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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사랑하는 프리마돈나 소프라노 이춘혜와 관악산을 오르다
산을 사랑하는 프리마돈나 소프라노 이춘혜와 관악산을 오르다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1.10.12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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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에 쏟는 시간이 많지만,
산에서 받는 음악적 영감이 더 많다

 

리릭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의 한 파트를 나타내는 이 생경한 단어는 이춘혜 앞에 늘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서정적이면서도 기교적인 목소리를 설명하는 말로, 그녀는 국내 정상급 소프라노 가수이자 가톨릭대학교 성악과 교수다. 그동안 음반 발매와 여러 차례의 독창회를 열었던 그녀는 등산학교 두 곳을 졸업한 욕심 많은 ‘초보 산꾼’이기도 하다. 그녀와 만나는 날은 햇살이 좋고 바람도 제법 선선한 전형적인 가을 날씨였다. 이런 날 등산하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게다가 동반자가 유쾌한 에너지를 내뿜는 사람이라면 그 산행의 즐거움이야 두말할 필요가 없다. 산을 오르며 그녀가 했던 말들은 마치 노래처럼 귓가를 은은하게 맴돌았다.

에베레스트, 엘부르즈, 몽블랑… 산에 빠진 디바
“이번 산행에 암벽을 타 보는 건 어떨까요?”
인터뷰 전날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이번 칼럼을 진행하면서 몇 명의 인터뷰이를 만나왔지만, 그녀만큼 산행에 적극적인 이는 없었다. 하지만 기자의 체력과 기술이 암벽등반을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기에, 가벼운 등산을 하자고 했다. 장소는 그녀의 모교 부근에 있는 관악산으로 정했다. 약속 당일 그녀는 6개월 전에 분양받았다는 강아지 아루를 데리고 나타났다.
“양을 모는 셰틀랜드 쉽독(Shetland Sheepdog) 품종이라 그런지 활동적이에요. 얼마 전에 아루를 데리고 등산을 했는데 아루도 좋아하고 저도 좋더라고요.”
천진하게 웃으면서 말하는 모습이 소녀 같았다. 캐주얼한 차림에 등산 배낭을 둘러맨 차림이 그런 느낌을 더했다. 그녀가 자주 다닌다는 등산로를 따라 산행을 시작했다. “어렸을 때는 산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는데, 건강을 위해 동네 주변의 낮은 산들을 오르기 시작하면서 점점 산에 빠지게 됐어요. 처음에는 하루만 산에 다녀와도 일주일동안 수업을 진행하는데 무리가 있었지만, 꾸준히 다니다보니 체력이 좋아지는 것을 몸으로 느끼게 되더라고요.”
사실 그녀의 등산 이력을 보면 프로 산악인 못지않다. 엘부르즈, 에베레스트, 로키, 몽블랑, 돌로미티, 안나푸르나 등 세계의 유명한 산 중에 안 가본 산이 드물 정도다.
“2001년 백두산에 갔었어요. 준 프로인 분들과 함께 갔는데, 백두산을 오르면서 ‘내 체력이 많이 부족하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산을 20~30년 타는 분들의 내공을 보니까 대단하더라고요. 그때 그 일을 계기로 제대로 산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점점 고산(高山)에 대한 동경을 하게 됐죠. 그래서 2005년에 방학을 이용해 러시아에 있는 엘부르즈에 도전했어요.”
산에 오르려 운동도 열심히 했지만, 높은 고도에 올라갈수록 숨을 쉬는 것 조차 어려웠다. 그녀는 “3천m 고도에 들어선 뒤부터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쉽지 않은 산행이었지만, 산에 대한 끌림은 더해졌다. 당시 그곳엔 최홍건 산악회 회장(당시 산악연수원장) 등 한국산악회 산악연수원에서 온 일행들이 있었고, 이들과의 인연은 그녀가 후일 여러 산악인들과 만나게 되는 계기가 됐다.
“산악회 분들을 통해 엄홍길, 박영석, 오은선 대장들과 인연이 닿았어요. 특히 박영석 대장님과는 안나푸르나 갈 때 12일 정도 일정을 함께 하기도 했죠.”

빛나는 목소리, 자연을 담은 연주를 하다
2007년, 그녀는 또 다시 높은 산을 찾았다. 한국산악회에서 꾸린 실버원정대 격려차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산상음악회를 준비한 것이다. 첫 히말라야 행은 쉽지 않았다. 천신만고 끝에 베이스캠프에 도착해 준비했던 음악회를 하려고 했지만, 마침 등반 중 목숨을 잃은 세르파의 노제를 치르고 있어 아쉽게도 애국가 한곡만 부르는 것으로 공연을 마쳐야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감격은 있었다. 세계 최고봉의 모습이 두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인간이 만든 것이 아무리 뛰어나도 자연을 능가하지는 못해요. 산을 다니면서 그런 생각이 새삼 들더라고요. 히말라야를 본 뒤 산에 더 빠져들게 됐어요. 그래서 한국에 돌아온 후에 등산학교에 들어가게 됐죠. 산을 제대로 알고 올라야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편하다는 것을 짧은 산행경험에서 깨달은 거죠. 그래서 2008년 정승권 등산학교 암벽반에 들어가 암벽등반기술을 배웠고, 2009년에는 한국등산학교 정규반을 수료했어요.”
등산을 하면서 무엇보다 노래가 더 잘된다고 말하는 그녀. 등산을 하면 비탈길에 올라가면서 자연스럽게 심호흡과 복식호흡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노래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또한 공연을 할 때 체력소모가 심한데, 등산을 하니 공연의 피로감도 덜 느끼게 됐다. 그녀는 “몇 년간 산에 다니면서 외모뿐 아니라 목소리도 젊어졌다는 소리를 많이 듣게 됐다”며 “산을 다니고 나서부터 삶과 음악이 더욱 풍요로워졌다”고 했다.
“산에서 음악적 영감도 많이 받게 되요. 그래서 음악을 통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2007년에는 ‘사랑과 자연’이라는 주제로 독창회를 하기도 했어요. 산이나 꽃, 그리고 사랑에 대한 노래를 했죠. 공연 당시 거대한 에베레스트 사진 앞에서 노래를 했어요(웃음). 등산에 쏟는 시간이 많지만 그만큼 산에서 에너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해요. 산을 접한 것이 음악을 하는 데에도 엄청난 재산이 됐다고 생각해요.”
중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날씬한 몸매에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얼굴. 그녀의 말대로 등산이야말로 그녀의 젊음의 비결일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다음에는 고도 6천m 이상의 산에 도전해보고 싶고, 빙벽도 배우고 싶다”고 했다.

소리만이 아닌, 메시지를 전하는 성악가가 되고파
그녀의 ‘등산예찬’을 듣다보니 산길을 꽤나 걸었다. 산 중턱에서 목을 축인 후 바위에 잠시 걸터앉았다. 전날 내린 비 덕분인지 공기가 더욱 청정한 느낌이었다. 산 위에서 한동안 말없이 풍경을 감상하고 있던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으니까, 음악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지는 것 같아요. 인생을 살면서 여러 가지 고비와 좌절을 겪고, 또 그것들을 극복해 나가면서 음악을 대하는 느낌이 달라졌다고 할까요. 전에는 관객들에게 제 소리를 뽐내려고 했다면, 이제는 감성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요. 그러면서 음악에 담겨진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음악은 결국 감성의 표현이잖아요. 소리보다는 감정적으로 와 닿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 관객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아요.”
음악에 대한 그녀의 철학을 느낄 수 있는 말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해서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하게 됐다는 그녀. 그녀는 고등학교 시절 숙명여자대학교 주최 전국 고등학생 콩쿠르에서 1등에 입상하며 음악적 재능을 뽐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성악가가 되겠다는 꿈은 없었다.
“사실 어렸을 때는 성악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대학을 갈 때도 처음에는 심리학과를 가고 싶어 했죠. 음악은 제게 과외활동, 놀이와 같은 것이었어요. 그런데 운명이었는지 노래할 기회가 많았고, 자꾸 음악과 엮이더니 결국 음대에 가게 됐어요(웃음). 취미라고 생각했던 음악이 이제는 삶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요.”
경기여고를 거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 들어갔고, 대학 2년이 되던 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미시간대학교에서 성악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소프라노에서 콜로투라 파트는 “연습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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