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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초기 일본유학생 잡지에 나타나는 여성 인식(1)
근대 초기 일본유학생 잡지에 나타나는 여성 인식(1)
  • 서혜란
  • 승인 2022.01.20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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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책

조선이 봉건 체제를 스스로 혁파하지 못한 채 외세에 휘둘리고 급기야 일제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근대로의 전환을 맞이하게 된 것은 우리 민족사에서 뼈아픈 지점이다. 그 혼란과 절망의 시대에 일본 유학을 감행한 식민지 조선 젊은이들의 자기 인식은 모순적 사회의 개혁과 몽매한 민중의 계몽을 책임져야 할 지식인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따라서 봉건적 인습의 희생자로서 조선여성이 처한 현실이 그들의 관심사에 포함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국내에서 발간된 최초의 잡지. 1896년 11월 20일에 창간된 「대죠선독립협회회보」
국내에서 발간된 최초의 잡지. 1896년 11월 20일에 창간된 「대죠선독립협회회보」

 


조선은 1894년 갑오개혁을 계기로 관비(官費)를 들여 많은 유학생들을 일본에 파견했다. 이들은 1895년 5월 12일 ‘대조선일본유학생친목회’를 결성하고, 1896년 2월 15일 「친목회회보(親睦會會報)」를 창간했다. 한국인이 발행한 최초의 잡지로 지칭되는1) 이 잡지는 ‘자주독립’과 ‘문명개화’를 주된 화두로 다루었다.

190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본 유학생의 주류는 스스로 유학을 선택한 사비(私費)유학생으로 바뀌었는데, 이들은 출신 지역이나 학교, 관심사 등에 따라 많은 단체를 만들고, 잡지를 발간하였다. 그 중에서 서북지방 출신 유학생 단체 ‘태극학회’가 1906년 8월 창간한 「태극학보(太極學報)」가 처음으로 여성문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창간호에 인재 양성의 토대로서 여자교육의 중요성을 설파한 김낙영의 글 「녀 교휵」이 실렸다. 특히 조선 여성 최초의 정규 일본유학생 윤정원2)은 이 잡지에 기고한 네 편의 글3)에서 조선여성의 감화력과 실천력을 평가하며 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했는데, 이는 여자교육을 국가와 민족 번영과 연결시킴으로써 여성을 도구화하는 당시 기득권 남성들의 보편적 논리와는 다른 시각을 드러냈다.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庚戌國恥)를 당한 일본 유학생들은 1911년 5월 21일에 도쿄에서 ‘조선유학생친목회’를 결성하고, 기관지 「학계보(學界報)」를 1912년 4월 1일자로 창간하였다. 그러나 이 잡지는 더 이상 발간되지 못한 채 창간호가 곧 종간호가 되고 말았다. 잡지 내용이 문제가 되어 일본당국으로부터 단체해산 명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여기 수록된 논설 「부인론(婦人論)」은4) ‘남녀는 생리적 차이만 있을 뿐 능력상 우열을 말할 수 없다’며 남녀평등을 주장한다. 다만 ‘망령되게 여권(女權)을 주창하여 가정평화의 기초를 파괴하거나, 도덕관습의 미풍(美風)
을 해치는 일’을 경계하기를 잊지 않음으로써 당시 남성지식인들이 가졌던 여성문제에 대한 인식의 한계를 보여준다.


식민지 조선인 유학생들은 1912년 10월 27일 ‘조선유학생학우회’를 다시 결성하고, 기관지 「학지광(學之光)」을 창간했다. 1914년 4월 2일 창간호 발행 이후 1930년 12월 27일까지 총 30호를 발간한5) 이 잡지는 일본유학생 사회는 물론이고 조선 본국과 북간도, 미국에까지도 구독자가 있을 정도로 큰 영향을 끼쳤다. 역대 편집진과 필진 중에는 이광수, 전영택, 김병로, 신익희, 장덕수, 김억, 김동인 등 근현대사의 주요 인물들이 많이 눈에 띈다. ‘현대 사조를 융합하여 조국민중의 지식을 증진함’을 책무로 표방한 이 잡지에는 여성문제를 다룬 글이 여럿 실렸다.


그러나 「이상적 부인(理想的 婦人)」(3호)과 「잡감(雜感)」(12호, 13호)에서 현모양처로 표상되는 여성에게 부여된 관습적 도덕을 맹렬히 비난하고, 조선의 부인들이 지식과 기예를 쌓아 ‘미끄러져 머리가 터질 각오로’ 새로운 길을 밟아 나가야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나혜석을 제외하면, 대다수 남성 필자들의 글은 자유와 평등이 박탈된 여성현실을 비판하면서도 그 원인을 여성 스스로 각성과 준비가 부족한 탓으로 돌리거나 바른 품행으로 원만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여성의 본분이라는 계몽적 메시지로 마무리하곤 했다.

글 서혜란(국립중앙도서관 관장)
 

글 서혜란(국립중앙도서관 관장)
서혜란(국립중앙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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