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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과 소통하는 한국문학의 살아 있는 감성 신경숙이 알려주는 타인과의 소통법
세계인과 소통하는 한국문학의 살아 있는 감성 신경숙이 알려주는 타인과의 소통법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2.01.10 13: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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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 대해서 좀 더 너그럽고
타인의 내면에서 빛나는 것들을 발견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신경숙 작가를 만나기로 한 날은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이었다. 약속장소인 평창동의 미술관에 먼저 도착해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치기가 발동해 유리창에 입김을 부니 금세 뿌연 성에가 차올랐다. 성에 위에 ‘신경숙’이란 글자를 적어본다. 그리고 성에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빨간 스웨터를 입은 신경숙 작가가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신경숙 작가는 기자에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오늘 정말 몸서리쳐질 만큼 춥네요!”

세계인의 마음을 울린 작가
소설가 신경숙은 2008년 발표한 장편 <엄마를 부탁해>가 세계 32개국에 판권이 팔리며 세계적 작가로 주목받았다. 그리고 2010년 8월부터는 1년간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북미 7개국과 유럽 8개국을 순회하며 세계의 독자들과 만났다.
“제가 다 경험한 게 아니라 객관적 기준을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세계가 냉소적인 기계문명 위주로 흘러가는 추세이다 보니 한국 문학에 담겨 있는 인간관계의 회복이나 희망 같은 것들이 감명을 주는 거 같아요. 그리고 최근엔 국내의 젊은 작가들 작품도 꾸준히 번역되고 있어서 한국문학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도 예전에 비해 많이 높아진 것 같아요.”
1년간의 미국생활을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신경숙 작가는 전북 정읍의 고향집을 찾아 부모와 시간을 보내고, 그간 썼던 단편들을 모아 8년 만에 <모르는 여인들>이라는 소설집을 펴냈다.
“부모님은 우리 형제들이 태어난 집에서 아직까지 살고 계세요. 젊은 날에는 병이 손님인데 부모님 연세 정도 되면 병이 친구가 되는 거 같아요. 병을 친구 삼아서 살고 있는 부모님을 보면 마음은 편치 않지만, 두 분이 제가 태어난 집에서 함께 살고 계신 건 큰 복이기도 하죠. 부모님께 전화는 자주 드리는데, 어머니는 항상 모자라신가 봐요. 전화 안 한다고 항상 야단이세요. 저는 전화를 참 자주 하는 거 같은데 말이죠. 전화하면 거의 첫 말씀이 ‘왜 전화 안 하냐!’에요. 그럼 제가 ‘어제 했잖아요’라고 대답하고 어머니는 ‘음…’ 하고 한동안 말이 없으시죠(웃음).”

동시대인들과의 연결고리를 찾아가는 여정
<모르는 여인들>에는 신경숙 작가가 마음이 혼란스럽고 어딘가에 구멍이 나버린 듯한 느낌이 들 때 쓴 단편이 많다고 한다. 그리고 각각의 소설에는 인간관계에 대한 진지한 물음들이 담겨 있다. 신경숙 작가는 소설을 쓰며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연결된지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과 오류를 자신의 삶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가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건, 서로가 모르는 사이에 서로에게 깊이 관련되어 가는 것이 아닐까요. 서로의 삶이 보이지 않는 고리로 연결되어 있어서 삶의 어느 순간엔 전혀 알지도 못하던 사람에게 위로나 치유를 받기도 하죠. 허물어지고 부서지는 삶에서 살아갈 이유를 서로에게 순간순간 비춰주기도 하고요. 제가 작품을 통해서 다른 시간 속으로 나아갈 수 있었듯이 읽는 분들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동시대인들과의 연결고리를 찾는 경험은 물음표뿐인 삶의 퍼즐에서 감춰진 첫 글자를 열어본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그 첫 글자를 바탕으로 수많은 어휘가 쏟아져 나오고 무궁무진한 상상이 시작된다. 신경숙 작가는 세계인에게 ‘엄마’라는 표제를 던졌다.
“<엄마를 부탁해> 같은 경우에는 한국 독자들이 읽어내지 못하는 다른 지점들을 외국 독자들이 읽어내는 경우가 많았어요. <엄마를 부탁해>를 그 안에 숨겨진 사회적 상황이나 세대 간의 갈등으로 해석하거나 전통과 현대의 소통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었죠. 하지만 무엇보다 세계인이 공통적으로 공감하는 것은 우리가 ‘엄마’라는 상징을 잃어버린 세계에 살고 있다는 점이었어요. 우리는 자기가 태어난 곳에서 살지 못하고 교육이나 경제적인 이유로 유목민처럼 이동하며 살 수밖에 없잖아요.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을 잃어버렸을 때의 당혹감을 이미 경험하고 살고 있었던 거지요. 그러니 공감할 수 있었던 거고요.”

스스로 생각해서 재발견해내는 힘이 필요하다
시대가 변하면서 소통의 방법도 획기적으로 변했다. 이제는 SNS가 소통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일부 작가들은 SNS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기도 하지만, 또 일부 작가들은 SNS에 대한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SNS에 대한 신경숙 작가의 생각은 어떨까.
“일단 저는 SNS는 안 해요. 사실은 안 하는 것과 못하는 것의 중간 정도에요. 뭔가를 바로바로 보여주고 또 바로바로 말하는 것에 익숙지가 않아요. 저는 무엇이든 생각하고 느끼는 데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타입이에요. 그리고 SNS라는 게 갑자기 생긴 게 아니고 삐삐에서 휴대폰으로 넘어왔듯이 발전의 과정 중에 있는 거잖아요. 그런 과정에서 적응기를 거쳐 탄생한 것들이니 분명히 장점이 있겠지요. 사실 외국에 있을 때는 가끔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낄 때도 있었어요. 국경 너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최근 소식을 들을 수 있는 유용한 소통기구인 거 같아요.”
그러면서 신경숙 작가는 기자의 의견을 물어보았다. 물론 ‘작가와의 문학 토크’라는 형식으로 이뤄지는 대담이었지만, 기자라는 특성상 주로 묻는 것에 익숙했기에 신경숙 작가가 “어떻게 생각해요?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라며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볼 때는 당황되기도 했다. 사실 신경숙 작가는 거의 모든 질문에 기자의 느낌과 생각을 물어보고 신중히 경청했다. 어수룩한 답변에도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주는 작가의 정겨움에 기자는 본연의 신분을 잊고 금세 수다스러워지곤 했다. 지면에는 신경숙 작가의 말만을 옮겼다.
“SNS로 인해 무엇을 보고 자기화시키는 힘이 줄었다는 느낌은 들어요. 저는 무엇이든 간에 자기화시키는 힘이 굉장히 필요하다고 보거든요. 그런데 자신의 생각조차도 정보를 통해서 얻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자신만의 생각으로 결정짓거나 합리화시키는 과정 없이 그냥 휩쓸려 가는 거 같은 느낌도 들어요. 무언가를 끝까지 붙들고 생각해서 스스로 새로운 의미를 얻어내는 힘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진정한 소통이다
소통이란 듣고 말하는 것을 아우르는 용어다. 하지만 우리는 듣기와 말하기가 너무 이분화되어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신경숙 작가가 말하는 소통이란 “내 이야기를 하는 만큼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이러한 균형이 적절하게 유지되지 않을 때 갈등은 더욱 심해지고 대화를 하기보다는 체념해버리기 쉽다. 신경숙 작가는 대화의 ‘정성스러움’을 강조한다. 뭔가를 꼭 전달하고 싶을 때는 그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정성스러움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상대의 이야기를 정성스럽게 듣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어디에서나 자유롭게 이뤄지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갈등을 풀자고 만나자고 해놓고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으면 갈등이 더 심해지죠(웃음). 내 이야기를 하고 싶으면 당연히 상대방의 이야기부터 귀담아들어야지요. 소설도 말하는 힘보다 듣는 힘이 더 중요해요. 동시대인들과 같은 순간을 살며 많은 것을 전해 듣고 느끼면서 얻게 된 감각적 성찰이 문장으로 만들어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소설가는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서 듣는 사람의 역할을 하는 경우가 더 많아야 하죠.”
우리는 말은 많아졌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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