데에 자양분이 되었다. 교육에 힘쓰면서 그녀는 클래식 음악이 대중들에게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큰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1997년 제자들을 주축으로 만든 현악 앙상블 ‘조이 오브 스트링스’가 그것이다.

“처음엔 한 매니지먼트사에서 스승과 제자의 음악회를 만들어보자 해서 시작했는데 시작하자마자 반응이 너무 좋았던 거예요. 많은 공연 요청이 들어오고 그래서 일회성이 아니라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현악앙상블로 만들었죠. 그러다보니 서울시 지원 단체로 지정도 되고 이후 사단법인으로까지 발전하면서 전문단체로 활동을 하게 됐습니다.”

16인조 현악 앙상블 조이 오브 스트링스는 그동안 해설이 있는 음악회, 성탄음악회, 신년음악회, 정기연주회, 그밖에 각종 행사와 해외 공연까지 활동 영역을 넓히며 클래식 저변 활동에 큰 역할을 해왔다. 또한 젊은 음악가들에게 좋은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활동 영역을 넓혀 주는 장이 되기도 했다.


베토벤 탄생 250주년 기념 음악회

이성주 교수에게 지난 2020년은 참 의미 있는 해였다.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맞아 베토벤 시리즈 1, 2, 3탄이라는 세 번의 시리즈 무대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코로나 19사태로 대부분의 공연이 취소됐지만 이성주 교수는 지난 7월과 10월 베토벤 시리즈 1,2 탄에 이어 2021년 새 봄에 예술의 전당에서 마지막 시리즈인 3탄을 공연하게 된다.

1탄에서는 베토벤 소나타 1,5,7번과 로망스 제2번을, 2탄에서는 바이올린 소나타 크로이처와 피아노 3중주 대공을 연주했다. 마지막 시리즈인 3탄은 협주곡의 밤으로 준비된다. 특히 3번째 무대는 베토벤의 유일한 바이올린 협주곡과 더불어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의 독주 악기를 대표로 하는 독특한 구성의 삼중 협주곡 등 자주 접할 수 없었던 베토벤의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3탄 공연에선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 김대진의 지휘와 현악 앙상블 조이 오브 스트링스를 비롯 객원 멤버로 구성된 조이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반주가 어우러져 환상적인 호흡과 베토벤 음악의 매력을 선사한다.

“코로나 사태로 많은 사람들이 우울감을 호소하는 무렵에 1, 2회의 공연은 방역과 거리두기, 마스크 쓰기를 철저히 지키며 열렸고 공연에 오신 청중 분들이 큰 위로와 감동을 받았다고 하시더군요. 코로나의 확산으로 상황을 지켜봐야겠지만 2021년 새봄 3탄 공연에서 베토벤의 음악으로 많은 사람들의 지친 마음에 위로를 드리고 싶습니다.”


마침이 아닌 새로운 시작, 인생 제 3막

작은 체구에 늘 부드럽고 상냥한 미소를 띠고 있는 그녀지만 무대에서는 카리스마가 넘친다. 때로는 차갑게 때로는 뜨겁게 청중의 마음을 휘어잡으며 바이올린 선율에 젖어들게 한다. 바이올린만 손에 잡으면 그런 폭발적인 에너지가 어디서 뿜어져 나올까. 5세에 처음 바이올린을 잡기 시작해 어언 60년이라는 세월을 함께 했으니 이제 바이올린과 그녀는 한 몸이 아닐까도 싶다.

“바이올린이라는 악기가 저한테 딱 맞는 것 같아요. 음색도 매력적이고 제 체구나 성격에도 맞아요. 그리고 곡을 배워 나가고 한 곡을 완성했을 때 그 희열은 말로 표현 못하죠. 때론 힘들 때도 있었지만 재미가 있어서 그렇게 열심히 할 수 있었어요.”

국내와 해외 무대를 오가며 한국 바이올리니스트로서의 위상을 높이고 세계적인 연주자로 이름을 떨친 이성주 교수. 교수로 연주자로 예술감독으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다 이제 새해에는 27년간 몸담았던 한국예술종합학교의 교수로서 정년퇴임을 맞이하게 된다. 퇴임을 앞둔 소회는 어떨까.

“음악이라는 분야는 평생 연주하고 가르칠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학교일만 퇴임이지 음악가로서의 활동은 계속 이어갈 거구요. 오히려 학교에 매여 있던 시간에서 벗어나니 더 자유롭게 더 많은 활동을 할 수 있겠죠. 어릴 때 훌륭한 선생님들이 70, 80대가 되어도 여전히 열정적으로 가르치는 모습을 많이 봤는데 저도 그런 모습을 늘 잃지 않고 더욱 열심히 활동할 계획입니다. ”
이성주 교수에게 2021년은 마침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의 해다. 대망의 새해를 맞이하여 새롭게 펼쳐질 이성주교수의 인생 제3막이 기대되는 이유다.

 

취재 김은정 기자 | 사진 양우영기자·스테이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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