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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Queen 다시보기] 1991년 3월호 -화제추적/한보그룹 정태수 회장
[옛날 Queen 다시보기] 1991년 3월호 -화제추적/한보그룹 정태수 회장
  • 양우영 기자
  • 승인 2021.04.04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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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3월호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과 세 부인 

둘째 부인과 함께 묻히기 위해 초호화 묘역 조성

아내의 곗돈 1백만원으로 오늘의 한보그룹 총수가 된 정태수 회장은 첫 부인과 이혼, 둘째 부인과 사별한 후 현재의 부인과 재혼을 했다. 그는 창업에 헌신적인 노력을 한 둘째 부인을 끔찍히도 사랑해 죽어서도 그 부인과 나란히 묻히길 원했다. 

1991년 3월호 -화제추적/한보그룹 정태수 회장
1991년 3월호 -화제추적/한보그룹 정태수 회장

 

수서지구 택지특혜분양 의혹사건의 불똥이 일파만파로 번져 급기야 개각차원에서 민심을 수습하긴 했지만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에 대한 의혹은 여전하다. 그런 가운데 정회장의 사생활이나 기업경영 등 인간 정태수에 대한 갖가지 화제가 나돌고 있다.

정회장은 6.25가 나기 전 세무공무원이던 27살에 첫부인 김순자씨와 결혼했으나 몇년 후 이혼하고 55년에 경남 산청 출신의 두번째 부인 이수정씨(당시 17세)와 결혼했다. 

이수정씨는 말단 공무원의 아내로 가난과 싸우며 정회장이 한보그룹을 일으키는데 적지 않은 내조를 했다. 정회장이 한보그룹을 창업한 것은 그의 나이 51세 때이다. 

23년간 세무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강릉세무서의 법인세 담당 주사를 끝으로 지난 74년3월 한보상사를 설립, 뒤늦게 기업가로 변신해 15년만에 재벌 총수로 군림했다. 

당시 정회장의 사업 밑천은 부인의 곗돈 1백만원과 가옥 담보금 2백만원 등 총 3백만원에 불과했다. 그는 공무원 시절부터 여유자금이 생기면 땅을 조금씩 사들여 건설업계에서도 '부동산 귀재'로 통할 만큼 부동산과 그의 성장은 떼놓을 수 없는 관계다.

이 과정에서 그의 두번째 부인이 빈손으로 기업을 일으키는 남편을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했다. 그러나 이 부인은 한보의 사세가 급성장의 피치를 올릴 무렵인 지난 83년 3월 46세의 나이에 지병으로 눈을 감았다. 

이 부인은 아들 4형제를 낳아 훌륭하게 키워 놓았는데, 평소 직원들에게도 스스럼 없이 대해 '한보그룹의 어머니'로 통했다. 

이 때문에 정회장은 부인 장례식을 회사장으로 치르고 경기도 김포군 금단면 왕길리 산11번지에 대규모 묘소를 꾸몄는데 한때 이것이 말썽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 묘소는 당시 3억원을 들인 초호화판으로 무허가 산림훼손 및 이웃 땅을 침범했다는 주민들의 원성으로 관계기관에 진정서가 들어가기도 했다.

이 묘소의 규모는 1천여평의 묘역과 길이 2백미터의 진입로에 잔디가 깔려 있고 묘 자체만도 1백50평이 넘는다. 특히 묘를 둘러싸고 있는 초대형 병풍석에는 '78년 대한노인회 중앙회관을 사재로 건립, 기증해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감사의 친서를 보내 왔다'는 치적과 박대통령의 친서 전문이 새겨져 있다. 

또 '새마을사업에 쓰라고 전대통령에게 5억을 헌납해 포상을 받았다'는 내용도 각인돼 있다. 그외에도 정태수 회장의 치적과 훈장수여 내용 등이 적혀있는 이 병풍석은 길이가 18미터나 된다.

이로 인해 정회장이 5공 때부터 정 · 경 유착을 시도 했다는 사실이 입증된 셈이다. 특히 이 부분과 관련 한보의 배후에 실력자 K씨가 있다는 소문도 파다하다.(중략)

 

Queen DB

[Queen 사진_양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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