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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독립투쟁, 하와이언의 절규
잊혀진 독립투쟁, 하와이언의 절규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1.10.12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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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독립투쟁을 벌이고 있는 하와이 원주민
미국 50번째 주가 된 하와이에서 아직도 원주민들이 주권독립 투쟁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세계에서 가장 힘이 강력한 나라인 미국에 맞서는 외로운 투쟁은 1893년 하와이 왕조가 미국계 백인 쿠데타 세력에게 무너진 이후 이어져왔다. 원주민들이 신이 산다고 믿었을 만큼 아름다운 호놀룰루 와이키키 해변에서 만난 백인 여성도 문화와 삶을 뿌리째 거세당한 원주민들의 슬픈 역사는 금시초문이라고 했다. 먼저 선교사들이 하와이에 들어왔고 뒤이어 많은 미국인들이 차례로 들어온 사실만 알고 있을 뿐 군사력을 동원한 강제병합에 대해서는 모른다는 것이다.

#2  역사 뒤에 가려진 불법적인 강제 병합
하와이의 마지막 여왕 릴리우호칼라니는 우리에게 친숙한 <진주 조개잡이> 노래를 작사한 주인공이다. 그녀는 1891년 권좌에 오르자마자 사탕수수 이권 등을 챙기면서 침탈을 노골화하는 외세에 맞서 주권수호 정책을 편다. 미국계 백인 기업가들은 여왕의 정책에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미 해병대를 끌어들여 급기야 쿠데타를 저지른다. 당시 클리블랜드 미국 대통령도 왕권전복이 불법이라고 결론지었지만 유야무야되고 5년 뒤 강제로 병합된다. 스페인과 전쟁을 치르고 필리핀에 진격한 미국은 진주만 같은 요충지가 시급했다. 원주민 반란이 진압당한 뒤 여왕은 왕궁에 갇혀서 일생을 마감한다.

#3  ‘원주민 자치’ 독립 마을에 가다
호놀룰루 동북쪽 40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원주민들이 성지로 여기는 작은 마을이 있다. 입구에 ‘주권독립’이라고 쓴 현수막이 걸려 있고 건물마다 하와이 주기(旗)가 거꾸로 매달려 있다. 여기에는 나라를 빼앗아간 미국 정부를 향한 저항의 메시지가 담겨져 있다. 마을을 탄생시킨 범피 카나힐리(54)는 왕족의 후손이다. 원주민들이 백인과 동양계에 내몰리는 비참한 상황을 지켜보던 그는 1990년부터 급진적인 독립운동에 투신한다. 마카추 해변에 임시가옥을 짓고 원주민 자치국가 수립을 요구하는 투쟁을 벌인 지 1년 3개월…. 고난의 투쟁에 원주민 390명이 가세했다. 주동자였던 그는 여섯 달 넘게 옥살이를 했다. 고난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하와이 정부는 그를 석방하면서 45에이커의 땅을 떼어주고 자치를 허락했다. 모기와 싸우며 도로를 내고 집을 짓고 원시림이 뒤덮었던 땅은 7년 만에 원주민에 의한 원주민을 위한 원주민의 독립 마을로 거듭났다. 100여 명이 살고 있는 이 공동체는 주권운동을 펴는 사람들의 영적센터다. 카나힐리는 독립마을을 하와이 섬 곳곳으로 확대시키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코코아와 커피농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앞으로 80개의 풍력발전소를 세워 친환경적이면서 자급자족이 가능한 마을로 키워나갈 생각이다. 양심적인 백인들도 힘을 보탰다. 재정책임자인 존 커클리는 원주민은 아니지만 독립국가 건설을 지지하는 동지다. 부동산 중개사로 일하다가 원주민들이 땅의 소유권과 관련해 부당한 대우를 받아온 사실을 깨닫고 운명적으로 합류했다.

#4 왕정복원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
서양의 문명을 재빨리 흡수해 하와이 섬의 패권을 장악하고 최초로 통일 왕국을 수립한 카메하메하 대왕은 원주민들에게 절대적 존경을 받고 있다. 12년 전 카메하메하를 뿌리로 한 하와이 왕정복원위원회도 탄생했다. 행정, 입법, 사법부의 골격을 갖추고 의원을 뽑고 하와이 왕국 헌법을 개정한 뒤 수상도 선출했다. 수상인 헨리 노아는 복원된 정부가 입헌군주제지만 민주적 기능을 담았고 국제법상 주권을 완벽하게 갖췄다고 주장한다. 독립을 전 세계 만방에 널리 알리기 위해 각료들을 국제회의에 파견했다. 일제 36년 동안 우리나라의 독립 운동가들이 상해와 만주, 유럽, 미주 등지로 떠나 감내했던 풍찬노숙이 떠오른다.

#5  강제병합 100년, 본연의 모습을 세워나가다
하와이를 강제로 병합한 미국은 훌라춤이 음란하다며 금지시켰고 말과 문화를 말살하려고 시도했다. 대다수 원주민들은 미국에 순화되는 쉬운 길을 따라갔다. 말이 희미해지면서 원주민 문화는 문화센터에서 외형만 연명하는 처지가 됐다. 사라지는가 했던 주권과 독립의 열망은 강제병합 100주년이 되던 1993년 용암처럼 솟구쳤다. 30여 개가 넘는 이질적인 독립운동 단체들이 한 몸이 됐다. 원주민 출신 주지사는 성조기를 끌어내리고 하와이 왕국 국기를 게양했다. 원주민들은 하와이주 영토의 절반인 300만 에이커가 하와이 왕국 소유이거나 원주민들의 땅이라며 반환을 요구했다. 조상의 땅을 꼭 되찾겠다는 원주민들의 목소리가 커지자 미국 정부는 당황한다. 그해 의회는 왕국 해체를 사과하는 결의안을 채택했고 빌 클린턴 대통령은 서명했다.

#6  원주민 자치법안 통과된다면…
미국은 원주민들에게 과거 인디언들에게 부여한 자치권을 주기로 하고 협상을 시작했다. 우여곡절 끝에 자치법안이 지난달 하원을 통과했고 상원만 남아 있다. 그런데 독립운동 단체들이 불신하는 단체가 협상을 주도하게 되면서 원주민들이 원하는 만큼의 땅을 되돌려 받을 수 있을지가 미지수다. 하와이언 사무처는 원주민의 실질적 복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땅 되찾기’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미국인들도 원주민에게 땅을 되돌려주는 일에 거부감을 나타낸다. 땅을 얻고 자치권을 받더라도 하와이언들 앞에는 가시밭길이 놓여 있다. 고유의 언어에 바탕을 둔 문화적 생태계가 사실상 말라죽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아메리카 인디언식 자치모델의 한계를 극복하고 사랑과 관용, 여유의 ‘알로하 정신’에 걸맞는 독립 국가를 세워주기를 갈망한다. 

 


호놀룰루 와이키키 해변이 내려다보이는
주립공원 정상에서.
1 하와이언 독립마을 대표이자 급진독립운동가인 범피 카나힐리와 함께.
2  폴리네시안문화센터에서 찍은 원주민 조각품.  3 하와이언 독립투쟁이 펼쳐졌던 아름다운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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