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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기자, 청와대 대변인 그리고…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의 숨은 주역 박선규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
방송 기자, 청와대 대변인 그리고…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의 숨은 주역 박선규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1.09.14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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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는 근래에 대한민국을 하나로 뭉치게 한 두드러진 성과라 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 등의 기업인들은 물론 일약 더반의 스타로 등극한 나승연 대변인과 김연아, 문대성, 토비도슨 등은 최고의 팀워크를 자랑하며 감동의 프레젠테이션을 보여줬다. 그러나 사실 그들 외에도 화려한 무대 뒤에 드러나지 않는 수많은 영웅들이 존재한다. 다름 아닌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지원 실무위원장 직을 수행한 박선규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 그런 그가 이제 다시 한 번 막중한 임무를 맡았다. 바로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한 테스크포스 팀을 이끌게 된 것. 어찌 보면 더 큰 숙제가 아닐 수 없다. 유치 확정 발표 당시 감동의 여운이 아직 남아 있는 지금, 바쁜 일정을 쪼개 만난 박 차관은 만면에 웃음을 띠며 취재진을 맞았다. 사람 좋은 웃음이었지만, 왠지 감출 수 없는 책임감과 새로운 각오가 엿보인다.
오래전 KBS 기자로 전쟁터를 누비던 특파원 시절을 거쳐 <사건 25시>, <일요진단>등의 진행을 맡으며 냉철한 카리스마를 보여주기도 했던 그. 이후 청와대 대변인으로 변신하는가 싶더니 다시 문화관광체육부 차관으로 새로운 활약상을 이어가고 있는 그의 삶에서 남다른 열정이 느껴졌다.

‘새로운 지평’을 준비하기까지
“제가 죽을 때까지 못 잊을 겁니다.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의 입에서 ‘평창’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많은 사람이 환호하며 얼싸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죠. 그런데 사실 저는 갑자기 멍해지더군요. 처음 차관 직을 맡았을 때 기자들 앞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제 직을 걸겠다고 한 적이 있거든요. 그만큼 정부가 모든 것을 던져 실현하겠다는 의미였는데 기자들이 ‘너무 겁나게 말하는 것 아니냐’고 하더군요(웃음). 사실 그 당시에는 상황이 좋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막상 유치 확정 발표가 나니 ‘아 이제 됐구나’ 생각 한편으로 ‘사표는 안 내도 되겠구나’ 싶었습니다(웃음). 지난 두 번의 실패 과정에서 고생한 분들의 공이 대단히 컸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김종민 전 장관은 물론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 또 열심히 노력하시고 성공의 무대에는 서지 못했던 유인촌 전 장관 같은 분들의 공이 간과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정병국 장관을 비롯해 이번 프레젠테이션에 나섰던 모든 사람, 물밑에서 노력한 사람들의 공 역시 적다고 이야기 못하죠. 그러나 국민이 보내주신 열정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우리는 이미 우리가 한 것 이상의 영광과 박수를 다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간의 과정을 돌이켜보면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유치를 위한 마음은 모두 같았지만 조직 내부에 크고 작은 갈등이 존재했고 그로 인해 원활한 정보교환과 협조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그가 처음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의 소임을 맡고 시작한 일은 그러한 갈등을 조정하고 전체 팀워크를 새롭게 다져나가는 것이었다. 천편일률적이었던 IOC 위원들의 공략법(?)도 맞춤전략으로 궤도 수정을 했다. 그때까지 단순히 ‘평창이 올림픽을 유치할 수 있도록 힘써 달라’는 정도에 그쳤다면 위원 개개인의 취미와 출신 학교, 심지어는 가족관계까지 파악해 감성적이고 체감할 수 있는 접근법을 구사한 것. 왠지 어려운 취재 대상을 섭외하는 방식과 유사한 것을 보면 과거 노련한 기자 출신이었던 그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각각의 IOC 위원에게 가장 접근하기 쉬운 사람을 마크맨으로 정해 전담하도록 했어요. 한 40명가량이 그런 식으로 위원들을 만나고 이후에는 반드시 제게 보고를 하도록 했어요. 일종의 특이사항 수집인 셈이죠(웃음). 그래서 그 다음에 만날 때는 평창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하기보다 위원의 개인적인 근황에 대해 물어보며 친근감을 표시하죠. 대화의 수준이 달라지는 것은 물론입니다.”
전 세계 IOC 위원들로부터 극찬을 받은 지난 더반의 프레젠테이션 또한 그 뒤에는 알려지지 않은 에피소드가 존재한다. 최종 리허설을 보고 한국의 예술계를 대표해 함께한 정명훈 지휘자가 혹평을 쏟아놓은 것. 박 차관의 표현을 빌리자면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쉴 정도’였다고 하니 결전을 앞두고 있는 대표단으로서는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명훈 씨는 ‘자신은 디테일한 부분에서 완벽을 주는데 익숙한 사람인데 문제점이 많이 보인다’며 실망감을 털어놨는데, 공교롭게도 대통령 앞에서까지 그런 말씀을 하시더군요(웃음). 실무자로서 굉장히 난감하기도 했고…, 사실 저도 리허설을 보며 좀 걱정이 되더군요.”
그러나 프레젠테이션에 나선 이들의 진가는 다음날 실전에서 유감없이 발휘됐다. 제일 먼저 조양호 유치위원장의 농담 섞인 인사말이 좌중을 사로잡았고, 이어진 나승연 대변인, 김연아, 문대성, 김진선 대사, 박용성 위원장, 토비도슨까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모습들을 보여줬다. IOC 위원에게는 감동을, 지켜보는 박 차관을 비롯한 대표단에게는 전율을 느끼게 하는 순간이었다.
“특히 토비도슨은 전날까지 원고를 읽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는데,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죠. 알고 보니 대표단의 일원으로 간 배우 정준호 씨가 원 포인트 레슨을 했다고 하더군요. 물론 정준호 씨가 코치를 했다고 단번에 달라진 것은 아니겠죠. 정말 열심히 연습하던 모습이 선합니다. 어떤 조건도 없이 우리의 요청에 응해 오히려 영광이라며 참여했던 토비도슨의 인상과 기억은 아직도 또렷해요. 토비도슨의 프레젠테이션이 진행될 때는 IOC 위원들이 자세를 바꿔 앉더군요. 모두 정말이지 누가 보더라도 어제와는 다른 팀이었어요. 프레젠테이션 끝나자 IOC 위원들은 이구동성으로 최고였다며 악수를 청했습니다. 정명훈 씨조차도 ‘어제 잘못 이야기한 것 같다’며 섣부른 판단이었다고 하더군요(웃음).”
그간의 유치 과정을 돌아보며 박 차관은 “총성 없는 전쟁이라고 하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전쟁”이라고 평가했다. 최근의 국제 스포츠 행사는 단순하지 않다는 것. 각국은 정치와 경제, 외교는 물론 사회, 문화, 군사까지 연결되는 총체적인 역량을 동원해 경쟁을 펼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그러한 스포츠 외교전에서 활약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을 키우지 못했다는 핸디캡이 존재한다. 비록 각고의 노력 끝에 유치에서는 성공을 했지만 오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을 위해서는 아직 갖춰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다양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평창 동계올림픽의 슬로건 ‘새로운 지평(New Horizons)’를 실현시키는 것이다.
“이제는 유치를 하기 위해 IOC와 약속했던 것들을 이뤄나가며 새로운 성공 신화를 써야 합니다. 북미와 유럽을 중심으로 진행되던 동계스포츠 시장의 영역을 확산시키는 데 선봉적인 역할을 하는 것. 그리고 올림픽 정신으로 대한민국의 통합과 성숙을 꾀해서 명실상부한 세계 중심 국가가 되어야 하는 것은 더 중요한 목표죠.”
 
어린 시절 & 종군기자로서의 기억들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 직을 수행하기까지 그의 이력은 화려하다고 할 정도로 다양한 도전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그 화려함 이면에는 힘겨웠던 유년기가 존재한다. 어린 시절 모친은 서른 한 살의 젊은 나이에 남편을 여의고 다섯 살인 박 차관과 한 살 위의 누이, 세 살, 갓 백일인 두 동생까지 모두 아이 넷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왔다. 가진 것이라고는 고향에서 지고 온 고구마 두 가마니가 전부였다. 비록 가난했지만 그는 어린 시절부터 남달리 리더십이 강했던 터라 친구들 사이에서는 꽤 인기가 있었다. 그 덕분에 반장이 되기도 했지만 상처를 받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투표로 반장이 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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