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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을 무색하게 하는 연기혼 청담동 자택에서 강부자와 나눈 ‘50년 연기 인생’
세월을 무색하게 하는 연기혼 청담동 자택에서 강부자와 나눈 ‘50년 연기 인생’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1.07.11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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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배우로 살았지만 촬영이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제일 먼저 도착해 준비를 한다. 카메라 불이 켜지면 NG를 내는 일도 거의 없다. 배우로서는 자신에게 가혹할 정도로 철저하지만 생활인으로는 작은 일에도 눈물짓고 감동할 줄 아는, 여린 감성을 가진 사람이다. 이는 인터뷰를 하던 날에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인생이라는 고목에 무수히 새겨진 나이테는 그이를 울고 웃게 만들었고, 그것이 원동력이 되어 계속해서 꿈꾸게 했다.
인터뷰는 서울 청담동 자택에서 이뤄졌다. 29년간 살던 집에서 지난해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는 그이는 새롭게 옮긴 터전을 제법 마음에 들어 했다. 지금 집은 빌라인데 한옥에서 사는 것이 꿈이라 천장에는 서까래를 대고 창문에는 한지를 발랐다. 집 안은 소박한 느낌의 가구들로 차 있고 그 가운데 조소과를 나온 딸의 작품이 있었다.
“배우 집이라고 하면 화려한 것을 생각하는데 우리 집은 그냥 소박해요. 무엇이든 쉽게 못 버리는 성격이라 오래된 가구도 많고, 부모님이 쓰던 그릇도 아직 가지고 있죠. 나는 그냥 이렇게 평범하게 살고 있어요(웃음).”
사람 좋은 미소를 건네며 차를 내오는 그이의 발걸음이 조금 불편해 보인다. 지난해 허리 협착증으로 수술을 받은 탓이다. 재작년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 촬영을 위해 거의 매일 서울에서 군산까지 오갔고, 여기에 밤샘 녹화가 이어져 피로가 누적되는 바람에 척추에 무리가 갔다. 워낙 건강 체질이라 수술 후 예후는 좋은 편이지만 그럼에도 아직 다리 힘은 부실하다. 그래도 그이의 연기 열정은 여전하다. 얼마 전까지 연극 <친정엄마와 2박 3일> 공연으로 전국을 순회했고 지금은 MBC 일일드라마 <불굴의 며느리>에 연극 <산불>까지 쉴 틈이 없다. 그래도 건강을 위해 잠깐씩이라도 운동을 안 할 순 없다. 
“나는 세상에서 운동이 제일 싫어요(웃음). 하지만 근력을 키워야 하니까 잠깐이라도 시간을 내서 운동을 하려고 하지. <산불>을 마치고 집에 오면 11시쯤 되는데 들어와서 30분 정도 러닝머신이나 자전거를 타요. 아마 그래서 이 정도 건강한 모습을 유지할 수 있나 봐요.”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의 끊이지 않는 고민들
1941년 일곱 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난 그이는 충남 논산군 강경읍 중앙동에서 나고 자랐다. 어린 시절 호기심 많고 활달해 동네를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들은 소식을 부모님께 자주 전하곤 했는데, 아버지는 그런 그이를 유달리 예뻐했다. 마당에 동네 아이들을 모아 놓고 연극 무대도 자주 꾸몄다고. 그 모습을 보고 동네 어른들은 “커서 뭐가 되려고 이리도 똑똑하냐”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곤 했단다. 어릴 때부터 배우가 될 끼가 있었다. 대청마루에 어머니 치마를 막으로 걸어놓고 배우 흉내를 내 동네 사람들 칭찬을 받기도 하고, 중학교 3학년 때는 직접 쓴 각본으로 1인 3역을 해 전교생의 박수갈채를 받은 적도 있다. 고등학생 때는 학교 숙직실에 라디오가 있었는데 거기서 라디오 DJ라도 된 양 음악도 틀고 진행도 하면서 끼를 발휘했다. 그러다 대학에 진학해 학교를 다니던 중 우연히 탤런트 모집 공고를 보게 됐다. 당시에는 라디오 연속극이 인기였다. 그래서 그녀의 꿈도 성우였다고. 그런데 탤런트도 성우와 별반 다를 것 같지 않아 탤런트 모집에 응시했고 단박에 합격했다. 하지만 막상 들어오는 배역은 주로 아주머니나 할머니. 흑백 TV시절이었으니 20대 초반의 나이로 중년, 노년의 역을 맡아도 그럭저럭 비슷해 보였던 걸까. 어쨌든 스물두 살의 나이로는 여간 부담스러운 작업이 아니었을 텐데 그래도 그 시절이 연기 인생의 기반이 되었다고.
“1962년에 데뷔를 했어요. 첫 작품에서 마흔다섯 살 중매쟁이를 연기했죠. 그 이후로도 주로 노역을 맡았어요. 당시에는 그게 신경 쓰이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다행이다 싶어요. 지금까지 배우 생활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거든요.”
요즘에는 방송국에 의상실, 미용실이 갖춰져 있지만 당시만 해도 분장 외에는 모든 것을 스스로 준비해야 했다. 누구보다 부지런했던 그이는 촬영이 있는 날이면 새벽 4시에 일어나 미용실에 들러 극에 맞는 머리를 하고 1시간 일찍 방송국에 도착했다. 드라마 스튜디오에서 움직여야 할 동선을 체크하고, 자신의 분량뿐 아니라 다른 배우의 대본까지 꼼꼼히 살펴본 다음 분장실 구석구석을 청소하며 선배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이러한 습관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이제는 그만 게으름을 피울 만도 한데, 연기 생활 50년째 베테랑 배우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변하지 않았다. 50년을 성실한 연기자로 살아온 그이. 그이가 생각하는 연기는 무엇일까?
“연기에는 ‘뿌리’가 있어야 해요. 근본 없는 연기를 하면 안 되죠. 배우라면 자신이 연기하는 것 외에도 극의 전체 흐름을 알아야 해요. 그런데 요즘에는 자신이 나오는 부분만 찢어서 다니는 배우들도 있더군요. 그런 건 고쳐야 돼요. 아무리 작은 역할이라도 전체 흐름을 파악하고 연기해야 하죠. 그렇게 한 작품, 두 작품 점점 경험을 쌓아가며 진정한 배우로 성장하는 거예요. 지혜로운 배우가 되는 거고요. 가끔 분장실에 앉아 있으면 항상 예쁘게만 보이려는 후배들이 있어요. 그러면 옆에서 ‘오늘 같은 신에서는 조금 덜 예뻐도 돼. 그 예쁘기만 한 얼굴로 어떻게 천의 얼굴을 만드니’라고 이야기해주죠.”
하지만 이런 그이도 가끔은 꾀를 부리고 싶다고 한다.
“가끔은 이런 상상을 해요. 우리 집에 천 가지 가면이 있어서 상황과 배역에 맞추어 가면을 바꿔 쓰고 싶다고요. 그런데 실제로는 그런 탈이 없으니 연기로 만들어내야죠.”

국민에게 감동과 보람을 선사해온 배우 인생 50년
그이는 아침에 일어나면 신문 3종은 꼭 정독한다. 가장 먼저 눈이 가는 것은 정치·사회면. 아름답고 흐뭇한 기사를 기대하며 첫 장을 펼쳐 들지만, 요즘 들어 부쩍 그런 기사를 찾아보기 힘들다. 성범죄, 정치인 비리가 정치면과 사회면을 채울 때마다 가슴이 턱턱 막힌다고. 14대 국회의원을 지낸 그이이기게 더욱 그러리라. 사실 그이가 정치판에 발을 디딘 건 국민, 그녀가 늘 연기해왔던 보통 사람들을 위해서였다. 그런데 막상 정치인으로서 그이는 행복하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정치가는 배우만큼 국민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더라고요. 사실 배우처럼 좋은 직업이 또 어디에 있어요. 자신에게 게으르지 않고, 똑바르면 사방에서 존경해주잖아요. 물론 배우로서 올곧게 자신의 길을 가야만 비로소 사람들의 인정을 받겠지만요.”
50년의 연기 생활 동안 부침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터. 그이는 이런저런 루머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그 상처도 조금씩 딱지가 앉고 새살이 돋았다. 
“오래전부터 나를 따라 다니는 악성루머가 있었어요. 자식 키우는 부모로서 배우로서 부끄러운 일 한 적이 없는데, 그런 이야기가 들려오니 무척 속상했죠.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시간이 지나 소문이 잠잠해지려고 하니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는 ‘강부자(강남·부동산·부자)’ 내각 때문에 또 한 번 구설에 올랐죠. 모르는 사람들은 저를 지칭하는 것으로 아니까요. 마음이 너무 힘들어 민주당 대변인을 만나 이야기를 하니 미안하다면서 앞으로는 안 하겠다고 하더군요. 한동안 억울할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냥 웃고 말아요.”

인생의 진정한 멋을 아는 여자 그리고 배우
“김수현 작가는 나를 두고 ‘독일탱크’라고 불러요. 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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