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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 ‘악의 평범성’을 말하다
한나 아렌트, ‘악의 평범성’을 말하다
  • 서혜란
  • 승인 2021.09.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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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 출판 한길사. 사진 출처 네이버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 출판 한길사. 사진 출처 네이버 책.

 


1961년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에서는 아이히만(Otto Adoldf Eichmann)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었다. 나치 친위대 상급돌격대지도자였던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유럽 각지에서 유대인 500만 명을 죽음의 폴란드수용소로 이송하는 업무를 담당한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실무책임자였다.


전쟁이 끝난 후 미군에게 체포되어 뉴렌베르크 국제군사재판에 회부되었지만 도주하여 리카르도 클레멘트라는 가명으로 신분 세탁을 하고 아르헨티나에 정착했다가 1960년 5월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에 의해 체포되어 이스라엘로 압송된 것이다. 그는 재판과정에서 자신은 상부의 지시에 따랐을 뿐이라고 변명했지만, 결국 1962년 6월 1일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 재판정 방청석에는 정치이론가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년)가 잡지 〈뉴요커(New Yorker)〉의 특파원 자격으로 앉아 있었다. 독일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렌트는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와 카를 야스퍼스(Karl Jaspers)로부터 지도를 받으며 철학을 공부하였다. 그러나 1933년에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교수자격 취득이 금지되자 프랑스 파리로 이주하였고, 나치의 박해를 피해 몰려온 유대계 이주자들을 지원하는 일을 했다.


프랑스마저 독일에 점령당하면서 위험에 처한 아렌트는 1941년 미국으로 망명하였고, 뉴욕에서 몇몇 잡지에 독일어나 새로 배운 영어로 쓴 글을 기고하며 곤궁한 생활을 이어갔다. 1950년에 귀화하여 미국시민이 된 그녀는 1951년에 오래 준비한 첫 번째 저작 「전체주의의 기원(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을 출판하였다. 철학자인 남편 하인리히 블뤼허(Heinrich Bl cher)에게 헌정된 이 책은 무려 554쪽에 달하는 꽤 어려운 정치철학서임에도 불구하고 서평자들의 찬사를 받으며 잘 팔려나갔고, 그녀는 대중적 지식인의 아이콘이 되었다.

심지어 패션잡지 〈보그(Vogue)〉가 ‘지금 회자되는 이야기’로 그녀를 다룰 정도였다. 1959년에는 프린스턴대학교 최초의 여성 전임교수로 지명되었다.


이런 경력과 명성을 가진 아렌트가 1963년에 출판한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Eichmann in Jerusalem)」이 유대인 사회는 물론 지식인들 사이에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사실 이 논란은 지금까지도 진행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아이히만 재판과정을 직접 관찰한 그녀가 소송 서류와 관련 문헌들을 검토하여 저술한 이 책에서 제시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 때문이었다.


그녀는 끔찍한 죄악을 저지른 아이히만이 ‘악마’나 ‘괴물’이 아니라 보잘것없는 ‘평범한 사람’임에 놀라고, 그의 악행은 평범성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하면, 정치적 악의 근원은 사람들이 자기가 어떤 행동을 하거나 하지 않는 것이 가져올 결과에 대하여 비판적 사고를 하지 않은 채 ‘생각 없이’ 명령에 복종하고 다수 의견에 따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많은 독자와 비평가들은 아렌트가 아이히만에게 면죄부를 줌으로써 유대인의 수난을 배반했다며 화를 내고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을 용서한 것이 아니다. 아렌트의 말을 빌리면, “인간의 모든 활동 가운데 가장 자유롭고 순수한 능력인 생각을 기꺼이 포기한 상황에서는 용서할 ‘사람’ 자체가 없기 때문에” 용서할 수조차 없었다.


아렌트의 대표적 연관검색어는 ‘악의 평범성’이지만, 필자가 보기에 그녀 주장의 핵심어는 ‘생각 없음(thoughtlessness)’이다. 아렌트가 말하는 ‘생각 없음’이란 일부러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죄책감이나 부끄러움 같은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감정을 적극적으로 회피하는 것이다. 비판적 사고의 부재야말로 나치 같은 폭압적 전체주의가 극성을 부릴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한다고 설명한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함석헌 선생의 말씀과 일맥상통하는 주장이다.
 

 


글 서혜란(국립중앙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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