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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실 전 아산병원 교수 '웰다잉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
유은실 전 아산병원 교수 '웰다잉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
  • 김은정 기자
  • 승인 2021.05.23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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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마지막을 존엄하게’
유은실 전 아산병원 교수 '웰다잉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

 


누구에게나 죽음은 현실이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생각만 하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는다. 삶의 마지막 종착역인 죽음에 다다랐을 때 우리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우리 사회에 ‘죽음’이라는 화두를 던진 유은실 교수(전 아산병원 병리학과 교수)로부터 존엄한 죽음에 대해 들어 보았다.

유은실 교수는 병리과 의사이자 교수로 30여년 의술에 몸담아 오다 지난해 퇴직해 ‘북성재’라는 서촌의 아담한 한옥에서 출판과 강의로 은퇴 후 삶을 보내고 있다.

현직에 있을 때부터 <생이 끝나갈 때 준비해야 할 것들>, <우아한 노년> 등 죽음에 관한 책을 번역, 출간했으며 <의사들 죽음을 말하다>라는 책을 공동 집필하기도 했다. 최근엔 <삶을 선택할 것인가, 죽음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책을 번역, 출간해 죽음을 주제로 우리 사회에 끝없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다


유 교수가 죽음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어린 시절 장례식에 갔다 온 어른들의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되면서부터였다.

“밤에 잠도 안 자고 어른들의 이야기를 몰래 듣다가 제가 아주 무서웠는지 깜빡 정신을 잃은 적이 있었어요. 그때부터 죽는다는 것은 굉장히 무섭구나 하고 막연히 두려움을 가지게 됐는데 의대에 가서 부검을 하는 병리과 의사가 되고 보니 죽음을 무덤덤하게 생각하는 생활을 하게 됐죠. 그런데 어느 날 ‘나는 왜 여기 와 살고 있지?’ ‘죽은 다음에는 어떻게 되지?’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좀 알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공부하는 차원에서 같은 의문을 가진 사람들과 모임도 하면서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혹자는 그럴 것이다. 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왜 죽음을 생각 하냐고. 하지만 죽음은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현실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생각하면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돌아 보게
된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생각을 깊이 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죽음도 삶의 일부이고 누구나 겪게 되는 일인데 사람들은 왜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죽음을 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죠. 예를 들어 결혼이 두렵기도 하지만 결혼한 사람들로부터 경험을 들을 수가 있잖아요. 그런데 죽음은 누구에게도 경험담을 들어볼 수가 없죠. 그리고
죽음 전 단계에 죽어가는 과정이 대개 고통이 있잖아요, 그래서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


죽음학 관련 강의 개설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없애고 존엄한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기 위해 유 교수는 대학에서 죽음학 관련 강의를 정식으로 개설했다. 2014년 울산대에서 특강을 시작으로 2019년부터 울산대 의과대학에서 대학원 과정에 공통선택과목으로 ‘의료인의 삶과 죽음 이해’라는 과목을 개설한데 이어 2021년부터는 학부과정인 ‘예과’와 ‘본과’ 과정에도 ‘죽음학’ 관련 과목을 운영하게 됐다. 아울러 울산대 교양학부에도 ‘우리는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아야할까’라는 과목을 개설해 강의하고 있다.

“처음엔 특강 형태로 시작했는데 부모님을 모시고 와서 듣는 학생도 있고 교직원들도 와서 듣고 반응이 좋았어요. 반면에 교양학부 학생들과 달리 의대생들은 사람을 잘 살리는 공부를 하려고 의대에 왔는데 갑자기 죽음을 이야기하니까 당황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그런데 의사가 되고 실제로 현직에서 한 달에 몇 명씩 사망 선고를 내리다 보니 그게 너무 스트레스고 또 나또한 저렇게 죽을 수 있는데 하는 생각에 죽음에 대한 시각이 많이 달라진다고들 해요. 그래서 그런 시기에 맞춰서 필요한 이야기를 해주는 수업이 의과대학에 꼭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유교수는 울산대 의대뿐만 아니라 전국 의과대학 커리큘럼에 죽음학 강의를 편성할 수 있도록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아울러 고등학교 때부터 윤리나 사회 과목에 죽음 관련 수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일선 고등학교 교사들과 지혜를 모아 나간다는 구상이다.


삶을 선택할 것인가 죽음을 선택할 것인가


유 교수는 최근 전 세계적으로 안락사 혹은 조력 죽음에 대한 문제가 논의되고 있는 시점에 이러한 문제를 객관적으로 서술한 <삶을 선택할 것인가, 죽음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책을 번역 출간했다. 이 책에는 거북하고 불편한 난제이지만 피할 수 없는 조력 죽음과 완화 의료에 대한 용어 정의와 쟁점은 무엇인지를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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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지난 40여년간 스위스와 미국 등에서 안락사가 어떻게 법제화되었는지의 내용들이 팩트 중심으로 잘 설명되어 있다. 그리고 의료적인 면 이외에 윤리적으로 고려할 사항과 몇몇 나라에서 조력사가 합법화되면서 생긴 우려할 사항을 제시하고 좋은 죽음이란 어떤 것인지 이야기하며 끝맺는다. 조력죽음에 대한 세계적인 추세를 객관적으로 소개함에도 불구하고 혹자들은 조력 죽음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편견의 시선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도 간혹 안락사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는데 항상 종교계와 언론 등에서 안락사, 존엄사, 조력죽음 등 용어의 정의에서부터 관련된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정확한 사실 파악과 깊은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찬반을 논하는 논쟁으로 끝나버리곤 했죠. 이런 점을 지양하기 위해서 사실을 객관적으로 좀 알자는 취지에서 이 책을 번역하고 출간했거든요. 그런데 역시 이 책을 끝까지 자세히 읽어 보지도 않고 무조건 우리 사회에서 안락사 문제를 이야기하는 건 시기상조다 하며 불편해하는 분들이 있더군요.”


이 책은 ‘안락사’라는 단어만 거론되어도 불편해하고 금기시하는 사회분위기에 고통을 받는 환자의 자기 결정권 존중을 어느 범주에까지 허용되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냉정하게 생각해보게 한다.


담담히 맞이하는 죽음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
 

유은실 전 아산병원 교수 ‘생의 마지막을 존엄하게’

 


생의 마지막 순간을 아무 준비도 없이 갑자기 맞닥뜨려 삶을 공허하게 마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땐 가족들의 허망함과 혼란도 크다. 그렇다면 죽음을 담담히 맞이하기 위해 어떤 준비가 필요
할까?

“첫번째는 마음가짐이 중요해요. 누구에게나 죽음은 생각하기 싫은 주제이지만 아무리 싫어도 모두가 맞닥뜨리게 되는 문제이니 일단 죽음을 좀 생각해보자 하는 마음이 필요해요. 두 번째는
혼자서는 어려우니 비슷한 필요를 느끼는 사람들의 모임에 참여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죽음의 문제와 관련된 책을 읽으며 간접경험을 하고 이야기도 나누다 보면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전보다 훨씬 편안해질 겁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구체적인 실천으로 가족들하고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에 관한 얘기를 해보는 거예요.”

대부분 사람들이 가족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꺼려하고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른다. 아무래도 가족들 중 연장자가 먼저 가족들에게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좋다.
“우리나라가 급속도로 고령화되고 있지요. 그래서 어느 가정이나 생의 마지막이 그리 멀지 않은 노인 분들이 계실 거예요. 그런 분들을 보며 내가 저 나이가 됐을 때 준비가 안 되어 있으면 곤란한 것들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최근엔 관련법들도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준비할 것이 있다면 미리 준비하는 것도 필요한데, 대표적으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유언장 같은 것을 미리 작성해놓아야 할지 고민도 해야 하고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향후 임종을 앞둔 환자가 되었을 때를 대비해 연명의료 및 호스피스에 관한 의향을 미리 문서로 작성해두는 것으로 우리나라에는 2016년부터 법제화되어 있다. 만 19세 이상이라면 신청 가능하며 비영리법인 또는 비영리단체 및 법에 정한 공공기관에 등록해야 효력이 발생한다. 최근에는 가족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미리 작성해 두는 부모들이 많다고 한다.

“이런 것들을 작성하다보면 점점 구체적으로 준비해야 할 것들이 생기는데 정말 마지막으로 준비해야 할 때가 다가오면 다양한 문제를 의논할 주치의를 잘 만나는 것이 중요하구요. 담당의사와 연명의료에 관해서도 미리 의논을 해두는 것도 필요합니다.”


삶과 죽음은 분리할 수 없는 것


유은실 교수는 죽음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내렸다.

“죽음은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느냐를 보여주는 마지막 성적표 혹은 졸업장 같은 거예요. 그래서 삶과 죽음은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답니다.“

유 교수는 특히 퀸의 주 독자층인 여성들에게 당부를 더했다.

“지금 한창 직장에선 승진도 해야 하고 가정 일로도 머리가 꽉 차 있겠지만 정말 여성들이라면 더욱 이런 문제를 깊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지금부터 죽음을 생각해보고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셔야 해요. 그렇게 죽음을 생각하고 공부하면 현재의 삶이 보다 투명하게 보이고 견디기 어려운 스트레스를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줄 아는 지혜가 생기게 되지요. 그렇게 되면 부모님, 자녀, 남편, 직장 동료들의 삶에도 영향을 끼쳐서 지금 살면서 겪고 있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거꾸로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언택트 강의로 하고 있지만 그동안 유 교수는 북성재에서 존엄한 죽음에 대한 강의와 독서모임을 꾸준히 해왔다. 그런데 참여한 사람 중 90%가 여성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임종을 지키는 사람이 딸, 며느리, 아들 순으로 대부분 여성들입니다. 그래서 죽음을 앞둔 부모의 고통을 보며 힘들고 고민도 많겠지만 이런 강의와 독서 모임을 통해 삶과 죽음의 근본에 대해 생각을 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실제로 유 교수의 강의를 들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죽음을 생각하다보면 오늘 삶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잘 지낸 하루가 편안한 잠을 안겨주듯 잘 보낸 삶은 편안한 죽음으로 연결된다’는 말이 있다. 웰 다잉이 곧 웰빙이 되는 것이다. 생의 마지막 순간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생각하면 살아 있는 동안 내게 주어진 하루하루의 삶이 더 소중해지지 않겠는가.


[Queen 김은정 기자] 사진 양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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