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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정, 식민지 조선인을 위해 도서관을 세우다
김인정, 식민지 조선인을 위해 도서관을 세우다
  • 박소이 기자
  • 승인 2021.07.22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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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이미지입니다.
사진 국립중앙도서관 자료사진. 사진은 이미지입니다.

 


1931년 12월 3일, 평양에서 수백 명이 운집한 가운데 인정도서관(仁貞圖書館) 개관식이 거행되었다. 만수대 언덕 아래 644평 부지 위에 연건평 216평의 3층짜리 벽돌 건물로 지어진 인정도서관은 일제강점기 식민지에서 조선인들이 이용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공공도서관 중 하나였다. 게다가 일본에까지 사람을 보내서 직접 구입하거나 널리 기증받은 장서가 5천여 권에 이르고, 일반열람실, 부인열람실, 아동열람실, 신문열람실에 연구실까지 갖춘 그 당시로서는 상당히 규모가 큰 공공도서관이었다.

개관한 첫 달에 3,131명이던 이용자 수는 해마다 계속 늘어나서 1935년에는 8만 4,652명에 이르러 개관 이후 4년간 누적 이용자 수가 27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당시 평양의 인구가 10만 명 남짓이었으니 대단한 인기가 아닐 수 없다. 사정이 이러하니 인정도서관에 관련해서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외일보 같은 민족자본으로 운영되던 언론은 물론이거니와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까지 큰 관심을 가지고 개관을 준비하던 무렵부터 시작해서 개관 이후에도 계속해서 수많은 기사를 보도하였다,

이 도서관을 설립한 분은 김인정(金仁貞). 1871년 평양에서 태어난 그녀는 자신 소유의 땅 9만 평과 현금 등 10만 원을 선뜻 내어놓고, 도서관의 안정적 운영을 위하여 평양지역의 유력 사회운동가 조만식(曺晩植) 등이 이사로 참여한 재단법인을 설립하였다. 당시 경성의 집 한 채 값이 1천 원 정도였다고 하니 서울 집 100채와 맞먹는 엄청나게 큰돈이다. 도서관 개관 이후 이용자가 계속 늘어나자 그녀는 새로 3만 원을 들여 기존 도서관 옆에 3층짜리 별관을 지었다. 1935년에 완공된 이 벽돌 건물에는 휴게실, 향토문화연구실, 아동열람실, 500명을 수용하는 강당이 자리 잡았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인 자본으로 세워진 다른 도서관들은 물론이고 학교와 신문사 등 수많은 기관들이 일제의 탄압과 재정난으로 결국에는 문을 닫는 일이 비일비재했지만, 인정도서관은 재단의 단단한 재정 지원 덕분에 운영을 계속할 수 있었다. 물론 인정도서관이라고 해서 일제의 탄압을 피할 수는 없었다. 인정도서관은 1933년 8월에 평양경찰서가 소위 불온서적으로 적발한 책 108권을 임의제출 형식으로 내놓아야 했다.

일제 말기에는 경제적 압박도 극심했던 것 같다. 안타깝게도 해방 이후 소련이 북한지역을 점령하면서 도서관 건물이 소련군 문화사령부로 사용되었다는 것 외에는 인정도서관의 운명에 대해서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설립자 역시 한국전쟁 중 피난길에서 유명을 달리한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기생 출신으로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김인정은 평생 모은 재산을 아낌없이 사회에 환원한 큰 인물이었다. 평양고아원과 평양양로원을 비롯해서 평양, 강원도, 간도 용정 등에 소재한 여러 학교의 설립과 운영을 위해 현금이나 토지를 기부했다. 또 워낙 싸게 받던 소작료마저 작황이 나쁠 때는 과감히 면제해주는 것은 물론 소작인 구제 사업을 벌였다고 한다.

“조선사람은 아무라도 좀 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도서관 건립을 결심했다는 그녀는 “재산 전부를 사랑하는 자식인 도서관에 상속할 작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돈이 많지 않아서 평양에 꼭 있어야 할 신문사, 무료병원, 실천노동학교(實踐勞動學校) 등을 세우지 못하는 것이 미안”하다고 했다고 신문기사들은 전한다. 동아일보는 ‘김인정도서관, 조선도서관운동의 봉화’라는 제목의 사설을 이렇게 마무리 하고 있다.

“도서관은 문화보급에 있어서 학교와 비견할 중요성을 가진 것이다. 김인정 여사의 애국적, 영웅적 사업이 반드시 전 조선의 재산가를 자극하여 도서관 건축운동이 각지에 일어나기를 아니 바랄 수 없다.”

비록 이 사설이 외친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지지는 못했지만, 김인정 여사의 고귀한 뜻조차 잊어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글 서혜란(국립중앙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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