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02:50 (금)
 실시간뉴스
박나래의 성희롱 논란이 던져준 과제
박나래의 성희롱 논란이 던져준 과제
  • 이복실
  • 승인 2021.09.23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얼마 전 연예인 박나래의 발언이 성희롱 논란을 일으켰다. 웹 예능 '헤이 나래' 2회에서 장난감 체험 도중 발생한 성적인 묘사와 발언이 문제였다. 제작진은 신속하게 프로그램 폐지를 결정했고, 박나래는 "미숙한 대처 능력으로 많은 분께 실망감을 안겨드렸다."라며 자필 사과문을 게재했다.

하지만 여기서 사건이 끝난 것이 아니다. 정보통신망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된 것이다. 정보통신망법 44조는 ‘정보통신망을 통해 음란한 음향·영상을 배포하거나 공공연하게 전시해서는 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조사과정에서 ‘해당 영상이 음란한 영상에 해당하는지’가 주요 판단 기준이 될 것이다.

그러면 성희롱 관련 법은 어떨까? 국가인권위원회법,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 여성발전기본법에서 모두 성희롱의 정의를 '그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 등과 관련하여'
로 한정하고 있다. 성폭력은 형법과 성폭력특별법에 근거한 범죄로 형사처벌의 대상이지만, 성희롱은 형법상의 범죄가 아니어서 형사처벌의 대상이 아니다. 성희롱은 인권위원회에 제소해서 판정을 받을 수도 있고 직장 내에서 징계 규정에 근거하여 적용을 받거나 민법에 근거해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하지만 성희롱이 범죄가 아니라고 해서 간단히 생각해서는 안 된다. 육체적 성희롱과 성폭력의 일부인 강제추행간 중첩되는 부분이 있어 성희롱과 성폭력 간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것이 다수의 견해이고 실제 판례에서도 입증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매체의 영향력

이번 일을 계기로 대중매체의 중요성과 성희롱 방지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다. 일단 확실한 것은 국민의 성인지 감수성이 무척 높아졌다는 것이다. 유죄냐 무죄냐 하는 법적인 처벌의 문제를 떠나 그 누구이든지 간에 성적인 불쾌감을 주는 농담은 지양해야 한다. 사석에서 행해지는 농담도 듣기 불편하고 조심하여야 하는데 국민의 사고와 의식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대중매체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대처 능력이 미숙했다고 자필 반성문을 썼지만 대처 능력이 미숙한 것이 아니라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고 인정했어야 했다.

40년 동안 언론에 종사해 온 박성희 전 한국경제신문 수석 논설위원은 언론의 역할에 대하여 슈람의 말을 인용하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미디어를 통해 정보나 지식을 얻고, 한 사회에 편입되기 위한 일상적 규범을 내재화한다. ‘대중매체와 국가 발전’의 저자인 미국의 언론학자 윌버 슈람(Wilbur Schramm)은 언론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네 가지, 주위 환경에 대한 지식 공유, 새로운 사회 구성원의 사회화, 오락, 정책에 대한 합의 도모 및 설득으로 정의했다. 최근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언론의 범위가 신문과 방송 등 대중매체에서 SNS(Social Network Service)로 확장되고 있지만, 오늘날에도 슈람의 정의는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영향력과 중요성이 증가하고 있는 만큼 사회적 책임도 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성희롱 예방의 중요성

우리나라 법령에 성희롱이라는 용어가 처음 도입된 것은 1995년의 일이다. 이어서 1999년 「남녀 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이 제정되면서 그해 7월부터 여성가족부의 전신이었던 여성특별위원회에서 성희롱 사건을 접수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성희롱 사건을 신고 받는다. 이 모든 변화가 불과 20년 전에 시작이 된 것이다. 그전에는 성희롱을 심각한 문제로 생각하지 않았고 어디에 호소할 곳도 없었다. 하지만 국가가 나서서 성희롱 사건을 신청받기 시작한 것은 변화를 알리는 시작이었다.

우리보다 먼저 여성의 사회참여를 경험한 미국은 1980년부터 고용평등기회위원회(Equal Employment Opportunity Commission)에서 성희롱을 남녀차별의 한 형태로 보고 신고를 받기 시작했다. 1991년에 성희롱사건 6,893건이, 20년 후 2011년에는 11,717건이 접수되었다. 20년 만에 사건이 거의 2배가 증가한 셈이다. 이 중 남성이 제소한 사건이 16% 정도 된다. 이는 성희롱 피해자가 꼭 여성만이 아님을 보여준다. 성희롱 방지를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이다.

하지만 고위직일수록, 인기가 많을수록 내가 하는 말이나 행동을 다른 사람들이 다 좋아한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 내게는 발생하지 않는다’라는 방심도 또 하나의 함정이다. 가해자에는 남녀도 없고, 지위의 고하도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번 일을 교훈 삼아서 유튜브나 SNS를 포함한 대중매체 종사자들의 성인지 감수성이 향상되기를 바란다. 특히 성차별 의식을 조장할 우려가 있는 내용, 특정 성을 성적 대상 또는 도구로 묘사하는 내용,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조장할 우려가 있는 내용, 성 관련 범죄를 정당화할 우려가 있는 내용 등을 점검하여 성평등 한 방송환경이 조성되기를 기대해본다.
 

 

글 이복실(전 여가부 차관)
전 여성가족부 차관,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
부 회장.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를 졸업, 미
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에서 교육학으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1985년 여성으로서 네
번째 행정고시 합격자이다. 30년간 중앙부처에
재직했으며, 2013년 여성가족부가 설립된 이래
최초 여성 차관으로 임명됐다. 저서로는 <여자
의자리 엄마의 자리>, <나는 죽을 때까지 성장하
고 싶다>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