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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대 피카소 특별전 이끈 여성사령관, 전수미 관장 
사상 최대 피카소 특별전 이끈 여성사령관, 전수미 관장 
  • 김은정 기자
  • 승인 2021.09.0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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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나눔입니다
사상 최대 피카소 특별전 이끈 여성사령관,  전수미 관장 



'피카소 탄생 140주년 특별전'이 지난 8월 29일 성료됐다. 지난 5월 1일 시작해 8월 29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진행된 '피카소 탄생 140주년 특별전'을 주관한 비채아트뮤지엄 전수미 관장을 퀸이 만났다. 퀸 7월호 인터뷰로 만난 전수미 관장에게 듣는 사상 최대 피카소 특별전 개최까지 과정과 이번 전시의 의미에 대해 짚어본다.
 

'피카소 탄생 140주년 특별전'. 피카소의 20대부터~80대까지 전 생애를 아우르는 회화·유화·판화·조각·도자기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연대별로 관람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전시회여서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관심이 뜨겁다. 준비 과정만도 3년 넘게 걸린 이 블록버스터 급 전시회를 마련한 비채아트뮤지엄의 전수미 관장을 만나 이번 전시에 대한 이야기와 예술관을 들어 보았다.

 

코로나 위기 뚫고 열린 사상 최대 피카소 특별전

파리 국립피카소미술관 소장의 걸작 110점이 한국으로 건너 왔다. 대한항공의 4대의 비행기를 4회에 걸쳐 이용해 공수한 전시작품 가격만도 2조원. 무게로는 25톤. 최첨단 IT기술을 동원해 마치 007작전을 방불케 하는 공수작전이 펼쳐졌다. 코로나 위기 속에 대형 전시기획사들도 계획했던 전시들을 연기하거나 취소하는 시기에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기획사에서 이런 대형 전시회를 열었다는 것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어떻게 보면 무모한 일이라고 할 만한 블록버스터 급 전시를 연 주인공은 비채아트뮤지엄의 전수미 관장이다. 어려운 시기에 어떻게 이런 대형 전시회를 열 수 있었던 걸까?

“피카소전은 국내에 대형전시를 이끌어온 커미셔너 서순주 박사와 함께 3년 전부터 기획했던 일이에요. 그러다가 작년부터 코로나 위기가 시작되면서 과연 이 전시를 열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죠. 전시 시작 2주일 전까지 파리의 수장고에 작품들이 패키징을 끝내고 있을 때에도 지금이라도 취소하는 게 낫다고 조언하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하지만 혹여 물질적인 큰 손해를 입더라도 가치를 추구하고 그것이 효율적으로 큰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면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코로나 위기 속에서도 일상이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강행하기로 했습니다.”

이번 전시회를 열기까지 어려움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위대한 걸작인 만큼 신경 써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모든 작품들은 파리에서 출발하면서부터 도착하기까지, 또 도착하고부터 매일 매일 컨디션리포트에 따라 작품 상태를 체크하고 있다. 심지어 전시관 내의 항온, 항습 상태까지도 매일 체크해 파리 국립피카소미술관에 보고하고 있다고 한다. 전시장에 작품을 걸 못 하나도 파리에서 공수 해온 것이라니 그 준비과정이 얼마나 디테일하고 어려운 것이었을지 짐작할 만하다. 뿐만 아니라 코로나 상황이다 보니 예술의전당 측에서 방역에 대한 주문이 까다로워 감염내과에서 설치하는 멸균기를 전시장에 설치하고 덴탈마스크 수만 장을 준비하는 방역과 위생에도 철저히 대비하고 있다.
 

완성 70년 만에 한국에 들어온 걸작 ‘한국에서의 학살’
 

이번 전시에는 국내에 최초로 소개되는 피카소의 걸작들이 많아 더욱 의미가 깊다. 그 중 눈에 띄는 작품이 ‘한국에서의 학살’. 이 작품은 피카소가 1951년도에 그린 작품으로 6.25 전쟁의 참상과 비극을 고발하며 앞으로의 화해와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그동안 반공법 등에 묶여 국내에서 전시할 수가 없었고 국립현대미술관에서도 2008년과 작년 두 차례나 들여오려 했지만 무산된 적이 있다. 이런 작품을 비채아트뮤지엄에서 파리국립피카소미술관에 적극적인 협조를 구해 국내에 최초로 전시하게 된 것이다. 그런 의미 있는 작품인 만큼 언론과 학계에서도 큰 관심을 가졌고 전 관장 또한 이 작품에 세심한 정성을 쏟았다.

“이 작품에 대해 논문을 쓰신 서울대 정영목 교수님을 찾아가 작품에 대한 조언을 구하고 견해를 들었습니다. 교수님도 처음엔 이 작품이 정말 한국에 온다고? 하는 반신반의한 표정이었죠. 그런데 정말 한국에서 처음으로 전시되는 것을 보고 반가워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특히나 이 작품은 혹여라도 이념 논쟁에 따라 돌발사태라도 생기게 될까봐 전시장에서도 평면에서 살짝 안으로 들어가게 비치하는 등 안전 유지에 크게 신경을 쓰고 있다. 이념을 떠나 이 작품을 통해 전쟁의 참상과 슬픔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생명과 평화의 소중함을 깨닫는다면 그것이 피카소가 이 그림을 그린 참의미가 아닐까 싶다.
 

21세기 오늘날 왜 피카소인가
 

21세기 그것도 코로나 팬데믹으로 온 세계가 침체에 빠진 오늘날 많은 화가들 중 왜 피카소일까?

“언택트 시대에 SNS로 연결은 되는 것 같은데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진정한 연결고리가 없는 것 같았어요. 이런 시기에 19, 20, 21세기까지 관통하는 피카소를 연대기로 보여줘 이 화가는 결국 사람의 이야기를 했다는 것을 담아내고 싶었죠.”

5세 때부터 그림을 그린 천재화가 피카소는 신고전주의, 후기인상주의, 입체주의, 초현실주의를 넘나들면서 현대미술 역사를 바꾼 작품들을 잇따라 내놓았다. 전수미 관장은 미술사에 새로운 사조를 탄생시킨 피카소의 혁신에 주목했다.

“피카소 예술세계의 가장 큰 특징은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표현했다’는 말로 요약되는데요. 이것이 ‘혁신’이죠. 혁신은 기업은 물론 문화, 사회, 국가, 개인의 생존과 발전에 필수적인 덕목이에요.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인데 혁신을 인식한다고 해서 혁신이 저절로 이뤄지지 않거든요. 이 때 추천할 사람이 피카소라고 생각합니다. 피카소는 전통미술에도 깊이 파고들었지만 또 그것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자신만의 눈으로 대상을 보고 사유하고, 독자적인 표현법을 창조했어요. 혁신의 길은 때로는 고독하고 때로는 혹독한 비난도 견뎌야 하는 고난의 길이지만 피카소는 그것을 과감하게 해냄으로써 위대한 작품들을 남겼죠.”

혁신의 힌트를 얻기 위해서는 이번 전시에서 피카소의 작품을 연대기적으로 살펴보면 큰 도움이 된다. 피카소의 작품 세계는 20대 청년기부터 40~50대 중장년기를 거쳐 70~80대 황혼기에 이르기까지 연령대에 따라 뚜렷하게 변화하기 때문이다.

“이번 ‘피카소 탄생 140주년 특별전’의 중요한 기획 의도 중의 하나가 연대기적 작품 구성인데요. 이 전시가 2021년 당면한 과제 해결을 위한 ‘혁신’ 아이디어를 구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전수미 관장 "예술은 나눔입니다"

 

 

국내 미술 전시사에 이정표 될 국민전시회로 등극
 

이번 피카소전이 특별한 이유는 미술과 음악을 콜라보 한 음악회를 열고 어린이들을 위한 피카소전을 따로 마련하는 등 단지 그림만 전시해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인 개념의 새로운 전시를 기획했기 때문이다. <멜로디 오브 피카소>라는 음악공연은 피카소의 동시대를 살아간 작곡가의 음악을 들려주는 공연으로 에릭 사티(1866~1925), 클로드 뷔시(1862~1918) 등의 곡이 연주됐다. 피카소는 생전 사티와 친밀하게 교류하며 그의 초상화를 그려주기도 했다

“이번 콘서트는 국내 처음으로 시도되는 미술전시와 공연의 콜라보레이션입니다. 피카소의 입체주의는 고전적 평면구도를 깨고 사물을 다각적으로 보려는 시도였죠. 그의 관점에서 그림을 평면적으로 나열하는 전시의 틀을 벗어나 보고 싶어 피카소 작품과 음악의 통섭을 시도한 것입니다. 콘서트 연주곡들은 피카소가 활동하던 시대의 프랑스, 스페인 거장들의 곡이어서 그 안에 담긴 시대적 예술사조와 정서를 통해 피카소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

5월 1일부터 시작해 8월 29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회는 처음엔 관람객들이 대부분 젊은 층이었지만 갈수록 연령층이 다양해질 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몰려들고 있다. 코로나 위기 속에서 모처럼 열린 대형 전시회라 사람들이 더욱 반가운 마음으로 찾고 있어 주말은 물론이고 평일에도 긴 대기 줄을 서야 할 만큼 찾는 이들이 많다. 관람객들 중엔 유력 정치인과 연예인, 화가 등도 심심찮게 볼 수 있어 이번 전시가 얼마나 남다른지 보여주고 있다.

또한 지방에서 사정상 상경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도록이라도 받아 볼 수 없냐는 문의가 쇄도하는 등 뜨거운 관심 속에 국민전시회로 등극하고 있다. 이렇듯 연일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다 보니 그 속에서 훈훈한 광경이 연출되기도 한다고.

“한번은 뇌성마비 어린이가 휠체어를 타고 땀을 뻘뻘 흘리며 엄마와 함께 줄을 서 있는 거예요. 그래서 걱정스러워 다가가니 그 엄마가 지방에서 올라와 기차 시간 때문에 시간 여유가 많지 않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 아이에게 먼저 입장을 시켜주겠다고 하니 그 아이가 그러면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가 된다고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러자 앞줄에 서 있던 사람들이 다들 이런 경우는 배려가 필요하다며 아이를 먼저 입장시킬 것을 종용해 결국 아이가 먼저 관람할 수 있게 됐어요. 그래서 ‘아! 이런 경우는 특권이 아니라 배려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됐죠. 각박한 세상 속에 그래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따뜻한 배려심이 있다는 것을 알고 뭉클했습니다.”
 

예술은 나눔이다
 

미술계에선 비채아트뮤지엄이 신생 기획사로 알려져 ‘뭐하는 곳이지?’ 하는 의구심을 가진 시선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전수미 관장은 오래 전부터 미술애호가이자 컬렉터로 지내오면서 드러나지 않게 뜻있는 문화사업을 추진하기도 했다. 그러다 2016년 서순주 커미셔너와 르누아르 전을 함께하며 본격 전시 기획일을 시작했고, 작년 한국-EU 발달장애 아티스트들의 특별전을 준비하며 비채아트뮤지엄이라는 기획사를 탄생시켰다.

“지난 해 1월 발달장애 아티스트들의 전시를 준비하시던 단체의 대표님이 우리 아이들이 독일에서 전시를 가지게 됐다고 하며 좋아하셨어요. 그런데 3월쯤 코로나 때문에 취소가 됐다며 낙심을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럼 우리가 오히려 유럽 아이들을 초대해 국내에서 열어줘야 겠다 생각을 하게 됐죠. 그래서 전시회를 마련하고 국내 발달장애 아티스트 56명의 작품 127점과 EU국가 발달장애 아티스트 20여명의 작품 약 40점을 전시했습니다.”

‘붓으로 틀을 깨다’라는 이름으로 지난해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전시는 비채아트뮤지엄에서 자비를 들여 연 것으로 발달장애 아티스트들에게 큰 희망을 주고 코로나로 지친 사람들에게도 큰 위로가 되었다. 그밖에도 전 관장은 전국에 80여 개의 전교생 5명 미만 학교에 이번 피카소전의 도록과 책을 보내는 등 예술로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예술로 나눔이라는 가치를 추구하고 싶기에 경제적인 이익만을 추구하려고 문화 사업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문화 소외지역 어린이들에게도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단지 그림만 보여주는 전시가 아니라 그 전시를 보고 비포 앤 애프터가 분명히 다른 여운이 남고 메시지가 전달되는 전시를 기획하고 싶습니다. 이번 피카소전이 휴머니즘과 인류에 대한 사랑이었던 것처럼 앞으로도 스토리와 테마가 있는 전시를 열어갈 생각입니다.”

[퀸 김은정기자] 사진 양우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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