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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낙균 여성평화외교포럼 이사장 "뉴노멀 시대, 위기가 곧 기회다"
신낙균 여성평화외교포럼 이사장 "뉴노멀 시대, 위기가 곧 기회다"
  • 송혜란 기자
  • 승인 2021.04.24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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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옥이 만난 여성계 거목
15대·18대 국회의원,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내며 일찍이 유리천장을 깬 신낙균 여성평화외교포럼 이사장

 


1973년 한국여성유권자연맹 사무총장을 시작으로 15대·18대 국회의원,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내며 일찍이 유리천장을 깬 신낙균 여성평화외교포럼 이사장. 평생을 호주제 폐지, 공직 분야의 여성 권한 강화, 여성 정치 참여율 확대 등을 위해 헌신해 온 신낙균 이사장은 우리나라 여성계 거목으로 불린다. 팔순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여성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활동에 열정을 다 하고 있는 신 이사장을 만나 후배 여성들에게 보내는 크고 작은 메시지들을 담아보았다.

신낙균 이사장은 이화여대를 졸업, 미국 예일대 유학길에 올랐다가 다시 이대 총사감으로 멋지게 돌아왔다. 그러나 독신으로 이화여대에 헌신하겠다는 계획과 달리 결혼을 선택, 슬하에 세 자
녀를 훌륭히 키우며 한국여성유권자연맹 사무총장을 시작으로 정치권에 입문했다. 그렇게 일·가정을 양립하며 국회의원, 문화관광부 장관을 거쳐 앞서가는 여성으로서 여성리더의 본보기
로 손꼽히는 신낙균 이사장.

2007년 호주제 폐지 근거 마련부터 공직 분야 여성 할당제, 성평등기본법을 시안으로 19대 양성평등기본법 통과에 결정적인 역할까지 신 이사장이 여성사에 남긴 공로들도 상당하다. 이에
2003년 대한민국 청조근정 훈장을 받았다. 어떠한 노력들이 신 이사장을 지금의 여성계 거목으로 우뚝 서게 했을까? 사회 현안에 대한 신 이사장의 지혜, 인생철학, 가치관, 자녀교육법은 여성들에게 커다란 배움을 주기 충분했다.


김성옥_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불안 속에 어수선합니다. 이사장님께서는 대내·외적 활동이 많으신데,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신낙균_ 여느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요. 예전보다 훨씬 외출이 줄고, 사람들과의 만남도 뜸해졌지요. 다행히 지금은 사회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때가 아니라, 이 정도 적응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한창 밖에서 친구들과 뛰어놀아야 하는 어린이들을 생각하면 매우 안타까워요.


김성옥_ 이화여대를 졸업하시고 미국 예일대학교로 유학을 가셨습니다. 당대 여학생으로서 유학길에 오르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요. 어떠한 어려움과 노력 등이 있었나요?

신낙균_ 우선 영어가 서툴러 힘들었죠. 그러나 제 의지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부분이었어요. 예일대에서 일찍이 입학 허가가 났는데, 그때만 해도 한국이 빈곤국가라서 장학금을 받는데도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어요. 실제 미국에 가서 문화 차이로 엄청 고생했지요. 언어와 문화라는 걸림돌로 사람들과 소통이 원활하지 않으니 답답하더라고요. 제 인생을 통틀어 가장 힘들었던 때가 그때였을 정도예요. 그래도 다시 이화여대로 돌아가겠다는 목표 하나로 이겨냈습니다. 이주일에 한 번씩 주고받는 가족들과의 편지도 큰 힘이 됐고요.


김성옥_ 우여곡절 끝에 공부를 마치고 결국 이화여대 총사감이 되어 멋진 모습으로 귀국하셨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당시 이대 총사감은 총장이 되기 전 의례 거치는 자리라는 이야기와 함께 이사장님이 다음 총장님이 되실 거라는 소문이 자자했는데요. 그러던 어느 날 이사장님이 결혼 후 학교를 떠나셔서 많이 서운했습니다. 총장 자리보다 결혼을 택하신 건데, 아쉬움은 없으셨나요?

신낙균_ 그 시절 이화여대 총장이셨던 김옥길 총장님은 제가 참 존경하는 분이셨어요. 김 총장님을 본받고 싶어 미국 유학을 결심했고, 그분처럼 사는 게 보람된 삶이라고 생각했었지요. 그 목표 때문에 숱한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었어요. 그런 제게 김 총장님은 어린 나이임에도 이화여대 기숙사 총사감 자리라는 중책을 맡겨주셨어요. 매우 감사했지요. 그러나 다들 잘 알다시피 그때 이화여대 총장은 물론 많은 중진 교수들이 독신이었어요. 제가 결혼 후 육아문제 등으로 자연스럽게 학교를 그만두게 됐지요. 때마침 남편이 외국으로 파견근무를 가게 되어서 같이 떠나게 됐습니다.


김성옥_ 그때 이사장님의 마음을 사로잡은 분은 어떤 분이신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신낙균_ 미국은 부부중심 사회예요. 그 속에서 홀로 있는 게 너무 힘들어서 독신이라는 신념이 흔들리기 시작했어요. 그즈음 지금의 남편이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저랑은 완전히 반대의 사람이었지요. 저는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면, 그 사람은 혼자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고 또 성격은 과묵해요. 그런 점이 제게는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체격도 큰데다가 말없이 책만 보는 성실한 자세가 참 맘에 들었지요. 그 사람도 자신에게는 없는 명랑함과 누구와도 잘 어울리는 제 모습에 끌렸을 거예요. 그렇게 결혼까지 하게 됐습니다. 제 선택에 후회는 없어요. 저는 꽤 활동적인 사람이라 학교에서 연구하고 탐구하는 학자 성향은 아니거든요. 반대로 저희 남편이 그런 사람이고요.


김성옥_ 그 시절엔 일·가정 양립이 더더욱 어려웠을 때라고 알고 있습니다. 한 남자의 아내, 아이들의 어머니의 삶이 아주 드라마틱하게 그려집니다. 실제로 어떠셨나요?

신낙균_ 사람이 하는 일 중에 가장 어려운 것은 육아가 아닐까 싶어요. 동시에 가장 보람 있는 일도 육아입니다. 저는 결혼하자마자 아이를 가졌어요. 그 아이가 돌이 되면서 학교를 그만뒀기 때문에 타이밍이 딱 맞았지요. 아이들이 어릴 때 오로지 육아에만 전념할 수 있었거든요. 입주 가정부를 구하기 쉬었던 것도 돌이켜보면 참 운이 좋았던 것 같고요. 남편을 따라 외국으로 가게 됐을 때도 우리는 가정부를 데려갈 수 있도록 배려해줘서 육체적으로는 크게 힘들지 않았어요. 물론 제가 사회활동을 다시 시작하면서 육아 문제가 큰 걸림돌이 되었지요. 그러나 그래서 더욱 그 문제를 사회적으로 심도 있게 자주 다룰 수 있었습니다.

 

김성옥 글로벌미래환경협회 회장(왼쪽)과 신낙균 이사장. 신 이사장은 "OECD 국가 중 남녀임금 격차는 우리나라가 제일 큽니다. 그래서 육아가 자꾸 걸림돌이 되는 거예요. 남자도 육아휴직을 쓸 수 있게 아무리 제도적으로 독려를 해도 그 비율이 낮은 이유가 뭘까요? 남녀 중 누군가 한 명이 육아휴직을 써야 한다면, 당연히 월급이 더 적은 사람이어야겠지요. 대부분 여성입니다. 그렇다 보니 경력단절 여성이 나오고, 여성이 고위직에 못 올라갈 뿐 아니라 심지어 출산, 결혼을 기피하는 현상까지 나오게 된 겁니다. 그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라도 남녀 임금 격차는 빨리 개선돼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김성옥_ 자녀 분들은 다 어떻게 자라셨는지 궁금합니다.

신낙균_ 다행히 다들 올곧게 자랐어요. 아이들이 어릴 때 제가 집에 있었고, 그들이 크는 것과 비례해 제 사회생활의 반경도 대학강사, 한국여성유권자연맹 회장, 국회의원, 문화관광부 장관 등으로 점점 더 넓어졌지요.


김성옥_ 자녀들이 의사, 과학자, 변호사로 번듯하게 컸는데, 자녀 교육은 어떻게 하셨나요?

신낙균_ 제가 다른 부모와 다른 게 있었다면 아이들에게 자립심을 갖게 했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까지는 상당한 보살핌이 필요했지만, 그 이후로는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자율성을 주었어요. 예를 들면 아이가 스스로 계절에 맞는 옷을 찾아 입을 수 있게 코치만 해줬어요. 일상생활에서 자립할 수 있게 자율권을 준 셈이지요. 그러다 보니 본인들이 앞으로 무엇을 하는 게 좋을지 전공 분야도 직접 정했어요. 다들 제가 보통 엄마처럼 자식 욕심으로 의대, 법대에 보낸 줄 아는데, 저는 아이들 진로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제가 교육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아이들 양육에 뒷받침이 됐을 수도 있고, 미국 생활을 하면서 보고 들은 것이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습니다.


김성옥_ 엄마로서뿐 아니라 여성으로서도 당당하게 국회의원, 문화관광부 장관 자리까지 역임하셨습니다. 그야말로 정치계의 유리천장을 깬 선두주자이십니다. 또 어떤 노력들이 그 자리에 우뚝 서게 했을까요?

신낙균_ 저는 무슨 일을 하든 다음 목표를 세우지 않았어요. 단지 어떤 역할이 제게 왔을 때 최선을 다하는 편이었지요. 한국여성유권자연맹도 스승의 권유로 찾아갔다가 그 활동에 점점 몰두하게 됐고, 거기서 최선을 다하다 보니 사회에서 인정을 받았습니다. 정치권의 부름도 받았는데요. 그때만 해도 여성들이 사회활동과 가정을 모두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경우가 흔치 않아서 외려 제게 희소가치가 있었던 것 같아요. 정치권의 영입 제의도 수차례 거절했어요. 그런데 “우리가 하는 일이 여성들의 정치의식 고취와 여성 정치참여잖아요. 그런데 왜 그 기회를 마다하느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설득에 마음을 바꿨습니다.


김성옥_ 이사장님의 인생철학도 궁금해집니다.

신낙균_ 제가 후배들에게 자주 하는 이야기인데요. 자기에게 어떤 일이 주어졌을 때 아주 완성도 높게 최선을 다하면 그 다음 길은 자연히 열립니다. 이게 제 생활 자세이고, 신념이라면 사람이 가장 존엄하다는 것입니다. 동물을 포함한 모든 생명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이었지요. 세월이 거듭되면 거듭될수록 그 가치는 점점 더 확고해져요.


김성옥_ 한국여성유권자연맹에서는 사무총장 활동을 시작으로 부회장, 회장, 고문에 이르기까지 이루신 업적이 많다고 봅니다. 특히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 제고를 위해 여성계 최초로 할당제 도입 주장 등으로 보람도 크시고 자긍심도 가지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그동안의 성과들을 말씀해주시지요.

신낙균_ 제 생애에서 한국여성유권자연맹은 결코 빼놓을 수가 없지요. 박정희 정권 때였는데 정치의식을 가진 유일한 단체였어요. 박정희 전 대통령이 3선 개헌안을 내놨을 때 최초로 반대 서명을 했었어요. 탄압이 노골적으로 심했지요. 그러다 보니 없던 정치의식, 저항 의식도 마구 샘솟더군요. 성평등 문제 전에 인간으로서 사회에서 자유, 인권이 있어야 하는데, 이걸 바꾸려면 정치밖에 없구나 하고요. 일단 제도화를 해야겠다 싶어서 한국여성유권자연맹 기본 설립 취지에 맞게 교육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었어요. 또 여성들이 사회참여를 하려면 제일 큰 문제인 육아를 해결해 줄 탁아제도 도입을 요구했고, 그러면서 정치권에 들어가기 힘든 여성들을 위해 여성 국회의원 할당제까지 주장했습니다. 각 정당을 찾아가 여성 할당제를 공약으로 약속받고, 여성 인재를 영입해달라고 설득했어요. 특히 50년 전 헌법연구위원회를 구성해 남녀평등에 관한 조항을 포함한 헌법개정시안을 작성후 국회헌법개정특별위원회에 의견서를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김성옥_ 제5대 문화관광부 장관 시절, 공직분야의 여성권한을 강화하기 위해 특별히 하신 일도 있으시지요?

신낙균_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가자마자 보다 많은 여성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서 예술의전당, 한국방송개발원 등 정부 산하 기관 4곳에 여성들을 기관장으로 발탁했어요. 여성들은 남자들과
달리 장악을 못 한다며 반발이 심했지요. 그런데 장악은 권위주의 시대 용어예요. 자기와 일하는 사람들을 왜 장악해야 하나요? 대화로 풀어야지요. 오히려 술 한 잔에 무너지는 남자들과 달리 여자들은 원칙에 강합니다. 결국 그 여성 기관장들은 그 누구보다도 일을 멋지게 해냈습니다.


김성옥_ 굉장히 파격적인 인사였지요. 그렇게 계속 여성의 지위가 향상돼 왔으나 선진국들은 여성 고위직 확대와 남녀 임금격차 완화 등 양성평등 강화, 육아지원 정책 등을 통해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도를 높이고 있는데 비해 우리나라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중 최 하위권에 머물고 있습니다. 아직도 존재하는 성차별과 유리천장, 경력단절 등이 여성의 승진을 제약하는 현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21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여성의원은 비례대표 전체의원의 60%정도까지 올랐지만 21대 총선 전체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19%에 불과해요. 이에 여성계가 지역구 여성 후보 30% 의무공천을 위한 ‘공직선거법 일부 개정안’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제안들에 대해 이사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신낙균_ 제가 한 일 중에 가장 보람된 일이 여성 할당제를 국회에서 법으로 통과시킨 건데요. 여성 할당제는 오랫동안 사회 관념상, 제도상 불이익을 받아온 여성들을 위한 최소한의 보상책이에요. 또한 여성 할당제로 여성 국회의원 비율을 일정 수준 이상 올려놓는 게 헌법 평등 정신에도 맞습니다. 절대 특권이 아니에요. 국회의원이 되는 게 왜 특권인가요? 국회의원은 국민을 대신해 사회적 책임을 지는 자리인걸요. 실제로 여성들에게 중책을 줬더니 아주 잘 해냈어요. 그럼에도 아직 여성의원 비율이 현저히 낮으니 지역구 공천에도 여성 비율을 30%로 할당하자는 것인데, 아직 현실성이 낮다면 비례대표 할당을 확대하는 것도 승산이 있다고 봅니다.


김성옥_ 최근 일·가정 양립을 위한 국가 정책들이 늘어나는 등 긍정적인 소식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실효성이 낮은 것들이 많아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앞으로 여성의 권익향상을 위해 더 필요한 일들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신낙균_ 남녀 임금격차 줄이기 문제가 남았습니다. OECD 국가 중 남녀임금 격차는 우리나라가 제일 큽니다. 그래서 육아가 자꾸 걸림돌이 되는 거예요. 남자도 육아휴직을 쓸 수 있게 아무리 제도적으로 독려를 해도 그 비율이 낮은 이유가 뭘까요? 남녀 중 누군가 한명이 육아휴직을 써야 한다면, 당연히 월급이 더 적은 사람이어야겠지요. 대부분 여성입니다. 그렇다 보니 경력단절 여성이 나오고, 여성이 고위직에 못 올라갈 뿐 아니라 심지어 출산, 결혼을 기피하는 현상까지 나오게 된 겁니다. 그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라도 남녀 임금 격차는 빨리 개선돼야 합니다.


김성옥_ 현재 여성평화외교포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에서는 어떤 역할을 하고 계시나요?

신낙균_ 평화운동을 하고 있어요. 평화하면 으레 떠오르는 전쟁, 폭력 없는 사회라는 개념은 아주 소극적인 정의예요. 지금처럼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으로 팬데믹을 일으켰는데 이로 인해 상실한 게 바로 평화이기도 합니다. 사람뿐 아니라 생태계까지 정상적으로 존재하고 있을 때 비로소 평화가 유지될 수 있는데요. 이렇게 평화의 의미와 가치를 재조명하고 여성위원의 평화 감성 제고, 한반도의 평화 프로세스에 여성의 역할 강화에 역점을 두며 사회 현안들을 풀어나갈 지혜를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 시대에 평화는 상생입니다. 평화가 있어야 우리 생명과 미래, 또 인간이 추구하는 번영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김성옥_ 팔순을 넘은 연세에도 활동 영역을 무한히 넓혀가고 계신 이사장님이 존경스럽습니다. 같은 길을 걷게 될 미래 세대들에게 해주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신낙균_ 우리 인생이 길어졌어요. 세상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그걸 감안해서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해요. 변화를 의식하면서 꾸준히 자기를 연마하는 게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습니다. 더욱이 그렇게 나만 잘되고 나만 잘살면 전혀 의미가 없다는 것도 깨닫고, 더불어 잘사는 자세로 상생해야 진정한 행복을 느끼면서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는 점도 강조하고 싶어요. 내가 남을 이겼다는 승리감은 찰나의 감정에 불과하니까요. 특히 우리 젊은이들이 자기 외모뿐 아니라 내면도 더욱 깊고 아름답게 가꾸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성옥_ 전 세계가 코로나 19를 겪고 있는 지금, 뉴노멀(New normal)이 다시 전 세계적으로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올해는 무엇보다 희망의 신축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퀸 독자들에게 덕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신낙균_ 코로나 팬데믹으로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많은 것들이 바뀌었어요. 뉴노멀이라는 말까지 생겼지요. 이제는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게 아니라 새로운 게 정상이 되는 시대예요. 아무리 코로나 백신으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잠잠해지더라도 그 이전의 삶으로는 돌아갈 수 없습니다. 뉴노멀에 적응해야만 해요. 옛말에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지요. 지금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 일이 꼭 상실과 손해, 고통만 남기는 것은 아닐 거예요. 그 안에 새로운 기회, 축복된 결과도 있을 겁니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질 테니 이럴 때일수록 내면에 더 집중하고 서로 윈윈, 공존하는 삶의 태도를 지녔으면 합니다.


김성옥 회장은…
이화여대에서 환경공학을 전공한 김성옥 회장은 한국여성유권자연맹 고문으로 17대, 18대 중앙회장을 지냈다. 지난해 여성지 Queen 창간 30주년 기념 ‘대한민국을 이끄는 여성리더 30인 ’에 선정되어 KTWL(Korea's Top 30 Woman Leaders) 초대회장으로 추대됐다. 현 사단법인 글로벌미래환경협회 회장.


[Queen 송혜란 기자] 사진 양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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