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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잡지를 아시나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잡지를 아시나요?
  • 서혜란
  • 승인 2021.11.18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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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책
1906년 가정주부를 대상으로
발행된 한국 최초의 여성잡지
<가뎡잡지> 제7호(1906. 6. 25 창간).
출처 현암사 한국잡지백년1.

 

이 땅에서 출판된 최초의 여성잡지는 「가뎡잡지(家庭雜誌)」라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대한제국 시기인 1906년 6월 25일에 경성에서 창간한 이 잡지는 1907년 1월 제1년 7호 발행 이후 재정난으로 휴간하였다가, 1908년 1월에 제2년 1호로 속간하였고, 그해 8월에 7호를 발간한 것까지 확인된다. 그러나 언제 폐간하였는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가뎡잡지」는 낱권정가 10전, 반년 구독료 52전, 일년 구독료 94전이며, 우송료는 낱권 5리, 반년치 3전, 일년치 6전이라고 표지와 권말에 박아 놓고, 서울과 평양에 소재한 7-8개 판매처도 밝혀두었다. 그러나 판매와 대금회수가 원활하지 않았던지 독촉광고를 잡지에 싣곤 하였다. 운영비 대부분은 뜻을 같이하는 찬성원(贊成員)(국내 각지와 일본, 미국, 하와이 주재 통신원들과 함께 그 명단이 매호 권말에 수록되어 있다)의 기부금에 의존하였지만, 결국 재정난에 발목을 잡힌 것 같다.

「가뎡잡지」의 운영과 집필에는 유일선(창간 총무겸편집인), 신채호(속간 편집겸발행인), 주시경, 전덕기, 이준, 안창호, 장지연, 양기탁, 이동휘, 유성준 등 상동청년학원(尙洞靑年學院)과 신민회(新民會)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계몽운동가들이 주로 참여했다. 이 잡지의 출판 의도는 신채호가 속간호에 실은 「우리 잡지를 이어 발간하는 일로 보시는 이에게 고하는 말씀」에서 “이 잡지가 가정교육의 목탁이 되어 전국 이천만 동포 가정의 변혁을 일으키고 문명한 새 공기를 받아 새 나라 백성이 되게 하고자 함이오니, 이는 우리 잡지의 의무와 목적과 회포와 희망”이
라고 선언한데서 잘 드러난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나라의 명운이 저물어가던 시국에 가정을 통한 구습 타파와 문명화(서구화)를 지향하는 애국계몽의 도구로 삼고자 한 것이 잡지 발행의 뜻이었다(나중에 초대 사장 유성준은 도지사와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 등 고위직을 역임하고, 초대 편집인 유일선은 일본조합교회 목사로 내선일체를 적극 주장하는 등 변절하여 모두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렸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왜 하필 가정과 여성을 대상으로 했을까? 창간호에 실린 「가뎡잡지취지서」에서 “가뎡(가정)에 권솔이 잘 합하고 못 합함은 일신흥패에 관계될 뿐 아니라 그 영향이 사회성쇠에 미치나니 어찌 가정을 한 권솔이 모여 사는 조그마한 범위라 가벼이 여길 것이리요”라고 한 유일선의 말에 해답이 있다. 가정을 사회와 국가와 세계를 구성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가장 중요한 기본요소로 보고, 가정주부로서 그리고 장차 국가와 사회의 기둥이 될 아들(딸이 아니라)을 교육하는 어머니로서 여성의 역할에 주목한 것이다.

잡지는 평론, 논설, 기서, 동서양가정미담, 위생, 잡록(웃음거리, 자연의 교훈), 잡보(대한매일신문 등 신문기사 발췌) 같은 고정기사와 ‘백과강화’로 구성되었다. ‘백과강화’는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대부분의 여성독자를 위하여 한글, 이과(과학), 산술, 역사, 지리 과목의 기초 지식과 ‘아해이야기’를 연재한 일종의 독학교본이다. 편집자와 집필자 중에는 목사 등 개신교계 인사와 정치사회단체에 적극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이거나 종교적 색채를 담은 기사는 거의 전무하다는 점도 눈에 띄는 특징이다.

잡지의 논조를 보면, 자녀란 부모의 노후를 의탁할 소유물이 아니며, 부모는 스스로 모범을 보이면서 자녀교육에 전념해야 함을 강조하고, 평생 놀고먹는 양반 남성을 비난하는 등 가족관계에 대한 근대적 시선을 엿볼 수 있다. 또 여자에 대한 교육을 권장하거나, 남존여비(男尊女卑)의 폐단을 비난하기도 한다(변월당, 「몇백년 죄인을 면할 일」 「가뎡잡지」 제2년 제7호). 그러나 이 잡지가 추구하는 여성상은 여전히 육아와 가정교육과 가사노동에 헌신하는 어머니, 가장인 남편에게 순종하는 아내였다는 점에서 남녀평등 측면에서 분명한 한계가 보인다.

「가뎡잡지」는 순 한글로 출판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지이자 대중교양지이지만, 남아있는 책 수가 적은 탓인지 의외로 관련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글 서혜란(국립중앙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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