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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에서 웨딩사업가로 변신한 지 11년 보다 넓은 세상과 소통하고픈 김태욱의 새로운 꿈
가수에서 웨딩사업가로 변신한 지 11년 보다 넓은 세상과 소통하고픈 김태욱의 새로운 꿈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1.07.11 10: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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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커머스 ‘굿바이셀리’는 수익보다 유익이다
김태욱이 사업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돈 많은 아버지를 둔 덕분에 하는 사업이라는 소문도 있었고, 연예인이 하면 얼마나 잘하겠느냐며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 흔들리지 않고 꿋꿋이 자신의 길을 걸어온 결과, 창업 11년 만에 연매출 500억원 기업 ‘아이웨딩네트웍스’를 일궈내며 성공의 자리에 올랐다. 그런 그가 최근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다. 새로운 개념의 소셜커머스 ‘굿바이셀리’가 바로 그것이다.
“지금의 소셜커머스는 소비자 이익이 아닌 업체 이익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러니 소비자는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죠. 이대로 가면 소셜커머스의 미래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소비자가 주도하는 소셜커머스 시대가 열려야 합니다.”
굿바이셀리는 좋다의 ‘Good’과 사다의 ‘Buy’를 합성해 만들었다. 도시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개구쟁이가 연상되는 ‘Selly’는 ‘Sell(팔다)’을 인격화한 것이다. 그는 “굿바이셀리는 못 해도 페이스북만큼은 된다”라고 말한다. 그만큼 자신 있다는 의미다.
“굿바이셀리는 영화 <소셜 네트워크>를 보고 생각해냈어요. 페이스북에선 학연, 지연 등 인맥으로 얽혀서 다양한 생각을 나누고 사진 등을 공유하잖아요. 굿바이셀리는 경제활동을 하는 SNS라고 생각하시면 되요. 경제활동이라고 하면 굉장히 딱딱하게 느껴지지만, 사실 이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소비자잖아요. 그러니 소비자가 소비생활을 하면서 얻은 정보나 경험을 토대로 서로 인맥을 맺는 거예요. 소비의 장 ‘C-SNS(Commerce oriented SNS)’를 만든 거죠. 1차 공급자 중심의 소셜커머스를 만들었어요. 즉 1차 공급자와 소비자가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가 되는 셈이죠. 이것이 기존 소셜커머스 시스템과의 차이라고 할 수 있어요.”
사업을 하며 수익을 생각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그는 수익을 먼저 생각하고 비즈니스를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유익한 장을 만들어 그곳에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콘텐츠를 담는 게 첫 번째고, 수익은 그 다음 문제라는 것이다.
“다음이나 네이버가 처음부터 수익을 내는 회사는 아니었어요.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도 마찬 가지죠. 굿바이셀리가 어떤 식으로 수익창출을 할지는 아직 몰라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거니까요. 그것보다는 가입자가 받아야 할 서비스를 먼저 생각해야겠죠. 재미도 있고, 경제적인 혜택도 있고 보람이나 유익도 있으면서 사람 간에 네트워킹이 가능한 곳…. 정식 오픈은 6월 20일이 목표인데 일주일 정도 더 걸릴 수도 있어요. 재미있는 곳이 될 테니 많이 기대 해주세요(웃음).”
목소리를 잃은 절망의 순간에 희망을 발견하다
그는 웨딩 산업에 유통을 접목시킨 ‘아이웨딩네트웍스’로 전 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영역을 만들었다. 최근 추진하고 있는 굿바이셀리 역시 그의 아이디어.
“원래 가수였잖아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친구들과 밴드를 했어요. 꿈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뮤지션이 되는 거였어요. 그냥 히트곡이 많은 가수가 아니라 이슈와 문화를 만드는, 이를 테면 들국화나 비틀즈를 꿈꿨죠.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벤처 정신이 강했던 것 같아요. 무모할 정도로 새로운 것에 도전했고 다른 사람이 하지 않는 것에 관심을 가졌거든요. 그 버릇은 지금까지도 남아 있어서 어떤 이슈에 대해 아이디어 회의를 하면 남들과는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곤 해요.”
그가 사업가로 변신을 하게 된 것은 1998년, 어느 날 목소리가 안 나오면서다. 당시 병원에서는 신경 전달 부분이 마비되기 시작했고, 서서히 다른 기관으로 마비가 진행돼 결국 평생 말을 못 하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게다가 수술조차 불가능하다는 것. 가수가 목소리를 잃는다는 건 사형선고나 다름없기에 평생 뮤지션으로 살겠다는 그의 꿈은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1998년부터 2003년까지 결혼을 하고 나서도 계속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어요. 한동안 꿈도 없이 좌절한 채로 시간을 보냈죠. 그러던 어느 날 케이블 TV에서 스티브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을 봤어요. 소름이 돋을 정도로 짜릿한 무언가가 느껴지더군요. 1990년대 말에는 벤처산업 붐이 일어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저도 무언가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만 보니 사업과 음악은 기본이 같더군요. 협력업체·직장동료·소비자와 하모니를 이뤄 경쟁력 있는 상품을 만들고, 좋은 서비스로 고객들에게 잘 전달하는 것이 좋은 음악을 만들어 잘 마케팅해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것과 무척 닮아 있었죠. 
벤처사업에 도전하기로 결심한 후, 그는 모든 촉각을 세우고 사업 아이템을 찾아다녔다. 2000년 3월 채시라와 결혼을 준비하면서 웨딩 시장 시스템이 생각보다 부실함을 발견하고는 지금의 ‘아이웨딩네트웍스’를 생각해냈다.
“결혼을 준비할 당시 아내가 드라마를 찍고 있어서 거의 모든 일을 저 혼자 준비했어요. 주위 사람들의 소개로 업체 몇 군데를 돌아다녔는데 똑같은 물건이어도 가격이 다 달랐죠. 누구 소개로 오느냐에 따라 가격과 서비스가 달라지니까 업체에 대한 신뢰도 떨어졌고요. 그때 결혼 상품도 시중에서 판매하는 물건처럼 정확한 가격으로 판매되기 위해서는 유통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강한 자신감으로 시작한 사업이지만 초기에는 이익이 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었다”는 그는 직원들 월급날과 은행 이자 내는 날 새벽에는 잠도 오지 않을 정도였단다. 힘든 시간을 보내던 2002년의 어느 날, 부부가 떠난 여행길에서 아내가 건넨 한 권의 책으로 깊은 감동을 받게 되었다. 
“비행기 안에서 한 권의 책을 주더군요.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유대인이 모세의 예언대로 가나안이라는 평화의 땅으로 가는 여정이 나와 있었어요. 가나안 땅으로 가기 위해서는 사막 같은 광야를 지나야 하는데 이때 두 그룹으로 나뉘더군요. 한 그룹은 ‘이집트에 있었으면 힘들어도 그냥저냥 밥은 먹고 살았을 텐데 왜 내가 이곳에서 고생을 하고 있냐’고 불평했고, 또 다른 그룹은 이미 온 여정 길에 순응하고 언젠가 도착할 가나안 땅을 그리며 가던 일을 묵묵히 걸었죠. 마지막 책장을 덮는데 ‘나는 첫 번째 그룹처럼 불평만 했구나’ 싶더라고요. 희망을 놓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점점 더 목소리는 막혀 소리가 안 나고 있었지만 ‘과묵한 매력이 있어’라며 스스로 위로했죠.”
놀랍게도 2002년 이후 사업은 조금씩 수익을 내기 시작했다. 목소리 역시 그가 의식하지 못한 새 회복되어 완치되었다. 당시 진료했던 의사도 그가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건 기적이라고 말했다. 그간의 고생과 감내가 좋은 열매를 맺기 시작한 것이다.

카메라 불이 꺼지면 아내는 주부 채시라로 돌아온다
“사업을 시작하고 4년 정도 집에 돈 한 푼 못 갖다 줬어요. 그런데도 아내는 바가지 한 번 긁은 적이 없죠. 제가 아내와 연애를 시작한 게 1998년도인데, 연애 중에 목소리를 잃을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죠. 그런데도 아내는 예정대로 결혼을 진행하자고 하더라고요. 늘 고마운 마음이죠. 럭비공 같은 남자를 믿고 사랑 하나로 위험한 투자를 한 사람이니까요. 속내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당시 아내는 걱정하는 내색 한 번 없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느낌으로 말하면 언제나 제 한발자국 뒤에 서 있다고 할까요. 길을 못 찾아 헤매고 있다가도 돌아보면 아내가 뒤에서 딱 받쳐주고 있는 느낌. 내 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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