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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빌레라>가 보여준 새로운 가부장...일흔 남성의 발레 도전 성공기
<나빌레라>가 보여준 새로운 가부장...일흔 남성의 발레 도전 성공기
  • 김공숙
  • 승인 2021.09.25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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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비평
사진 tvN '나빌레라' 홈페이지
사진 tvN '나빌레라' 홈페이지

 


드라마 <나빌레라>(tvN)가 조용하지만 따뜻하게 종영했다. 12화라는 다소 짧은 분량의 웹툰 원작 드라마였다. <나빌레라>는 무엇보다 소재가 독특하다. 일흔 노인이 발레리노의 꿈을 이룬다는 내용이다. 그것도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노인이, 가족의 반대 속에서도 드라마 속 표현대로 민망(?)하기 짝이 없는 타이즈 차림의 발레리노가 되어 무대에 올라 꿈을 이룬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한 번쯤 날아오르고 싶은 꿈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미뤄두기 마련이다. 하지만 용기를 내면 <나빌레라>의 심덕출처럼 누구나 한 번쯤 날아오르는 순간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나빌레라>는 우리 사회의 남성 노인에게 기대하는 편견, 견고한 틀을 깬 노년 남성의 발레 도전기이자 일흔 노인의 성장 드라마다.

<나빌레라>에서 눈길을 끈 것은 무엇보다 주인공 심덕출 캐릭터다. 실제 나이 76세의 박인환이 발레 하는 모습을 보여줘서가 아니다. 심덕출은 전에 없던 성격의 남성 인물이다. 가부장적 남편, 아버지, 할아버지와는 반대편에 서 있는 어머니와 같은 남성이다. 가부장제(家父長制)는 남성이 강력한 가장권을 가지고 가족구성원을 통솔하는 가족형태 또는 가족구성원에 대한 가장의 지배를 뒷받침해 주는 사회체계를 일컫는 제도를 말한다.

심덕출은 아내와 2남 1녀를 둔 은퇴한 집배원으로 평범한 아버지이자 할아버지이다. 가난한 형편에 평생을 가족을 위해 일하며 희생했기에 대접을 받을 만하다. 그러나 덕출은 강력한 가장권을 발휘하지 않는다. 평등부부의 표상과도 같은, 아내 최해남(나문희 분)의 이름과 자신의 이름이 나란히 붙어 있는 문패, 아내를 위한 설거지와 집안일의 일상화는 물론 정규직에서 탈락한 손녀를 위로하기 위해 자신의 낡은 붕붕이(자동차)를 선물해 위로하는 세심한 할아버지다.

심덕출은 발레 스승인 채록이 사고로 콩쿠르 출전이 좌절되자 “다리 한두 번 부러지면 좀 어때서? 꿈이 부러지는 것보다야 낫지!” 라며 인생 멘토가 되어 주고, 아픈 채록을 위해 직접 죽을 쒀서 먹이는 등 돌봄의 습성이 생활화 되어 있는 모습을 보인다. 온화하고 착하며 배려하는 마음이 몸에 밴 심덕출로 인해 주변 인물들의 아픔과 갈등은 모두 해소되어 간다. 채록과 그의 아버지와의 서먹서먹함과 갈등, 가부장적인 장남 성산조차 아버지의 위로를 받으며 경쟁 속에서 허덕이던 모습에서 과감히 탈출하여 변모한다.

일하는 며느리를 지지하고, 남들 좋다는 의사를 때려치워 가족의 원성과 걱정을 듣는 막내아들 성관에게 “너도 지겹게 얘기해. 지금이 좋다고.”라며 응원한다. 심덕출은 모두에게 사랑받는 남성 인물이다. 심덕출은 아들 손자 세대가 어떤 이유로든 스스로가 높이 쌓은 담을 허물게 하고 소통과 화해의 기쁨을 알게 해주는 이상적 인물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심덕출이라는 극중 이름도 새겨볼 만한 것 같다.

덕(德)이 나온다(出)는 뜻이 아닌가. 덕출은 분출하는 깊은(深) 덕으로 모두를 끌어안고 위로한다. 타인에게 뿐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힘을 북돋운다. 자신의 마지막을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김수현 작가의 <목욕탕집 남자들>, <사랑이 뭐길래>를 기억하는 독자라면 드라마 속 가부장에 대한 전형적인 이미지가 있다. 그러나 2021년의 아버지, 할아버지들은 이제 그 시대와는 거리가 있다.

심덕출의 출생연도는 1950년. 70년대에 20대를 보내고, 60여 년을 가족들 건사하느라 고단하게 살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세대는 현재 넷플릭스 이용자 가운데 이 연령대가 적지 않을 정도로 디지털 시대의 수혜를 누리는 젊은 노인 세대이기도 하다. 젊은 노인 세대라는 뜻은 이들의 사고방식이 이전과 단절되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나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나빌레라>의 심덕출 또한 오래 된 가부장적 판타지 자리를 대체하는 새로운 反가부장적 ‘판타지 인물’일 수 있다. 하지만 드라마가 이런 판타지 한 아버지, 할아버지를 호명하다보면 어느새 우리 세상에도 이런 젊은 노년 남성이 대세가 되어 있지 않을까.


글 김공숙(안동대학교 융합콘텐츠학과 조교수) 
 

 


김공숙 교수는…
저서로 「멜로드라마 스토리텔링의 비밀」, 「고전은 어떻게
콘텐츠가 되었을까」, 「문화원형과 콘텐츠의 세계」가 있다.
한국방송평론상 수상, 스포츠경향 등 몇몇 일간지에서 방
송비평을 하고 있고, 한국예술교육학회·한국지역문화
학회 이사, 한국방송작가협회 정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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