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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거리두기
직장 내 거리두기
  • 전현정
  • 승인 2021.11.10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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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직업을 가지든 사람은 많은 시간을 일하면서 보내게 된다. 일을 한다는 것이 인생이나 행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언젠가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자신이 하는 일 자체를 좋아하고 인간관계가 무난하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그러나 직업적 만족도와 원만한 인간관계라는 두 가지를 모두 갖추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니다.

지난 6월 4월 인하우스카운슬포럼(IHCF) 여성분과에서 「Up the Laddder Well - 조직생활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지혜」라는 주제로 개최한 웨비나에 패널로 참여하였다. ‘조직생활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동료와의 관계 형성과 발전, 업무와 승진, 조직생활에서 살아남기’라는 주제로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면서 일과 행복에 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경쟁적인 조직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성과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변호사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성과의 중요성을 더욱 실감하게 되었다. 회사라는 조직은 성과를 내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마다 성과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매우 다르다. 수익을 올리거나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내는 것을 성과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기본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을 성과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판사로 20여 년 동안 근무할 동안에는 비슷한 패턴으로 일했다. 합의부에서 일할 때에는 구성원 세 사람이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생활한다. 재판부 구성원은 1년 내내 변화가 없다. 직업인으로서 하나의 팀이 자 생활의 세계도 공유한다. 세 사람으로 ‘하나의 팀’이 구성된다고 볼 수 있는데,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재판부가 좋은 결과를 낼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함께 일하기 힘든 부장판사나 배석판사를 일컬어 ‘벙커’나 ‘벙키’라고 부르기도 한다. 벙커라는 말은 1980년대에 생겼다고 하는데, 2000년대 들어 벙키라는 말도 생겼다. 이런 말은 재판부 구성원 사이의 협력이 중요하다는 것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 한다.

회사에서는 비슷한 구성원이 오랜 기간 바뀌지 않고 같이 일을 한다. 구성원 사이에 관계의 밀접성은 판사보다 훨씬 덜하지만, 구성원이 거의 바뀌지 않기 때문에 서로 맞지 않으면 직장생활이 더 힘들 수 있다.

법률가는 다른 어떤 직업보다도 구성원 중 한 사람이 제 역할을 못하면 다른 사람이 해야 할 일이 늘어난다. 많은 일을 대신해야 할 수도 있고 기다림의 과정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사람이 성숙해지고 리더십도 키워질 수 있다. 단기적으로 성과를 내는 데 조급한 경우라면 다른 구성원에 대한 배려나 기다림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런 배려가 더욱 현명할 수 있다.

누구나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치고 직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성과를 내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런 마음을 접고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 원한다고 해서 뭐든지 할 수 있고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욕심 부린다고 해서 늘 좋은 것도 아니다. 직장생활뿐만 아니라 인생도 마찬가지다.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성과에 대해 초연하고 일 자체에서 만족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에 직장 내 괴롭힘이 많이 표출되고 있다. 개인적인 성향이 문제되는 경우도 많지만, 성과를 내기 위해 조급한 마음이 쌓여 생긴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직장 내 직위는 전통적으로 상하관계로 짜여 있다. 직장 내 구성원을 수직적으로 생각하면 다른 구성원이 일을 잘못할 때 화가 날 수 있다. 그러나 존경하는 사람이나 좋아하는 사람을 생각해 보면 모두 수평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직적인 관계에서는 존경심이 우러나오지 않는다. 좋은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좋은 관계는 결국 친구 같은 관계이다.

아들러 심리학을 쉽게 풀이한 『미움받을 용기』에서는 행복의 지름길에 대해 ‘사람 사이의 적당한 거리’, ‘수평적 관계’, ‘타인의 영역을 인정하는 것’, 세 가지로 요약하여 설명한다. 원만한 인간관계를 맺으려면 사람 사이에 어느 정도의 거리가 필요하다. 거리가 너무 가까우면 상대와 마주보고 얘기조차 할 수 없다고 한다. 아주 가까운 관계에서는 상대방을 타인으로 의식하기도 어렵다. 이러한 관계에서 타인의 영역을 내 삶처럼 생각하고 간섭하면 도리어 관계가 멀어질 수 있다.

자신과 타인 사이의 거리를 인정해야 하는데도 그 거리를 잊는 순간 그 사이에 돌이킬 수 없는 거리가 생긴다. 직장동료를 너무 가깝게 대하려고 하기보다는 적절한 거리를 인정하면서 존중하고 배려해야만 거리두기가 주는 평화로움이 다가온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파를 억제했다면, 직장 내 거리두기는 직장 내 괴롭힘을 예방하는 한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글 전현정 변호사 (법무법인 케이씨엘) | 사진 Queen DB

 

 

전현정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1990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23년간 판사로 일하다
서울중앙지법부장판사를 끝으로 2016년 법원을 떠났다.
현재는 법무법인 KCL 고문변호사다.
한국여성변호사회 부회장, 대한변협 양성평등센터장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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