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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Queen 다시보기] 1991년 3월호 -긴급입수/강영훈 전 국무총리
[옛날 Queen 다시보기] 1991년 3월호 -긴급입수/강영훈 전 국무총리
  • 양우영 기자
  • 승인 2021.04.03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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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3월호

사임 후 첫 강단에 선 강영훈 전 국무총리의 요즘생활 & 부인 김효수 여사의 내조기

"이제 세상 사는 재미 좀 느끼며 살렵니다"

얼마 전 국무총리를 사임한 뒤 평범한 보통 생활로 돌아가 책을 읽고 회고록을 쓰는 일에 전념하며 지내던 강영훈 전국무총리가 강단에 섰다. 이 나라에 대한 애정과 따뜻한 인간미로 칠순을 맞은 그의 요즘 생활, 그리고 조용하면서도 힘있는 태도로 그를 뒷바라지한 김효수 여사의 내조기를 들어 본다.

1991년 3월호 -긴급입수/강영훈 전 국무총리1
1991년 3월호 -긴급입수/강영훈 전 국무총리1
1991년 3월호 -긴급입수/강영훈 전 국무총리2
1991년 3월호 -긴급입수/강영훈 전 국무총리2

 

총리 사임 후, 명강사로 초빙되어 강단에 서고 박수 갈채받다

지난 2월1일 하오 3시, 고당 조만식 선생의 추모회가 열린 기념식장에는 낯익은 얼굴이 모습을 나타냈다. 예의 그 따뜻한 웃음을 가득 안고 나선 그는 다름아닌 강영훈 전 국무총리. 총리 사임 후 책과 회고록 준비에 여념 없는 조용한 생활에 묻혀 살던 강 전 총리가 모처럼만에 강사로 초빙되어 강단에 서게 된 의미 깊은 날이었다. 한때 육사 교장과 외국어 대학원장을 지내는 등 교직에도 몸담고 있었던 경험으로 보면 가르치는 일이 그리 생소하지만은 않은 셈.

"우선 부끄럽다는 말부터 하고 싶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저에게 이렇게 뜻깊은 강의를 맡겨 주시고···. 특히나 고당 선생께 직접 교육을 받은 분들께서도 참석하신 자리라 정말 몸둘 바를 모르겠더군요"

예배 형식으로 진행된 이날 기념회에는 강총리를 비롯, 평안남도 도지사 김훈기, 원로 목사 한경직, 시인 박경종씨 등이 참석하였으며 2백석 가량의 좌석이 차고 넘치는 뜨거운 열기 속에서 강의는 진행 되었다. 

'고당의 지행일치 일생'이란 제목의 강의에서 강총리는 올바로 알고 올바로 행할 수 있는 사람이야 말로 나라와 겨레 사랑에 힘쓰고 민주전선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사람임을 강조했다. 또한 국외적으로는 우루과이라운드에 시달리고 국내적으로는 지방자치제가 마련된 소위 민주화 실현의 중대한 국면에 처해 있는 이때야말로 고당 선생이 염원하던 지역감정 해소운동과 국산장려운동 그리고 남과 북이 통일되는 한 나라운동을 전개해야 할 때라고 주장, 전직 정치인으로서의 깊은 심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이날의 연설에서도 느낄 수 있었듯, 그는 나라 사랑의 정신이 깊은 사람이다. 그것은 그가 살아온 지난 세월을 더듬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일제 당시 만주건국대학 재학중 육당 최남선 선생으로부터 역사를 배운 그는 학병으로 출전했다가 귀국한 후 공산당의 발호를 피해 월남, 군사영어학교에 들어가 군인의 길을 걸었다. 

5.16때는 육사교장으로 있으면서 육사 생도들의 5.16지지 데모를 반대하다가 혁명 세력에 의해 구속되기도 했고 이로 인해 62년, 육군중장으로 예편되었다. 예편 후 곧바로 미국 유학길에 오른 그는 남가주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후 70년, 워싱턴에 한국문제연구소를 개설하여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한 연구와 노력을 거듭했다. 그후 7년 뒤인 77년에 귀국, 외국어대학원장에 취임했고, 외교안보연구원장, 주영(駐英)대사, 주 로마교황청대사 등을 지내다가 지난 4.26총선때 민정당 전국구 위원으로 정계에 진출했다. 

이렇게 빛나는 이력을 지니고 사는 긴 세월 동안 그는 늘 강직한 성품과 소신을 간직한 채, 국민과 국가를 위한 염려와 사랑으로 가슴 뜨겁게 살아왔던 것.(중략)

 

Queen DB

[Queen 사진_양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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