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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헌 문인사예(文人四藝) 차회 6 - 안빈낙도의 삶
청명헌 문인사예(文人四藝) 차회 6 - 안빈낙도의 삶
  • 김홍미 기자
  • 승인 2022.05.29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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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탐구
안빈낙도가 쓰여진 혜민 스님의 글귀와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카네이션 꽃과 은은한 향이 어
우러진 귀한 자리였다.

 

눈발이 날리는 겨울에 시작된 청명헌에서의 문인사예 차회가 마지막 시간을 맞았다. 마지막이라고 특별할 것은 없다며, 늘 그랬듯 차를 마시고 좋은 글과 맑은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다. 편안함과 여유를 느끼는 선물 같은 마지막 차회를 보냈다.

중국 송나라 때 문인들이 갖추어야 하는 네 가지 교양으로 차(점다, 點茶), 향(분향, 焚香), 그림(괘화, 掛畵), 꽃(삽화, 揷花)를 말하는 문인사예. 향을 피우고 꽃과 그림을 감상하며 차를 마시는 시간을 통해 몸과 마음을 안정시키고 고기물을 감상하며 미술에 대한 미감과 안목을 키우는 시간으로 마지막 시간을 맞이했다.
 

주어진 삶에 만족하며 도를 즐기는 삶, 안빈낙도

안빈낙도는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도를 즐겨 지킨다는 뜻으로 공자가 제자인 안회에게 건넨 말에서 유래한 고사성어다. 공자가 아끼고 사랑했던 제자 안회는 스물아홉 살에 백발이 될 정도로 열심히 학문을 익혔을 뿐 아니라, 성품이 어질고 너그러워서 주변 사람에게 존경을 받았다. 하지만 안회에게도 부족한 것이 있었다. 평생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던 것. 그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성인의 도를 추구하는 데에만 신경썼다. 이런 안회를 공자는 크게 칭찬했다. “변변치 못한 음식을 먹고, 누추하기 그지없는 곳에 살면서도 아무런 불평이 없구나. 가난을 예사로 여기면서 여전히 성인의 도를 생각하니 이 얼마나 장한가.” 이 말이 유래가 되어 오늘날 안빈낙도는 주어진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도를 즐기는 삶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오늘은 추사 김정희 선생의 제사를 모시는 혜민스님이 쓰신 글귀와 함께한다. 전서로 쓰여진 글씨인데 마치 그림처럼 회화성이 높은 글자체다.
 

욕심을 부리지 않는 원행 스님의 꽃꽂이

차 자리를 가질 때마다 보게 되는 원행 스님의 꽃꽂이는 늘 눈길을 사로잡는다. 일본의 차 자리 꽃꽂이에서는 일단 화병에 꽃을 꽂으면 그 상태에서 몇 번 꽃을 움직여 적당한 모양새를 잡고 손을 놓는다고 한다. 꽃을 다시 뺐다, 넣었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벌어진 일을 돌이킬 수 없듯이 가위질을 해서 내 손을 떠나 화병으로 던져 넣은 꽃에는 미련을 두지 않는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화병에 비해 꽃이 너무 높거나 많으면 풍성하고 화려해 보일지는 모르지만 안정감이 없어서 보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차 자리에는 화려한 꽃꽂이보다는 한두 가지 색으로 소박하고 단아한 멋을 낸 꽃꽂이가 어울린다고 할 수 있다. 일단 화병에 들어간 꽃에는 미련을 두지 않는 것, 조금은 부족한 듯 보여도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 그것이 세상살이를 빚댄 스님의 꽃꽂이 비결이다. 이번 찻자리에서는 지난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부모님과 스승님, 평소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은 이들에게 선물하는 꽃인 카네이션을 준비했다.
 

좋은 향과 아름다운 향로가 만난 향연(香煙)

오늘의 향은 송나라 혹은 금나라 때 만들어진 자주요 흑유 수각향로에 핀 전향이다. 전향은 향을 가루 내어 전서 모양으로 만든 것을 말한다. 아무리 좋은 차라도 일회용 종이컵에 마시면 운치가 떨어진다. 향도 마찬가지다. 좋은 향과 아름다운 향로가 만나 멋진 향연(香煙)을 만들어내는 모습은 너무나 황홀하다. 현대에 와서 향을 피우는 일은 예전보다 훨씬 편해졌다. 예전에는 눈과 손의 감각만으로 향로 속 숯불의 세기를 조절해야 했다고 한다. 숯불이 약하면 향이 타지 않고, 불이 너무 세면 향의 목질 부분이 타면서 향기를 탁하게 만든다. 전기 향로에는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기능이 있어서 향의 종류나 본인의 취향에 맞춰 온도를 조절해놓으면 알아서 최고의 향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전기 향로가 편리함을 가져다준 대신 숯불을 피우는 즐거움, 향로에서 전해지는 따뜻함, 수고로움의 결과로 맑고 시원한 향기를 얻었을 때의 성취감은 사라졌다. 향은 차와 마찬가지로 옛 사람들의 일상 속에 깊숙이 스며 있던 문화다. 때로는 심신을 치료하는 약으로, 때로는 문인들의 벗으로, 때로는 조상과 신명에게 올리는 공양물로 사용되었다.

 

1 전서로 쓰여진 글씨는 그림처럼 회화성이 높아 자꾸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2 전향은 향을 가루내어 전서 모양으로 만든 것을 말하는데 불을 붙이면 그 모양대로 천천히 향이 타들어가 독특한 무늬를 남긴다. 3 화사한 분홍색 카네이션이 풍성하게 꽂힌 화병. 청자 양이병으로 고려 때 만들어진 작품이다. 4 송나라 혹은 금나라 때 만들어진 자주요 흑유 수각향로.
1 전서로 쓰여진 글씨는 그림처럼 회화성이 높아 자꾸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2 전향은 향을 가루내어 전서 모양으로 만든 것을 말하는데 불을 붙이면 그 모양대로 천천히 향이 타들어가 독특한 무늬를 남긴다. 3 화사한 분홍색 카네이션이 풍성하게 꽂힌 화병. 청자 양이병으로 고려 때 만들어진 작품이다. 4 송나라 혹은 금나라 때 만들어진 자주요 흑유 수각향로.

 

우리가 즐겨 마시는 녹차 이야기

차를 이야기하다 보면 차 문화의 발상지인 중국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에는 다양한 제다법과 셀 수 없이 많은 차가 존재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찻잎을 찌거나, 덖거나, 뭉치거나 하는 다양한 제다법의 원형이 중국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전통차라 생각하는 녹차의 경우, 현재와 같은 형태의 녹차가 만들어진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라고 한다. 요즘 우리가 즐겨 마시고 있는 녹차는 뜨거운 물을 바로 부어 마실 수 없기 때문에 물 식힘 그릇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 기록 어디에도 물을 식혀 차를 마셨음을 유추하게 하는 내용은 존재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유물로 남겨진 물 식힘 그릇도 찾아볼 수 없다.

오늘날 물 식힘 그릇을 사용하는 차는 한국의 녹차와 일본의 옥로 정도다. 식힌 물을 사용하는 녹차는 중국에서 일본으로 전파된 제다법 가운데 하나로,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 우리나라에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녹차가 유입되기 이전에는 전통 발효차를 마셨을 것으로 생각된다. 전통 발효차는 차를 우리는 과정이 단순하다. 끓는 물을 바로 붓거나 탕관에 차를 넣고 끓여도 떫고 쓴 맛이 별로 없어서 거부감 없이 마실 수 있다. 또 발효 과정에서 차의 냉한 성질이 사라져서 속을 편하게 한다.

 

귀한 기물과 향긋한 차가 함께 하는 시간.원행 스님과 함께 한 찻자리는 마음이 정화되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귀한 기물과 향긋한 차가 함께 하는 시간.원행 스님과 함께 한 찻자리는 마음이 정화되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매력이 다르듯, 차도 저마다의 특성이 있다
 

오늘 마신 금정산 범어사 대성암 수제 녹차인 녹정(綠晶)은 예전 녹차 제조법을 그대로 이어오고 있어서 대량 생산되고 있는 녹차와는 다른 깊은 맛을 낸다. 스님들이 직접 가꾸고 찻잎을 따서 숯불에 덖은 녹차로 일체의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자연 상태에 가깝게 재배하기 때문에 가장 옛날 맛에 가까운 녹차라고 할 수 있다. 차는 흔히 볶는다고 하지 않고 덖는다고 한다. 볶는 것과 덖는 것의 가장 큰 차이는 온도라고 할 수 있다. 차는 냉성 식물이기 때문에 그냥 먹으면 냉한 기운이 우리 몸에 축척된다. 가끔 차를 마시다 보면 약간 매운 맛이 나는 차가 있는데, 그런 차는 마시면 마실수록 속이 알싸한 느낌이 든다.

차를 만드는 과정에서 냉기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냉한 기운을 잡기 위해 고온에서 잘 볶아서 중성 식품을 만드는 것. 한 마디로 잘 덖은 차가 잘 만든 차, 좋은 차라고 할 수 있다. 세상에 맛없는 차는 없다.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매력이 다르듯이 차도 저마다의 특성이 있다. 향이 진하면 진한대로, 맛이 강하면 강한 대로, 단맛, 쓴맛, 떫은맛에도 나름의 개성이 담겨 있다. 그 맛의 차이를 인정하고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다 보면 모든 차를 맛있고 즐겁게 즐길 수 있다. 때와 장소, 함께 하는 이들의 마음가짐에 따라 맹물도 된장 푼 물도 얼마든지 좋은 차가 될 수 있다.
 

5 중국 의흥에서 나오는 흰색 흙인 백니에 유약을 입혀 만든 백니 백유 매화문 호로 청나라 후기에 만들어졌다. 6 독특한 용그림이 그려진 경태람 용문 잔탁은 명나라 작품이다. 7 청명헌의 고즈넉한 풍경. 이 곳에서 마시는 차 한 잔은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느낌이다. 8 초여름을 상징하는 싱그러운 꽃 수국을 흰 콩 앙금과 킨교쿠캉(錦玉羹)으로 표현했다.
5 중국 의흥에서 나오는 흰색 흙인 백니에 유약을 입혀 만든 백니 백유 매화문 호로 청나라 후기에 만들어졌다. 6 독특한 용그림이 그려진 경태람 용문 잔탁은 명나라 작품이다. 7 청명헌의 고즈넉한 풍경. 이 곳에서 마시는 차 한 잔은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느낌이다. 8 초여름을 상징하는 싱그러운 꽃 수국을 흰 콩 앙금과 킨교쿠캉(錦玉羹)으로 표현했다.

 

눈과 몸과 마음이 호사했던 귀한 시간

6월의 찻자리를 위해 사계 노정아 대표는 초여름을 상징하는 싱그러운 꽃 수국을 흰 콩 앙금과 킨교쿠캉(錦玉羹)으로 표현했다. 킨교쿠캉은 한천과 설탕으로 만든 화과자로 시간이 지나며 보라색과 푸른색을 넘나들며 변하는 수국의 빛을 형상화했다. 앙금은 흰 콩을 삶아 곱게 내려 달콤하게 조린 앙금으로 여름 화과자에 걸맞는 밝은 빛을 띄고 있다. '수국'은 영롱하게 빛나는 킨교쿠캉만으로도 만들지만, 달걀 흰자를 섞은 아와유키캉으로 만드는 버전도 있다.

이날의 문인사예 차회는 원행 스님이 직접 요리한 음식을 멋진 골동 기물에 담아 맛보고 다양한 기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차를 마시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마치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기물에 대한 설명과 차에 대한 설명을 들려주시는 원행 스님의 편안한 목소리와 더불어 몸과 마음을 정화시키는 듯한 차 한 잔과 향이 깃든 이 공간에 있는 이 시간이 더없이 행복하게 느껴졌다. 차와 예술, 차와 일상을 하나로 융합시키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원행 스님은 앞으로도 많은 이들이 옛사람들의 문화와 정취를 잃지 않고 살아가길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
 

청명헌

 

청명헌

청명헌(聽茗軒)은 들을 청, 차 명, 집 헌으로 차의 소리를 듣는 집이라는 뜻. 차를 공부한 지 45년, 차인(茶人)잡지를 26년 째 만들고 있는 김영희 국장이 한국의 차와 다구 등 우리의 차 문화를 알리기 위해 북촌에 마련한 공간이다.


취재 김홍미 기자 | 사진 양우영 기자 | 도움말 청명헌 | 참고 자료 다반사 (원행 스님, 하루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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