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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만에 대규모 국내 개인전 여는 오명희 교수 ‘Spring Again’
9년 만에 대규모 국내 개인전 여는 오명희 교수 ‘Spring Again’
  • 김은정 기자
  • 승인 2021.03.02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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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희망의 봄은 옵니다”
9년 만에 대규모 국내 개인전 여는 오명희 교수 ‘Spring Again’
9년 만에 대규모 국내 개인전 여는 오명희 교수 ‘Spring Again’


그녀의 작품은 찬란하면서도 애잔하다. 순간으로 사라지는 아름다움, 아스라이 소멸되는 것의 절정을 포착하고 있다. 삶의 덧없음을 예찬한 미학이랄까. 평면의 화폭에서 소멸되는 생명들이 아름다움을 발산하게 하고 인생을 관조하게 하는 화가 오명희. 그녀가 이 봄 우리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얼었던 나뭇가지 위로 새순이 돋우려고 움찔하는 날 오명희 교수(수원대학교 미술대학)의 아뜰리에를 찾았다. 열정의 흔적인 듯 곳곳마다 비치된 수많은 그림들 속에서 오 교수가 상냥하고 환한 미소로 기자를 맞이한다. 아름다운 것은 그림인가 그녀인가. 작품들이 주인을 닮은 것 같다.

 

 


다시 봄날을 꿈꾸다


코로나 19의 장기화로 모든 것이 멈춰버리고 사람들의 마음마저 꽁꽁 얼어버린 날들. 추운 겨울이 끝날 것 같지 않은 날들이지만 어김없이 계절의 시간은 흐르고 꽃은 핀다. 그 속에 오명희 교수가 봄의 전령사가 되어 반가운 소식을 전한다.

가나 아뜰리에 초대 개인전이 인사아트센터에서 3월 3일부터 21일까지 ‘Spring Again’ ‘다시 봄’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것이다. 이번 오명희 개인전에선 몇 가지 주제를 정해 작품들을 선보이는데 그 중 제니스 Zenith(절정)이 이번 전시의 메인 주제가 아닐까 싶다.

“삶이 절실할수록 아름답고자 하는 갈망은 커지는 법이죠. 삶이 때론 고단하고 절망에 빠질지라도 아름답게 피어 있는 벚꽃을 보며 삶이 찬란하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인생에 찬란했던 순간들이 있잖아요. 그런 자기만의 절정의 순간들을 떠올려서 이번 봄에도 다시 한 번 기지개를 켜고 활짝 피어나자는 뜻으로 주제를 정했답니다.”

또 다른 주제인 노스탤지어 Nostalgia(메모리)는 작가가 어릴 적 보았던 기억에 대한 이야기다. 목조 건물과 거리 위에 흘러내리는 능수 벚꽃, 왕서방이 있는 중국집.. 등 50년대생 한국 여성들이 유년의 시절에 봤을 법한 풍경이다. 그 시절에 날았을 법한 제비는 이 봄에도 벚나무 위를 날고 있다. 그녀의 3월 전시에서 관람자들은 시대를 넘나드는 몽환적인 경험을 하며 모처럼 환한 봄기운에 물들 것이다.


전통을 현대화한 독창적인 작품세계

오명희 교수는 다양한 재료를 활용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매체의 실험을 시도하는 작가다. 회화작업으로 동양화 채색, 유화 및 아크릴 등 다양한 안료를 자유롭게 구사한다. 표면에 입힌 정교한 금박기법은 2006년 일본에서 1년 동안 전수받은 것이지만 일본 장인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업해 그들로부터 가르침을 요청받기도 했다. 또한 과감하게 사진을 도입해 어린 시절 기억이 깃든 흑백 사진들 위로 화려한 능수버들이나 벚꽃을 자개로 붙이기도 한다.

2014년부터는 영상작업도 착수해 여러 매체를 종횡무진하고 있다. 그의 영상은 자신의 기존 회화를 활용하되 이를 고요하고 느린 움직임으로 전환시킨 것이다. 유동적 화면은 물 흐르듯 흐르는데 스케일이 큰 작업은 환상적 분위기로 관람자를 압도한다. 정중동의 미감이 십분 발휘되는 영상미에 국악이 얹혀지니 한국적 정서가 한눈에 펼쳐진다. 전통 화조화가 명품 디자인이 되어 화면에서 날고 흩날리고 춤춘다. 전통을 현대화하는 작가 자신만의 스타일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또한 오 작가의 작품은 그녀만의 서정성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아 진한 감정이입을 하게 한다. 그녀의 작품의 화조는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본 딴 것이 아니라 심상을 투여해 나타낸 것이다. 화려한 채색화와 자개 작품은 단순히 장식이나 눈의 쾌락이 아니다. 새에 마음을 싣고 떨어지는 꽃잎을 통해 인생을 관조하고 스카프에서 여인의 꿈, 청춘, 그리움이 느껴지게 한다. 덧없이 사라지는 것을 위한 서정시다.

 

 


성황리에 열렸던 영국 사치갤러리전

그동안 수많은 전시에서 깊은 감동과 여운을 줬지만 지난 2017년 런던 사치갤러리에서 열렸던 개인전은 오 교수에게 잊을 수 없는 전시였다. 그해 10월 'Metamorphosis ; A Journey of Transformation(탈바꿈; 변화의 여행)'이라는 주제로 열린 사치갤러리 전시에서 오 작가는 스카프 연작을 포함해 자개, 금박, 3D 영상 등 100호 이상 채색화 대작 30여 점을 선보였다.

한국의 미술 작품이 갖는 특유의 완성도와 병풍 구성, 서양에서 보기 어려운 수공예의 섬세한 미감이 그토록 매력적이었을까. 사치 회장은 전시 룸을 한 개로 배정했다가 두 개로 확장했다. 그리고 원래 10월 10일에서 18일까지 전시였는데 사람들이 줄을 설 정도로 많이 찾아오고 사진을 찍는 등 뜨거운 호응을 보여 전시 기간을 2주간 더 연장하기까지 했다.

사치갤러리는 독창적 영역을 개척한 혁신적인 작가들을 키운 현대미술계의 영향력 있는 미술관으로, 전시 기간 연장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특히나 사치갤러리가 더욱 의미 있었던 것은 둘째 딸이 런던에 살고 있어 딸과 사위도 전시를 보러 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 교수의 둘째 딸은 SBS 아나운서 출신인 김민지 씨, 사위는 축구선수 박지성 선수다. 두 사람은 어머니의 영국에서의 전시를 누구보다 기뻐하며 축하해주었다.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가족의 응원

오명희 교수에겐 늘 가족의 응원이 든든한 힘이 돼 왔다. 하지만 가족 이야기만 나오면 오 교수는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한다.

“큰아이는 엄마와 어릴 때 좀 더 시간을 보내서인지 엄마에게 의존적인 편이었는데 둘째 딸 민지는 독립적이어서 스스로 알아서 잘하겠지 하고 믿고 내버려둔 편이었어요. 그런데 민지가 결혼해서 사는 것을 보니 남편에게 많이 의존하고 기대고 하는 거예요. 아 그래서 둘째가 저런 성격이었는데 내가 너무 몰랐구나 싶어 참 미안하더라구요.”

늘 바쁜 엄마를 배려해 스스로 알아서 자신의 일을 해내고 그 어렵다는 공중파 방송의 공채 아나운서 시험에도 합격했으니 부모가 보기엔 대견하지만 오교수의 마음 한구석엔 혼자서 자신의 일을 해내기까지 살뜰히 보살피지 못한 것이 미안함으로 남아 있다.

민지 씨는 영국에서 박지성선수와 슬하에 딸과 아들을 두어 단란한 가정을 이루어 살고 있다. 가끔 한국에도 오는데 이번에도 한국에 머무르다 아이들의 학교 개학 일정 때문에 영국으로 돌아가게 되어 엄마의 전시회에 오지 못하는 것을 무척 아쉬워했다고 한다.

 

9년 만에 대규모 국내 개인전 여는 오명희 교수 ‘Spring Again’

 

좋은 작품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위로가 되었으면

오명희 교수는 이번 봄 국내 개인전을 시작으로 앞으로 해외에서 큰 전시 계획을 앞두고 있다. 2022년 베니스 비엔날레(4월부터 11월)에서 개인전이 열릴 예정이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미술계의 올림픽으로 불리는 국제현대미술 전시회로서 전 세계 미술계에 가장 영향력 있는 권위 있는 행사다. 그 초대전에 앞서 프리뷰 형식으로 올해 5월부터 11월까지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에 오교수의 작품 ‘노스탤지어’가 전시된다.

“큰 전시를 앞두고 작품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작가로서 좋은 작품을 하고 싶은 마음은 끝이 없구요. 나중에 시간이 흘러도 ‘저 작가는 참 좋은 작가였다. 참 좋은 작업을 했다’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오명희 교수의 작품에 가장 큰 영감을 주는 것은 ‘자연’이라고 한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봄이 오면 꽃이 핀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다. 지금은 비록 끝없는 겨울 속에 사는 것 같지만
계절은 바뀌고 어두운 터널도 언젠가 끝이 있다.

“코로나19가 길어지면서 많은 분들이 위축되고 우울감에 빠져 있는데요. 제 그림이 그분들의 마음에 위로가 되고 다시 봄날을 꿈꿀 수 있게 하면 좋겠습니다.”

봄이다. 긴 시간 동안 닫혔던 마음을 활짝 열고 봄 향기 물씬 풍기는 갤러리를 찾아 아름다운 작품들을 감상하며 다시 희망을 꿈꿔보는 것은 어떨까.


 

 


‘정중동(靖中動)’의 미학: 천천히 그리고 자유롭게


오명희가 자주 활용하는 모티프는 스카프다. 그에 대한 발상은 30년 쯤 된 모양이다. 90년대 초였던가. 그는 햇볕 가득한 어느 날 검정 비닐봉지 하나가 날아 다니는 것을 보고 문득 그 방향 없는 움직임에 눈을 못 뗄 정도로 매료돼 하염없이 바라봤단다. 너무도 하찮은 것이었지만, 바람에 의해 방향 없이 떠돌아다니는 비닐봉지가 마치 춤추듯 즐겁고 자유롭게만 느껴졌다던 작가. 그 당시 자신의 심정과 상황이 투사된 상태에서 본 미물의 움직임은 세 아이의 엄마로서의 책임과 가정을 지키는 한국 여성이 감당해야 하는 버거움을 한 순간 떨쳐버리는 자유로운 몸짓이었던 것. 그것은 사회적 역할에서 자유롭고자 하는 작가로서의 갈망이기도 했다.


그래서 오명희는 이러한 느낌을 함축하는 스카프를 채색화로 그리기 시작했다. 초원이 펼쳐지고 야생화 가득한 꽃밭 위를 스카프가 나는 풍경이다. 스카프는 그가 자신의 내면을 투사하며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모티프다. 이렇듯 의인화된 스카프는 작가를 대신하여 마음껏 들판을 날아 다닌다. 화려한 꽃밭 위 스카프의 즉흥적 움직임은 조용하면서도 경쾌하다. 고요히 움직이는 정중동의 움직임. 그 흥겹고 활달한 제스처는 마치 벚꽃이 마구 휘날릴 때의 모습과 닮아있다. 부드럽고도 자유로운 춤사위. 반사된 빛으로 인해 반짝이며 흩날리는 꽃잎들은 바람을 애무하듯 오므렸다 펴지는 스카프처럼 자유롭게 날아간다. 어디서 오는지 모르는 바람을 머금고 멀리 사라져간다.


오명희의 작업은 장르를 넘나드는 여러 매체의 활용, 그리고 자개, 옷칠, 석채를 포함한 다양한 재료의 표현과 더불어, 그 내용이 갖는 문화적 속성 또한 다층적이다. 정겹고 애잔한 한국적 고졸미는 고도로 정제된 일본 미학 그리고 세련된 서구 디자인과 만나 글로벌 작업으로 거듭나 그만의 독자성을 담보하고 있다. 한국 미학의 세계화가 절실한 오늘, 오명희와 같이 우리의 전통미술을 독창적으로 현대화하는 작가가 중요한 이유다.    - 전영백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오명희의 작품 세계 “삶의 덧없음, 그 화려한 애상” 전시 서문 중>



취재 김은정 기자 | 사진 양우영 기자 | 작품사진 오명희, 가나 아뜰리에 인사아트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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