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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Queen 다시보기] 1991년 4월호-최초 단독 인터뷰
[옛날 Queen 다시보기] 1991년 4월호-최초 단독 인터뷰
  • 양우영 기자
  • 승인 2022.05.28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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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4월호

'7 · 6거사계획'발각으로 중앙정보부장에서 물러난 후 한 · 중 예술교류 사업가로 변신한 김재춘 장군의 '그후 30년' 풀스토리

"권력이란 무상한 것, 서예와 한 · 중문화교류에 남은 힘 쏟겠습니다"

5 · 16군사혁명의 주역으로서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김재춘 장군을 본지에서 단독으로 만났다. 

반(反)김종필의 기수로서 이름을 드날리며 한때 최고 권좌까지 넘보던 그가 육사11기를 주축으로한 청년장교들의 '7 · 6거사 미수사건'으로 중앙정보부장에서 물러난 후 30년간 소외 당하며 살아온 이야기를 최초로 공개한다.

1991년 4월호-최초 단독 인터뷰1
1991년 4월호-최초 단독 인터뷰1
1991년 4월호-최초 단독 인터뷰2
1991년 4월호-최초 단독 인터뷰2

 

노혁명가 김재춘씨와 '한 · 중예술연합회'

서울 마포구 도화동 S빌딩 804호. '한 · 중예술연합회'사무실을 찾아갔을 때 김재춘씨(65세)는 마침 중국 연변에서 고서화를 가지고온 교포와 한창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월전' '여초'등 이름만 보아도 금방 알 수 있는 동양화 · 서예의 대가 작품들이 사무실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가운데 돋보기를 들고 작품을 살피는 그의 모습은 인사동 고서점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이 지긋한 고서화 수집가의 모습과 별반 다름없이 보였다. 

이러한 모습은 비록 30년 세월이 흘렀다고는 해도 그가 5·16군사혁명 당시 제6관구 사령부 참모장으로 혁명저지세력을 단독으로 뚫고 들어가 혁명을 성공의 길로 이끈 장본인일까 의아심을 갖게 했을 정도였다. 

군정기간 동안 서슬퍼런 중앙정보부장의 권좌에 앉아 한때나마 최고권력자 박정희 의장의 민정참여 의지를 꺾기도 했던 막강한 권력의 소유자 김재춘.

방문객이 옆에 있는 것도 잊은 채 돋보기 너머 그림을 감정하려고 80㎏이 넘는 거구를 굽히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 과거 추상 같은 권력자의 모습은 도무지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날, 박정희 의장을 쏘아보며 "혁명공약을 지키십시오. 민정참여는 안됩니다"고 주장해 그를 움찔하게 했던 특유의 작고 매서웠던 눈으로 이제 화가의 섬세한 붓자국을 따라 다니고 있었다. 

20년 전부터 서예에 관심을 가지고 지난 75년 '한 · 중예술연합회'를 만들어 민간차원의 한국 · 중국간 예술교류의 일을 해도고 있다는 그는 한동안 자신이 해오는 일 외에 다른 일로 사람을 만나본 일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며 그동안 두문분출하고 지내온 사정을 이야기한다.

김재춘 중앙정보부장과 청년장교들의 '7 · 6거사계획'

"부장님, 4대 의혹사건 관련자와 부패분자들을 우리 손으로 직접 처단하겠습니다"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2년의 군정끝에 민정참여 계획을 속속 진행하던 63년 6월 말경, 남산 중앙정보부 부장실에 두 명의 청년장교가 불쑥 찾아들었다.

두 청년장교는 박정희 의장의 전속부관 손영길 소령과 육군방첩대 소속의 한 대위였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언성을 높이며 재차 질문하는 두 장교를 부장은 묵묵히 바라보았다. 불타듯 이글거리는 눈빛이 금방이라도 일을 저지를 듯한 모습이었다. 

한동안 납덩어리처럼 무거운 침묵이 흐른 뒤 부장의 입이 열렸다. 

"귀관들의 울분을 나도 이해한다. 그러나 귀관들의 방법대로라면 쿠데타를 하자는 것 아닌가. 성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자제하길 부탁한다. 순리적인 해결책을 찾아보기로 하자"

부장은 그들을 일단 진정시켰다. 국민의 여론도 있으니 박의장으로부터 어떤 조치가 있을 거라며 그들을 달랬다.(중략)

 

Queen DB

[Queen 사진_양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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