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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가르쳐준 것들
엄마가 가르쳐준 것들
  • 박소이 기자
  • 승인 2021.07.24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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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칼럼

우연히 행사에서 만난 분이 가끔 내게 글을 보내준다. 뉴스레터 같은 것이다. 이번에 보내준 글은 두 딸을 키우는 나의 시선을 끌기 충분했다. 글은 ‘좋은 어머니는 어떤 어머니일까?’로 시작하고 있었다. 과연 좋은 엄마라는 것은 무슨 기준일까? 그러면 나는 사회의 통념이나 아이들이 볼 때 좋은 엄마일까? 나쁜 엄마일까? 좋은 엄마라는 확신은 없지만 분명하게 딸들에게 가르친 것이 하나 있다.

여성이라고 못 할 것은 없다.

“엄마, 왜 직장에 다녀? 엄마가 직장 안 다니고 우리하고 집에만 있었으면 좋겠어.” 딸들이 어렸을 때 내게 많이 했던 질문이다. 큰딸도 그러더니 둘째 딸도 그랬다. 주부인 친구들 엄마들이 부럽다고 툴툴거렸다.

“집에 오면 엄마가 없어서 허전하고 싫어.” 답은 매번 뻔했다. “미안해. 하지만 돈도 벌고 좋잖아.”라고 현실적인 답변을 했지만 그래도 의문이 가시지 않았는지 힐난이 섞인 질문은 계속되었다. 어느 날 나의 대답이 바뀌었다. “아니, 너희들은 아빠한테는 그런 질문을 안 하면서 왜 엄마에게만 하니?” 철부지 작은 딸은 “아빠는 남자고 엄마는 여자잖아.”라고 바로 응수했다. 나도 바로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에 남자 역할, 여자 역할이 따로 있는 게 아니야. 너희들도 나중에 워킹맘이 될 거야.”

아이들은 성역할이 무엇인지 관심도 없었다. 엄마랑 그냥 같이 있고 싶었을 뿐이다. 딸들이 크고 나니 나의 삶과 선택을 이해한다. 허덕허덕 하며 사는 엄마의 삶이 고달파 보였다고 했다.
어릴 적에 나도 엄마의 삶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를 못 한다기보다도 엄마처럼 살기 싫었다. 그 당시의 엄마들이 그런 것처럼 엄마도 가족을 위해 평생을 희생하시며 당신의 삶 없이 사셨다. 엄마의 삶 자체가 내게는 교훈이었다.

존 밀러가 1869년에 쓴 본인의 저서 여성의 종속(Subjection of Women)에서 그는 여성의 삶이 남편에게 종속되어 있는 상황에 대하여 설명한다. 150년 전, 학자의 눈에도 여성의 종속된 삶이 안타까운 듯하다. 종속되지 않으려면 스스로 살 수 있는 힘, 경제적 능력과 독립적 사고를 가져야 한다.


여자는 안 돼

50년 전의 일이다. 1970년대 초반. 내가 초등학교 때의 일이다. 학교 갔다 오니 운전학원 책이 마루에 잔뜩 쌓여 있었다. 집에서 살림만 하던 엄마가 갑자기 운전을 배우려고 자동차학원에 등록을 한 것이다. 엄마는 직업을 갖고 싶어 했다. 그러나 별다른 재주가 없는 가정주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때나 지금이나 많지 않다. 그 시절 자동차가 막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운전이었다. 이를 안 외할머니가 펄쩍 뛰셨다. ‘여자가 팔자 사납게 위험한 운전을 하느냐’고 반대하였다.

엄마의 취업의 꿈은 외할머니의 반대를 못 이기고 학원등록 하루 만에 허무하게 무산되었다. ‘여자는 안 돼’라고 말한 할머니가 야속하였는지 엄마는 아들과 딸이 똑같이 공부해야 하고 똑같이 직업을 갖고 똑같이 사회에 나가서 활동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엄마는 나를 가르쳤다.

세상이 바뀌어 다들 아들보다 딸이 더 좋다고들 말하지만 내 딸들이 살아야 하는 사회는 아직 힘들다. 성 격차 지수가 세계 최하위 수준이고 유리천장 지수는 최고인 각종 통계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 세계적인 역사학자인 히브리대 유발 하라리 교수는 2015년에 펴낸 저서 「사피엔스」에서 인간사회에는 그와 그녀 사이에 위계질서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생물학적 요인이 아니라 사회와 문화가 남성성과 여성성을 구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근거도 없이 대부분 사회가 남성성을 여성성보다 높이 평가하고 있고, 가부장제가 수천 년을 견고하게 버티어온 점도 이상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젠더의 역할은 지금 커다란 혁명을 겪고 있는 사실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딸들에게 힘을 주는 엄마의 역할

우리 할머니처럼 ‘여자는 안 돼’라고 말하는 엄마는 딸의 삶을 어렵고 힘들게 하였다. 하지만 이제 세상이 변화하고 있다. 딸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 위하여 엄마는 성역할 고정관념의 매개자가 아니라 타파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고정관념이나 역경이 있을수록, 롤 모델이 없을수록,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좋은 어머니는 어떤 어머니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그 누구도 단정적으로 하기 어렵다. 엄마의 역할을 규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도 직장을 다닌다는 핑계로 두 아이에게는 전통적인 엄마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아이들이 엄마의 공백을 싫어했으니 좋은 엄마는 아니었지만, 힘을 주는 엄마의 역할은 제대로 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글·사진 이복실(전 여성가족부 차관)
 

 

이복실은…
전 여성가족부 차관,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 회장. 서울시
립대 도시행정학과를 졸업,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에서
교육학으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1985년 여성으로서 네 번
째 행정고시 합격자이다. 30년간 중앙부처에 재직했으며, 2013
년 여성가족부가 설립된 이래 최초 여성 차관으로 임명됐다. 저
서로는 <여자의자리 엄마의 자리>, <나는 죽을 때까지 성장하고
싶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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