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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바이마르에 가신다면, ‘안나 아말리아 대공비 도서관’을 꼭 방문하세요
독일 바이마르에 가신다면, ‘안나 아말리아 대공비 도서관’을 꼭 방문하세요
  • 서혜란
  • 승인 2021.02.13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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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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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9월 2일, 독일 바이마르에 소재하고 있는 ‘안 나 아말리아 대공비 도서관(Herzogin Anna Amalia Bibliothek, HAAB)’ 화재 소식을 접했을 때의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텔레비전 화면을 가득 채운 채 넘실대는 벌건 화염도 무서웠지만, 불을 끄기 위해 소방관들이 쏘아대는 물줄기를 속절없이 맞으면서 망가져가는 귀한 책들의 운명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종이책에게는 불만큼, 아니 그보다 더 해로운 것이 물이기 때문이다.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아름다운 도서관’ 리스트에 꼭 들어가는 이 도서관의 역사는 1547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와의 전쟁에서 대패한 작센 선제후 관대공 요한 프리드리히(Johann Freiderich der Grossm tige)가 비텐베르크(Wittenberg)에서 물러나 바이마르(Weimar)로 거처를 옮기면서 가져온 장서 500권이 그 시작이다.

복잡한 독일 역사 속에서 꾸준히 성장하던 이 도서관에 극적인 전환점을 가져온 사람이 바로 안나 아말리아 대공비(1739-1807년)이다. 열여섯 살에 바이마르 공국의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2세(Herzog Ernst August II) 대공과 결혼하여 대공비가 된 그녀는 불과 2년 뒤인 1758년 남편이 사망하자 장남이 성년이 되어 카를 아우구스트(Herzog Carl August) 대공으로 즉위하던 1775년까지 바이마르 공국을 다스렸다.

예술과 문학을 사랑한 그녀는 괴테(Johann Wolfgang von Geothe), 실러(Friedrich Schiller), 세일러(Abel Seyler), 허드(Johann Gottfried Herder) 등 당대의 저명한 지식인과 문화예술인들을 불러들여서 적극 지원함으로써 작은 공국 바이마르를 일약 18세기 문화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조용하고 아름다운 작은 도시 바이마르가 오늘날까지 독일 고전주의의 메카로 불리는 데는 그녀의 공이 크다.

독서 애호가였던 그녀는 1766년에 궁궐 내 “초록성(Gr ne Schloss)” 안에 후기 로코코 양식의 화려한 홀을 새로 지어 3만 권으로 늘어난 장서를 이전함으로써 유럽에서 손꼽히는 도서관으로 만들었다. 또 그녀의 들 카를 아우구스트 대공에 의해 1797년에 도서관장으로 임명된 괴테는 도서관 운영을 체계화하고, 1832년 죽을 때까지 8만 권의 장서를 가진 도서관으로 성장시켰다.

이후 이 도서관은 건물 증축과 장서 확장, 그리고 독일 정치환경에 따른 이런저런 변화와 부침을 겪었다. 독일이 통일되고 난 후 1991년 9월 ‘대공비 안나 아말리아 도서관’이라는 공식 명칭을 갖게 되었고, 초기 계몽주의 시대부터 후기 낭만주의 시대(1750-1850년대)에 특화된 독일 문학과 문화사 전문 도서관으로서 수많은 희귀 고서를 포함하여 100만 권이 넘는 장서를 자랑하게 되었다. 특히 1998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는 명예를 얻었다. 

서두에서 언급한 2004년의 도서관 화재는 낡은 전기배선이 원인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도서관 지붕 쪽에서부터 시작된 대화재로 인해 역사적인 도서관 건물과 장서가 큰 피해를 입었다. 갑작스러운 재난에 대한 발 빠른 대처와 이후 복원 과정은 도서관 재난 대응의 모범적 사례가 되었다.

도서관 운영진은 화재 당시 도서와 문화재의 대피는 물론, 이후 진행된 복원 사업과 2007년 도서관 재개관에 이르는 긴 과정에서 엄청난 열정과 뛰어난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도서관의 화재 소식이 알려지자 바이마르 지역은 물론 독일 전역에서 달려온 시민 사오천 명이 인간띠를 이루고 화재 현장에서 꺼낸 책과 문화재를 대기하고 있는 트럭으로 날랐다. 이렇게 해서 로코코 홀에 있던 19만 6천 책 중 바흐의 필사 악보를 비롯해서 2만 8천 책은 온전하게, 11만 8천 책은 불과 물에 손상된 상태로 구출할 수 있었다. 나머지 5만 책은 안타깝게도 화마에 완전히 사라
져버렸다.

불타버린 구 도서관 로코코 홀과 손상된 책들을 복원하는 데는 1,000억 원이 휠씬 넘는 막대한 비용이 필요했는데, 독일 정부의 지원은 물론이고 세계 각지에서 답지한 기부금이 큰 몫을 했다. 한국 괴테 학회 역시 회원들이 십시일반 모은 350만 원을 기부했다. 2007년에 원래 모습대로 복원되어 재개관한 ‘안나 아말리아 대공비 도서관’은 ‘하이 포그’라는 첨단 소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 시스템은 화재를 자동 감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미세한 물방울을 마치 가스처럼 초고압으로 살포하여 진화하기 때문에 물에 의한 책의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전화위복이다.
 

 

 

글 서혜란(국립중앙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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