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2-05-22 17:30 (일)
 실시간뉴스
왜 일하냐고 묻는 분들에게
왜 일하냐고 묻는 분들에게
  • 이복실
  • 승인 2022.02.28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동안 수많은 질문을 서로 주고받으며 살고 있지만, 젊은 시절에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 중의 하나가 “왜 일을 하세요?”였다. 신입 직원 시절 나의 상사도 내가 왜 일을 하는지 영 궁금한 모양이었다. 어느 날 불쑥 “이 사무관이 일해야 하는 상황인 걸 보면 남편이 돈을 못 버나 봐?”라고 물었다. 그때는 20대. 그냥 넘기기에는 너무 젊었다. “네. 맞아요. 남편이 돈을 못 벌어서 제가 일해야 해요.”라고 발끈한 기억이 난다. 심지어 나의 시댁 식구들도 그런 질문을 했다. “아니 얼마나 번다고 일을 해?” 이런 투였다.

내 세대 중 일하는 여성들은 아마 나와 비슷한 경험이 다 있을 것이다. 여성이 왜 일하는지 궁금하고 여성과 같이 일하는 것이 불편하던 시절이었다. 왜 일하는지 궁금한 것은 타인만이 아니었다. 딸들도 툭 하면 “엄마, 왜 일해? 집에 있으면 안 돼?”라고 툴툴거렸다. 항상 얼버무리다가 어느 날 나도 반격했다. “왜 너는 아빠에게는 안 묻고 엄마에게만 묻니?” 딸의 대답은 신속하고 명확했다. “아빠는 남자잖아.” 어린아이의 마음에도 ‘엄마는 집안일, 아빠는 바깥일’이라는 공식이 자리잡고 있었다.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아이는 벌써 사회가 말하는 것을 배우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세상이 변화하여 여성에게 왜 일하냐고 묻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설마 지금도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몇 년 전 국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기관 업무보고가 끝난 후 질의 응답 시간이었다. 갑자기 국회의원이 여성 기관장에게 봉급을 물었다. “원장님 봉급 얼마 받으세요?” 그 기관장은 9,000여만 원이라고 답변하였던 것 같다. 그런데 여기에 사족을 붙였다. “적습니다.” 아마도 그녀는 다른 공공기관에 비하여 그 기관의 봉급이 적다는 의미로 그 이야기를 했었을 것이다. 실제로도 그 기관은 기관장뿐만 아니라 일반 직원들도 다른 산하단체보다 봉급 수준이 낮았다. 그런데 K 의원은 갑자기 톤을 높이더니 “아니 여자 봉급치고 무엇이 적어요?”라고 호통을 쳤다.

그가 근로자 평균 연봉이 얼마인데 적다고 하느냐, 최저임금이 얼마인데 배부른 소리를 하느냐고 했으면 그의 호통에 공감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자 봉급치고는’의 발언에는 여자가 일하는 것은 덤이라는 생각과 여성의 일에 대한 평가절하도 함께 내포되어있다. 금융권 여성 CEO인 P는 “동료들과 골프장에 가면 골프장 직원들이 사장이 아닌 동료들에게는 사장님이라고 호칭하면서도 정작 사장인 나는 사모님이라고 불러요.”라고 말했다. 직장 밖에서 부하 직원들이 사장님하고 부르면 주변에서 자기를 희한한 사람으로 쳐다본다는 것이다.

여성이 일하는 이유는 남성의 경우와 다르지 않다. 학업과 직업이 이어지는 것은 당연하고, 거기에 남녀차이가 있을 수 없다. 지금은 대학 진학률과 20대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여성이 남성보다 높다. 그러나 임신, 출산, 육아를 담당하는 30대에서 경력단절 현상이 크게 나타난다. 출산과 육아를 겪고 나면서 일과 가정 사이에서 저울이 왔다 갔다 하기 때문이다. 주변에서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우수한 여성들과 우수한 남성들을 보면 성별에서 오는 능력, 인성, 태도 면에서 아무런 차이가 없어요.”라고 말한다.

우수한 사람들은 남성, 여성이 아니고 그냥 인재이다. 하지만 그렇게 우수한 여성들도 휘청거릴 때가 있는데, 여성들이 출산과 육아의 이중고를 겪을 시기이다. 우리나라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이 OECD 평균 수준 이상으로 증가하면 1인당 국민소득이 2,796달러 증가한다는 연구보고서도 발표된 바 있다. OECD 보고서(Clo sing the Gender Gap, Act Now, 2012)에서도 남녀격차를 해소하면 2030년까지 1인당 GDP 연 0.9%씩 추가 성장이 가능하다고 했다.

‘여자 봉급치고는’에 담겨있는 ‘여성의 일은 덤’이라는 편견이 존재하는 한 양성평등은 요원하고 여성인력 활용은 멀어져만 간다. 하지만 지금 국가 경제를 걱정하는 저성장시대를 맞이하여 사회와 경제를 발전시키는 성장의 원동력이자 자원으로 여성인력을 제대로 활용해야 할 시기임을 우리 모두 기억해야 할 것이다.
 

글 이복실(전 여성가족부 차관) 
 

 

이복실은…

전 여성가족부 차관,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 회장.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를 졸업,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에서 교육학으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1985년 여성으로서 네 번째 행정고시 합격자이다. 30년간 중앙부처에 재직했으며,
2013년 여성가족부가 설립된 이래 최초 여성 차관으로 임명됐다.
저서로는 <여자의자리 엄마의 자리>, <나는 죽을 때까지 성장하고 싶다>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