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4 00:10 (수)
 실시간뉴스
열정적으로 살다간 여배우 고 장진영 2주기 남편 김영균 씨가 전하는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
열정적으로 살다간 여배우 고 장진영 2주기 남편 김영균 씨가 전하는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1.10.12 15: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올봄 전주에서 ‘장진영 기념관’이 완공된 이후로 한동안 소식을 들을 수 없었던 김영균 씨. 그녀의 2주기가 지난 며칠 뒤 그를 만날 수 있었다. 하늘이 유달리 푸르던 가을 날 오후, 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그의 집을 찾았다. 거실 곳곳에는 환하게 웃고 있는 장진영의 모습이 액자에 담긴 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영화배우로 사랑받은 장진영의 남편이자 그녀의 마지막을 지킨 남자. 모든 것이 평화로워 보이는 그의 얼굴 뒤로는 그녀에 대한 여전한 그리움이 묻어났다.

그녀를 떠나보내고 2년이 지난 요즘…
“2주기 때 전북 임실에 있는 장진영 기념관에서 진영이 부모님과 그녀의 친구들, 같이 일했던 스태프들, 팬클럽 회장들과 모여서 추억의 시간을 가졌어요. 저녁때는 김하인 작가의 소설을 연극으로 옮긴  〈국화꽃 향기〉의 초연에 초대받아 지인들과 공연을 보고 왔고요.”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낸 하루.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것들이 잊혀진다지만 배우 장진영은 사람들의 머리가 아닌 가슴 속에 남아 지금도 함께하고 있었다.
“일상에서 매 순간 생각나지만 한편으로는 저도 사람인지라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잊혀 진다는 걸 느낄 때가 있어요. 안타까운 건 그녀와 즐겁게 보낸 시간은 기억 속에서 지워져 가는데 병원에서 아파하던 모습이 자꾸 되살아나요. 아마도 그때가 가장 힘들고 가슴 아팠던 시기라서 더 그렇겠죠.”
그녀 생각에 마음이 울적할 때면 분당에 있는 추모관으로 향한다. 그곳에 그녀의 손길이 닿아있는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마음을 달래기도 하고 옛 생각에 젖기도 한다.
“지난 결혼기념일에도 꽃다발 사들고 다녀왔어요. 그곳에 가면 마음속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오죠. 되도록 슬프거나 약한 모습은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위암 4기임에도 단 한 번도 병에 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장진영. 그녀의 담담했던 모습을 떠올리면 지금도 하늘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굳건하게 자리를 지켜야겠다고 마음을 되새긴다.
“진영이는 그저 열심히 치료하고 몸 관리를 잘하면 금방 나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어요. 저는 그녀를 잃을까봐 불안해하고 마음 아파하며 눈물 흘렸는데 말이죠. 인터넷을 보더라도 자신이 얼마나 심각한 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았을 텐데 오히려 저에게 걱정 말라며 위로해줬죠. 그런 모습을 보면서 참 대단한 여자라고 느낄 때가 많았어요.”

모든 것에 감사하며 의연했던 모습을 추억하며
투병 당시 장진영은 한 인터뷰에서 “힘들거나 외롭다거나 아프다는 내색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에게는 ‘영균 씨 내가 아파보니까 세상 모든 게 소중하게 보여요. 하나같이 아름답게 보여요. 하늘, 바람, 구름, 나무 그리고 당신…. 아! 따뜻한 커피 한 잔 생각난다’라고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평소에 느낌 없이 그냥 지나쳤던 것들이 몸이 아프고 난 뒤에는 다르게 보였나 봐요. 그러면서 마음이 따뜻해진 것 같아요. 사소한 것에도 고마워하면서 온화해졌죠. 그런 모습을 보고 웃으면서 그냥 딱 이 상태로 계속 갔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진영이가 눈을 흘기더라고요(웃음). 그녀는 정말 세상 모든 것이 살아있음에 감사했어요. 그러면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 것 같다고. 다 나으면 꼭 행복하게 살겠다고 다짐하던 모습이 기억나네요.”
육체적인 고통을 늘 긍정적인 생각으로 견뎌냈던 그녀도 배우로서의 자존감과 여자로서의 자존심을 잃게 되는 것에 있어서는 몹시 힘들어했다. 늘 에너지 넘치는 밝은 모습으로 살아왔기에 스스로도 인정하고 용납하기 어려웠으리라.
“의료진들이 치료를 위해 진영이를 들여다보고 몸을 만지게 되는 일이 다반사였죠. 더군다나 어떤 분은 동정심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는데 진영이는 그런 시선들을 못 견뎌 했어요. 특히 환자복을 입고 있는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는지 병원에 입원하는 것에 거부 반응을 보이기도 했죠. 건강미 넘치는 여배우였는데 생판 모르는 사람들에게 초췌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자존심 상했을 거예요. 병원에서도 틈만 나면 집에 가자고 했을 정도니까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최근 종영한 한 드라마가 떠올랐다.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여자와 남자.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서로를 위해 이별을 택했지만 결국 함께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임을 깨닫고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에 최선을 다하는 드라마 속 이야기가 그들의 사랑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혹 드라마를 본 적 있는지 물으니 그동안 듣지 못했던 이야기를 그가 꺼낸다.
“드라마는 사랑하는 사람이 병으로 아파하는 내용이라 일부러 안 봤어요. 마음 아프잖아요. 처음에 내용을 얼핏 듣고도 그녀 생각이 날 수 밖에 없었죠. 진영이도 병을 알게 된 후 진지하게 저에게 자신을 떠나도 된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첫 번째 항암치료를 받던 병실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당시 그는 그녀의 병을 알게 된 후 너무나 괴로워하며 의사에게 병세가 심해 오래 살지 못할 것이란 말을 들었다. 하지만 그 말을 차마 전할 수 없어 며칠 동안 끙끙 앓고 있던 터였다.
“할 말이 있는데 하지 못하고 고민하는 모습이 이별을 갈등하는 것처럼 보였나 봐요. 진영이가 갑자기 저에게 자기를 떠나도 된다고 말하더라고요. 저는 펄쩍 뛰면서 ‘어떻게든 병을 이겨 틀림없이 내 여자로 만들 테니 두고 봐라. 아니 내 여자가 될지는 네가 선택하겠지만 적어도 다 나을 때까지는 절대 떠나지 않을 거다’라고 말했죠. 그러고 나니 더 이상 이별을 얘기하지 않더라고요. 그러면서 자기도 기필코 병을 이기겠다고 말했죠.”
병세가 지속되자 여러 사람이 그녀에게 다양한 치료법을 소개했다. 그녀는 김영균 씨가 걱정할까봐 미국으로 치료를 받으러 간다고 말하고 멕시코로 떠났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검증받지 않은 방사선 치료를 받고 급격하게 상태가 악화됐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그는 멕시코로 날아가, 장진영과 함께 미국 라스베이거스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두 사람만의 결혼식을 올렸다. 이미 이별이 예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서로 알고 있었지만 김영균 씨는 그녀에게 영원을 약속하는 결혼을 선물하고 싶었다. 떠난 순간 그녀가 외롭지 않기를 바랐고, 장진영의 ‘연인’이 아니라 장진영의 ‘남편’이 되어야 오래도록 그녀를 기념하는 모든 것을 챙겨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2009년 7월 그들은 그렇게 라스베이거스에서 아주 소박한 결혼식을 치렀다.
“정말 그때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나를 이끄는 기분이었다고 할까요. 당시 진영이의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이 아니면 다신 면사포를 씌워줄 수 없을 것 같았어요. 기적이 생겨 병이 낫는다면 한국에서 부모님 모시고 다시 할 수 있으니깐 일단 저지르자는 생각이었죠. 시한부 인생이지만 그래도 여자로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모두 느끼게 해주고 싶었어요. 결국 함께했던 마지막 이벤트가 되고 말았지만 그날만큼은 저와 진영이 모두 무척 행복했던 하루였죠. 가끔 부부로 한두 해 정도라도 살아봤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해요. 우리 사이에 그녀를 닮은 예쁜 딸이라도 있었으면 지금의 외로움이 덜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죠.”

모두의 머릿속에 아름다운 여배우로 기억되었으면
어느덧 2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김영균 씨는 일상 속에서 그녀를 여전히 느끼곤 한다. 그녀가 좋아하던 음식, 자주 가던 커피숍, 극장을 갈 때도 그리움은 항상 떠오른다. 길을 걷다가도 연인끼리 다정스럽게 지나가는 모습을 보게 되면 ‘아, 나도 저랬을 때가 있었지’ 하는 생각에 잠긴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