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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의 가치
다양성의 가치
  • 전현정
  • 승인 2021.02.12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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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이 쌓인 길을 따라 산책했다. 알록달록 물든 단풍이 고운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노란 은행잎을 보며 늦가을의 정취를 만끽했던 시간을 뒤로 하고 빨갛게 물든 단풍나무에 감탄한다. 멀리서 보면 하얀 꽃처럼 보이는 억새 무리도 가을의 운치를 더해준다. 일찍 물드는 나무도 있고 늦게 물드는 나무도 있다. 같은 무리가 펼쳐놓은 풍경도 아름답고 온갖 색깔이 섞인 자연도 좋다.

자연의 세계든 인간의 세계든 다양성의 가치를 잴 수 있을까? AI가 발달하여 그런 가치도 수치로 보여주는 날이 올 수 있을까? 다양성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모습을 수치로 보여준다면 숫자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그 가치를 믿게 될까?

변호사로 일하며 여러 경험을 하였다. 소중한 경험 중 하나는 위원회 활동이다. 처음에는 판사로 배운 지식과 경험을 위원회를 통해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오히려 위원회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었다. 위원회들 사이의 차이도 느껴졌다. 어떤 위원회는 자유롭고 어떤 위원회는 분위기가 딱딱하다. 여러 사람과 다른 의견을 내더라도 부담이 느껴지지 않는 위원회가 있는가 하면, 다른 의견을 내는 것이 상당히 부담스러운 위원회도 있다.

어떤 위원회에서는 모든 사람이 의견을 말한 다음에 다른 사람이 제시한 근거를 듣고 의견을 번복할 기회를 주었다. 자기가 의견을 말할 때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근거를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어보면서 생각하고 그 의견이 맞는다고 생각하면 의견을 바꿀 수 있었다.

법조인의 업무는 토론을 빼놓고는 말하기 어렵다. 합의부 배석판사로 판사 생활을 시작하는 시기부터 대법관에 이르기까지 사건의 결론을 정하기 위해 합의라는 절차를 거친다. 단독판사로서 혼자 재판을 하는 시기 외에는 늘 토론을 하며 남의 의견을 듣고 결론을 정한다. 재판연구관으로 근무할 때에는 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동료 연구관과 토론을 하고 그 결과를 보고서에 반영했다. 로펌 변호사는 대체로 팀을 이루어 토론을 하며 업무를 수행한다. 이와 같은 의사결정과정에서 다양성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지난 10년간 미국의 컨설팅회사 맥킨지는 여성이나 인종 등 다양성을 기준으로 한 보고서를 발표해왔다. 2018년에 발표된 보고서에 따르면, 경영진의 젠더 다양성이 확보될 경우 수익성은 21%, 가치창출은 27% 증가했다. 경영진의 인종적·문화적 다양성을 기준으로 할 때 경영성과는 평균보다 33%가 높았다. 기업의 경영진·이사회의 다양성이 높아질수록 회사의 수익성이나 생산성도 높아지고 창의성과 혁신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였다. 유리천장을 깨는 것이 경제적 정의를 넘어서 조직에게도 이득이 된다는 것이다.

대한변호사협회 양성평등센터는 국내 20대 로펌을 상대로 국내 최초로 로펌의 여성 변호사 현황을 조사하였다. 국내 20대 로펌 중 18개 로펌이 참여했다. 여성 변호사는 25% 정도로 늘었으나, 주요 로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여성 변호사는 많지 않았다. 예상했지만, 로펌 업계에 있는 유리천장을 수치로 확인한 것이라 의미가 컸다.

로스쿨 학생이든 변호사시험 합격자든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45%에 이르고 있다. 법원이나 검찰에서도 여성이 꾸준히 늘어가고 있다. 로스쿨 학생들이 판사가 되려면 현재는 5년, 앞으로는 순차적으로 7년에서 10년 동안의 법조 경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대부분은 변호사로서 법조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법조 직역에서 여전히 유리천장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로펌에서 여성 변호사가 성공적으로 일하고 성장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로펌에서 여성이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리더십도 키워지는 것이다. 리더십을 발휘할 기회가 주어져야만 리더십 있는 여성이 많아질 수 있다. 로펌에서 다양성을 확보하면 보다 나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고, 로펌의 건전한 발전을 견인할 수 있다. 다양성이 로펌 경영에 도움이 되고 장기적으로 로펌의 평판과 이미지를 향상시킬 수 있다. 어느 사회나 조직에서든 다양성을 확보할 때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

심리학 실험에 따르면, 다른 의견이 전혀 없는 경우 정답을 맞출 확률은 많이 낮아진다. 다른 의견이 하나라도 있는 경우 정답률은 현저하게 높아진다. 다양성이 없는 사회는 정체될 수밖에 없다. 새로운 관점을 제공할 수 있는 여성 변호사가 로펌에서 중요한 결정을 하는 데 참여해야 로펌이 장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양성평등은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기 위한 기초이다.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포용과 배려의 문화를 확산시키는 데에도 필수적이다.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다양성의 가치에 관해 좀 더 진지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 (Queen 2020년 12월호 칼럼)
 

 

 

글 전현정 변호사 (법무법인 케이씨엘) | 사진 Queen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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