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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까치’가 행복한 ‘가장’이 되기까지 순정마초 이현세의 아내 사랑법
고독한 ‘까치’가 행복한 ‘가장’이 되기까지 순정마초 이현세의 아내 사랑법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1.12.12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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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람을 쉰 살이 넘어서 훨씬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난 네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80년대 톱가수 정수라가 부른 노래 가사의 일부분이다. 그리고 불멸의 명작으로 손꼽히는 <공포의 외인구단>에서 ‘까치’가 ‘엄지’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대사이기도 하다. 더벅머리의 고독한 아웃사이더. 부서질 줄 알면서도 돌진하던 사나이. 까치는 처음 그대로의 모습으로 우리의 가슴에 남아 있건만, 그 만화를 그린 만화가는 나이가 들어 머리가 희끗희끗해졌다. 지칠 줄 모르고 만화를 그려내는 이현세 작가를 만나기 위해 강남에 있는 화실을 찾았다.

고독한 아웃사이더 ‘까치’의 탄생
1974년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더벅머리 시골 청년이 만화가의 꿈을 안고 서울로 올라왔다. 하지만 초록색과 빨간색을 구별하기 어려운 적록색약인데다가 강해 보이는 인상의 그를 받아주는 화실은 드물었다. 그러다 어렵게 들어간 곳이 순정만화를 그리는 나하나 작가의 화실이었다. 미국과 일본만화를 따라 그리는 당대의 현실에서 이현세는 자신만의 캐릭터를 끝없이 고민했다. 그리고 마침내 1979년에 까치가 태어난다. 이현세는 어떤 주제나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 보다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 먼저였다고 말한다.
“한국인의 한과 정서를 드러낼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러다 보니 흐트러진 머리에 외로운 방랑자 같은 분위기와 감성을 가진 캐릭터를 생각하게 되었죠. 그리고 그 캐릭터는 불의나 역경에 부딪혀서 은하수처럼 산화되는 불같은 폭발력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였으면 했어요.”
까치의 캐릭터는 이현세의 성격을 대변하기도 한다. 까치에게서 보이는 ‘행동하는 양심’이야말로 이현세가 지금까지 만화를 그리게 한 원천이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까치는 당시의 수많은 심의를 피하기 위해 야구선수가 된다.
“당시에는 몸싸움이 심하거나 폭력적인 소재는 만화가 될 수 없었습니다. 권투만화를 그릴 때도 주먹이 얼굴에 닿아 있으면 안 되었고, 총도 연발로 쏘면 안 되었죠. 몸싸움이 심한 농구 같은 스포츠도 심의를 통과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만만한 게 야구였죠. 게다가 야구는 경기 시간이 길고 사회나 극중인물의 갈등을 풀기에 좋은 스포츠죠. 상대방을 부수고 싶은 욕망을 야구 배트가 부러지도록 타이어를 때리는 것으로 대신할 수도 있고요.”

엄지를 닮은 청순가련한 아내를 만나다
‘까치’가 유일하게 사랑하는 여자의 이름은 ‘엄지’다. 엄지는 여린 외모와는 달리 강한 내면을 가지고 있다. 지고지순한 사랑의 대명사인 엄지는 뭇 남자들의 로망이 된다. 그리고 엄지를 만들어낸 이현세 또한 엄지를 동경하는 남자 중의 하나였다. 그러다 이현세는 살아 숨 쉬는 엄지를 만나게 된다. 그것은 운명이었고 피할 수 없는 사랑이었다. 만화밖에 모르던 고독한 청년 ‘까치’에게 ‘엄지’가 나타난 것이다.
“아내와는 연애 결혼했습니다. 아내는 같은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던 친구의 여동생이었어요.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처음으로 아내를 보게 되었고, 그 순간 제 그림 속의 엄지가 튀어나온 거 같아 숨이 멎었습니다. 아내는 아주 작고 여려 보였지만 성격은 당차고 여물었어요. 한 번은 아내가 친구들과 놀러 가서 찍은 사진을 나눠주는데 1원까지 정확하게 계산해서 돈을 걷더군요. 그런 모습을 보고 ‘살림을 잘하겠구나’ 하고 생각했죠. 그런데 결정적으로 아내에게 반한 건, 음식 솜씨였어요. 아내는 전라도 정읍 출신인데, 가끔 친구 집에서 밥을 먹으면 아내가 만든 음식이 제 입맛에 딱 맞더군요. 그래서 ‘이 여자랑 꼭 결혼해야겠다’ 하고 생각했죠.”
이현세의 아내인 안영순 씨는 결혼 전 애니메이션을 그리는 작가였다. 하지만 이현세와 결혼하고 나서는 그의 뒷바라지에 전념해왔다. 이현세는 그림을 그리면 집에 불이 나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집중하는 스타일이라 한다. 실제로 담배 연기를 중화시키기 위해 켜놓은 초에 원고가 타들어가고 있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계속 그림을 그린 적도 있다 한다. 그렇듯 오로지 그림밖에 모르는 이현세 곁에는 그의 아내 안영순이 있었다.
“젊어서부터 집사람이 모든 집안일을 다 해줬기 때문에 만화에만 집중할 수 있었어요. 저는 아내와 같이 집을 보러가거나 이사하는 걸 도와준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이사 전날, ‘내일 이사하니까 오늘은 들어오지 마세요’라고 아내에게서 연락이 와요. 그러면 저는 집에 안 들어가고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죠. 그러다 아내가 ‘몇 동 몇 호로 오세요’ 하면 그제야 새집에 찾아가서는 ‘여기가 앞으로 내가 살 집이구나’ 하고 둘러보는 식이었죠. 그리고 집 안에 못 하나 박는 것까지 모두 아내가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365일 만화만 그릴 수 있었어요.”
안 그래도 이현세는 남성중심의 영웅주의를 그린 만화내용이나 남성미 강한 풍모 때문에 마초 소리를 많이 듣는다. 가뜩이나 그런데 스스로 무심한 가장의 모습을 실토하는 것이 부담되지 않느냐고 묻자, “주부님들은 ‘저런 남자도 있으니, 나는 정말 결혼 잘했다’라고 느낄 수 있고, 남편분들은 ‘저런 남자도 있는데, 나는 잘하고 있는 거 아니냐’며 큰소리칠 기회가 생기는 거죠”라며 웃는다. 그리고 이어서 “지금은 말 잘 듣는 착한 남편으로 살고 있다”는 말도 덧붙인다.
“요즘은 아내가 큰소리 쳐요. 아내가 집안일을 다 해줘서 제가 그림을 두 배로 그릴 수 있었으니, 제 만화의 절반은 아내가 그린 거나 마찬가지라는 거지요. 그리고 그건 저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아내에게 사랑의 말을 전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기자의 제안에 이현세는 “에이~! 그런 건 못해요”라며 손사래를 치며 기겁한다. 그리고는 잠시 동안 침묵하던 이현세가 진지한 표정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런 말은 못하는데…. 다만, 쉰 살이 넘어서 집사람을 훨씬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가족은 내가 살아가는 이유
최근에 이현세는 가족사진을 찍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찍어본 가족사진이란다. 처음으로 다섯 명의 가족이 한 장의 사진 안에 모인 것이다. 그 사진 안에는 이현세의 엄지인 안영순 씨와 그들의 사랑이 맺은 결실인 세 명의 자녀가 담겨 있다.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았으니 세 명의 자녀 중에 만화를 그리는 자녀가 한 명은 있지 않을까 싶어 물어보았다.
“만화를 하는 아이는 없어요. 아버지가 눈만 뜨면 그림 그리는 걸 보아왔으니 질리기도 했겠고, ‘쉬운 길이 아니겠구나’ 하며 자신감이 꺾인 것도 있겠죠. 그래도 어느 정도 재능은 가지고 태어났는지 아주 무관한 일을 하고 있지는 않아요.”
이현세의 큰 딸은 회화를 전공해서 광고이벤트 회사에 다니고 있고, 둘째 딸은 맨해튼에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무대설치미술을 하고 있다. 그리고 막내아들은 컴퓨터 게임제작을 꿈꾸며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있다. 아이들과는 살갑게 지내느냐고 묻자, 이현세는 아이들에게 스킨십이나 애정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한 가부장적인 가장이었노라 대답한다.
“저는 여태껏 가부장적인 사람이었죠. 왜냐하면, 4대가 같이 살았거든요. 할머니와 어머니를 모시고 살다 보니 전통적인 가부장적 가치관이 강했죠. 애들을 혼내거나 귀여워하기도 어렵고, 아내도 아주 힘든 시집살이를 경험했어요. 할머니와 어머니 두 분 다 돌아가신 지금은 실권이 아내에게로 넘어갔습니다.”
이현세는 요즘 만화에 기울였던 노력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이었나에 대해서 자주 생각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를 가족에서 찾는다.
“혼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는 만화는 있는데, 명작이라거나 원본이 없어졌다고 가슴이 아플 만한 만화는 없는 거 같아요. 혼신을 다해서 살아온 건 분명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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