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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이 하나로 1조 원 매출 올린 한국의 스티브 잡스 ‘장난감 대통령’ 최신규 회장의 장난 아닌 성공 스토리
팽이 하나로 1조 원 매출 올린 한국의 스티브 잡스 ‘장난감 대통령’ 최신규 회장의 장난 아닌 성공 스토리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1.12.12 16: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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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인생에서
포기해야 할 것은 하나입니다.
좌절을 포기하세요”

 

“손오공의 여의봉처럼 신기한 장난감을 많이 만들고 싶은 마음에 회사 이름을 손오공이라고 지었어요. 남들이 저와 손오공이 닮았다는 말도 하더군요.” 최신규 회장은 장난감 이야기를 할 때면 눈빛이 반짝인다. 최 회장은 아직도 아이디어에서 제작 공정까지 일일이 직접 관여한다. 최 회장의 유일한 고민은 아이디어가 너무나 많은데 만들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란다.

장난감 개발은 내 안의 동심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
우리나라 연간 완구 총 매출이 5천억이던 시절, 최신규 회장은 단일 상품인 팽이 하나로 1조원 매출을 올리며 세계 어린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팽이의 이름은 탑블레이드. TV 애니메이션으로도 유명한 이름이다. 지금의 30~40대 부모라면 누구나 팽이를 사달라는 자녀 때문에 이 이름에 익숙할 것이다.
탑블레이드의 신화는 상상을 초월한다. 질서를 잘 지키기로 소문난 일본의 완구상들이 한국으로 건너와 사재기를 했고, 전 세계 어디서나 어린이가 있는 집이면 팽이 때문에 실랑이하지 않는 집이 없을 정도였다. 최 회장은 “아무리 작은 상품이라도 창조적인 발상과 감성으로 승부하면 전 세계 어디서나 통한다”며 장난감 개발의 창조력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자신이 어렸을 때 가지고 싶었던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세요. 장난감 개발은 거기서부터 출발합니다. 바쁘게 살다 보니까 잊고 살지만, 누구에게나 동심이 남아 있어요. 내 안의 동심을 이해하고 아이들을 애정으로 살펴보면 앞으로 이끌어갈 트랜드가 보이고 아이디어가 생겨나죠.”

낮은 곳에서 바라보면, 올라갈 일만 보인다
최 회장이 현재의 성공을 이루기까지는 참으로 많은 고난과 역경이 있었다. 최 회장은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행상을 하시는 어머니와 함께 거리를 누비며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래서 학교도 초등학교 3학년 1학기밖에 다니지 못했다. 그러다 열세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금은방에 취직해 세공기술을 배웠고, 이후 제련, 주물, 금형 등의 기술을 익혔다. 그를 오늘의 이 자리에까지 있게 한 것은 오로지 그의 인내와 열정뿐이었다. 그래서 혹자는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창의력과 혁신으로 회사를 이끌어가는 최 회장을 스티브 잡스에 비견되는 사업가로 평가하기도 한다.
“강연회에 가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사업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인가?’에요. 그런데 그런 질문을 받으면 대답이 어려워요. 사실 저에겐 힘들다는 단어 자체가 생소하거든요. 원래부터 가진 게 없었고, 배운 것도 없고, 아버지 얼굴조차 모르고 컸어요. 뭐하나 제대로 갖춰진 게 없잖아요. 그게 고난인지도 모른 채 운명처럼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살아왔는데, 더 이상 힘든 일이 뭐가 있겠어요. 조금 더 철이 들어 주변을 살펴보니 제가 세상에서 가장 부족한 사람이었어요. 낮은 곳에서 바라보면, 올라갈 것만 보이고 다 좋게 생각되죠. 사람들이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대부분 자신이 그런 감정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기도 해요. 스스로 힘들다고 최면을 걸죠.”

1초라도 더 참는 사람이 이긴다
최 회장은 청년들에게 현재의 자리에 만족하지 말고 계속 공부해 나가라고 당부한다. 그러면서 공부라는 것이 꼭 글을 외우고 기술을 익히는 것만이 다가 아니라고 한다. 학업을 통해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마음을 나누는 것이 가장 큰 공부라는 것이다. 더불어 실업난에 허덕이는 청년들에게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어렸을 때, 레슬링이나 권투를 해봤으면 알 거예요. 나는 지치고 힘들어서 죽을 거 같은데, 상대는 아직도 기운이 넘치는 것처럼 생각되죠.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포기하고 싶고 기운이 빠져요. 그럼 지는 거죠. 그런데 중요한 건 상대도 지금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면서 힘들어하고 있다는 거예요. 조금만 더 참으면 되죠. 1초라도 더 참는 사람이 이기는 겁니다. 젊기 때문에 더 인내하고 참을 수 있어요. 누구든 나보다 무엇인가를 월등히 잘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좌절하지 마세요. 우리가 인생에서 포기해야 할 것은 하나입니다. 좌절을 포기하세요.”
더불어 최 회장은 사고의 전환을 강조한다. 최 회장은 똑같은 상황이라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최 회장은 남들이 부정적으로 사용하는 말들을 역으로 자신의 한계점에 적용한다.
“다른 사람들이 ‘아니다’, ‘못한다’라는 부정적인 말을 사용하며 용기를 잃을 때, 저는 그런 부정적인 말을 다르게 사용해 왔어요. ‘왜 내가 못하냐! 아니다! 난 할 수 있다!’ 이렇게 말이죠. 그리고 모두가 불경기라며 어렵다고 할 때, 저는 그때가 기회라고 생각했죠. 계속되는 불경기라는 건 없거든요. 불경기란 투자해서 모인 돈이 잠시 지체되어 있는 거예요. 곧 호경기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죠. 그런데 그걸 못 견뎌서 스스로 자멸해 버리면 기회는 찾아오지 않죠. 불경기라면 그것을 호경기로 바꾸려고 노력해야지요.”
최 회장은 자신의 이런 메시지와 살아오면서 겪은 일화들을 모아 <멈추지 않는 팽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다른 작가의 윤색 없이 최 회장이 혼자서 끝까지 써내려간 이 책은 지나치게 솔직하고, 그런 만큼 재미가 있다. 책에는 우리가 몰랐던 장난감 개발의 뒷이야기와 최 회장의 좌충우돌 인생역정이 담겨 있다. 그중에 집에 침입한 7인조 강도 소탕작전과 심형래 대표와의 일화는 특히 관심을 끈다.

목숨을 바쳐도 아깝지 않은 아내
최 회장은 2000년 3월 29일 오전 9시 45분을 영원히 잊을 수 없다고 한다. 구로구의 온수동 자택에서 살던 시절, 거실에 있던 아내의 비명에 안방에서 TV를 보던 최 회장은 방문을 열고 거실을 내다봤다. 그곳에는 건장한 강도 두 명이 아내의 목에 칼을 댄 채 어딘가로 끌고 가고 있었다. 강도들이 최 회장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한 상태라, 최 회장은 아들이 사다 놓은 야구방망이를 들고 슬며시 접근해 칼을 들고 있던 강도의 머리를 가격했다. 이어서 강도들과의 사투가 벌어졌고, 문밖에서 대기하던 강도 세 명이 뛰어들어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강도들은 경찰서 앞에 한 명, 역 앞에 한 명까지 총 일곱 명으로 구성된 치밀한 조직이었다. 이 과정에서 최 회장은 칼에 긁히고, 내장에 손상을 입어 큰 수술까지 받아야 했다. 그런 일을 겪으면 누구나 겁을 먹고 움츠러들게 마련. 하지만 최 회장은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집요함으로 2년을 추적해 강도를 모두 소탕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게 내 안의 두려움과 싸우는 일이죠. 칼을 무서워하지 않으면 강도도 사라진다고 생각해요. 두려워하기 때문에 강도가 칼을 들고 들어오죠. 총을 두려워하니까 전쟁이 그치지 않는 이치와 같아요. 마찬가지로 두려움이 많은 사람은 인생에서 고난이 그치질 않아요. 뭐든지 죽기로 하면 안 되는 일이 없습니다. 먼저 겁먹고 두려워하면 될 일도 안 돼요.”
최 회장에게 강도를 보고 도망갈 기회가 있었는데, 도망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느냐고 묻자 “아내가 다치느니 제가 죽는 게 낫죠”라고 대답한다. 그만큼 그의 아내 사랑은 각별하다. 젊은 시절 아내에게 첫눈에 반한 최 회장은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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