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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큰 폭 금리인상 없이 경제 연착륙 가능하단 의견 많아"
이창용 "큰 폭 금리인상 없이 경제 연착륙 가능하단 의견 많아"
  • 김경은 기자
  • 승인 2022.06.02 1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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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BOK 국제컨퍼런스' 개회사 [전문]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2일 "많은 분들이 경기침체 우려를 나타내는 반면 또 다른 측에서는 큰 폭의 금리인상을 하지 않고도 경제가 연착륙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2일 서울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열린 '2022년 BOK 국제컨퍼런스' 개회사를 통해 이렇게 밝혔다.

그는 인플레이션 진정 이후의 우리나라 경제 상황과 관련해 "저물가와 저성장 환경이 도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만약 그렇게 된다면 한국이나 여타 신흥국들이 무책임할 정도로 확실하게 완화적 통화정책을 지속하겠다고 약속해야만 하는 것인지 궁금하다"고 했다.

아울러 "지난 10여 년간 중앙은행의 실제 자산규모 변화를 보면 신흥국의 경우 그러한 사치를 누릴 여유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신흥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확장적 재정·통화정책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환율 절하나 자본 유출이 초래되지 않은 원인을 두고선 선진국이 훨씬 더 큰 규모의 자산매입에 나섰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 총재는 "향후 개별 신흥국이 구조적 저성장 위험에 직면해 홀로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사용할 경우에도 같은 결과가 나타날지는 의문스럽다"며 "대규모의 글로벌 유동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 코로나 위기 극복 과정에서와 비슷한 수준의 확장적 정책이 다시 이루어진다면 환율과 자본 흐름 및 인플레이션 기대에 미치는 함의는 사뭇 다를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자국의 저물가·저성장 국면에 대비한 신흥국만의 효과적인 비전통적 정책수단은 무엇인지 분명한 답을 찾기 쉽지 않으며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라고 했다.

다음은 이 총재의 '2022년 BOK 국제컨퍼런스' 개회사 전문.

내외 귀빈 여러분!

2022년도 한국은행 국제컨퍼런스에 참석하신 여러분 모두를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지난 2년간 열리지 못했던 BOK 국제컨퍼런스를 다시 개최하게 되어 매우 뜻깊게 생각합니다.

먼저 기조연설을 해주실 MIT대학교의 로버트 타운센드(Robert Townsend) 교수님과 BIS의 신현송 조사국장님, 그리고 모든 사회자, 발표자, 토론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컨퍼런스에도 통화정책 관련 연구에 큰 공헌을 하신 저명한 경제학자분들께서 많이 참석해 주셨습니다. 특히 컨퍼런스 개최를 위해 기획 단계에서부터 아낌없는 지도와 도움을 베풀어주신 토머스 사전트(Thomas Sargent) 교수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무엇보다 '가속도이론' 논쟁과 관련한 교수님의 1971년 논문을 우리 모두가 다시 한번 읽어보게 되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 학자들의 주장처럼 교수님의 논문은 밀턴 프리드먼의 1968년 전미경제학회(AEA) 회장 취임 연설문과 더불어, 인플레이션과 관련하여 보다 정교한 분석 틀을 제시하고 1970년대 '대(大)인플레이션'(Great Inflation)에 대해 경고한 대표적인 연구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높은 인플레이션에 직면해 있는 현재의 우리에게도 이들 논문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올해 컨퍼런스 주제인 '변화하는 중앙은행의 역할'은 최근의 경제여건 하에서 매우 시의적절하고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20여 년 가까이 이어져 온 저성장·저물가 기조 속에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노력해 온 정책당국은 급기야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보건위기까지 겪게 되었습니다. 위기 초기, 수요와 공급 측면에서의 충격이 함께 발생한 가운데, 특히 총수요 위축으로 원유 수요가 큰 폭 감소하면서 국제유가가 급락하였으며, 이는 인플레이션의 하락압력으로 작용하였습니다. 그러나 경제활동 재개로 인한 총수요의 회복은 경제 여러 부문에서의 공급 제약과 맞물리면서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수개월 동안 여러 국가에서 근원 인플레이션과 장기 기대인플레이션이 상승하여 목표 수준을 상당폭 상회하는 모습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경기침체 우려를 나타내는 반면 또 다른 측에서는 큰 폭의 금리인상을 하지 않고도 경제가 연착륙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발생 가능한 여러 경제상황 하에서 중앙은행의 단기적 대응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더 나아가서는 불확실성 하에서의 통화정책 결정을 위해 필요한 분석 체계를 어떻게 구현해 나갈 수 있을지, 오늘 이 자리를 통해 여러분들의 통찰과 지혜를 구하고자 합니다. 여러 위험 요인들과 이를 완화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 다양한 견해와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역사적으로 중앙은행의 역할은 금융·경제 위기 등 큰 변혁을 거치면서 변화해 왔습니다. 먼저 1930년대 대공황을 계기로 통화정책의 거시경제 안정화 기능이 부각되었습니다.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높은 인플레이션을 경험하면서는 물가안정이 중앙은행 본연의 역할로 자리매김하였으며, 국민으로부터의 신뢰와 정부로부터의 독립성 확보 과정에서 이러한 인플레이션 파이터로서의 역할은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금융안정 기능이 강조되는 가운데, 중앙은행이 고용이나 성장에 보다 중점을 두고 통화정책을 수행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졌습니다. 월가점령시위에서 보듯 '대 침체'(Great Recession)와 이로 인한 고용부진 및 소득격차 확대 등이 중앙은행에 대한 비난과 함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로 이어진 것입니다. 한편 물가의 지속적인 목표수준 하회는 정책체계로서의 물가안정목표제에 대한 신뢰를 저하시킨 가운데, 정책금리가 실효하한에 다다르자 중앙은행은 양적완화 등 비전통적 정책수단까지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위기 이후로는 경제 양극화가 확대되고, 디지털·친환경 경제로의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중앙은행의 역할 범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더욱 넓어졌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중앙은행은 정책 수행에 있어 통화정책뿐만 아니라 재정정책과 구조개혁 등 경제정책 전반을 '종합적'(comprehensive)으로 살펴보고 서로 '조화'(consistent)를 이루면서 '조율'(coordinated)해 나가는 데 보다 중점을 두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시대에 따라 변화해 온 중앙은행의 역할이 또 다른 전환점에 서 있음을 깨닫고 있습니다. 확장적 재정정책과 더불어 저금리 및 비전통적 통화정책으로 쌓인 수요압력에다 팬데믹과 전쟁으로 인한 공급병목 현상 등 여러 요인들로 인해 1970년대와 같은 높은 인플레이션이 나타나면서, 중앙은행의 역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앙은행의 역할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볼 수 있을 것입니다. 첫 번째는 지금의 경제상황이 중앙은행에게 있어 단순한 과거로의 회귀를 의미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즉,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처럼 물가안정이라는 기본 역할에만 집중하면 되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지금의 인플레이션이 진정되었을 때 코로나 위기 이전과 같은 저성장·저물가 기조가 다시 올 것인지, 그리고 온다면 지난 10여 년간 사용한 통화정책을 그대로 사용하면 되는지, 아니면 최근의 예상치 못한 높은 인플레이션을 반영하여 이를 보완하거나 새로 개발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최근 주요 논제로 떠오르고 있는 디지털 혁신이나 기후변화 대응의 관점에서 쉽게 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들 이슈에 대한 대응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며, 앞으로 이를 위한 중앙은행의 역할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각국 중앙은행도 이러한 인식 하에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 도입을 추진 중이거나 연구를 본격화하고 있으며, 녹색성장을 위해서도 정책수단의 개발과 이행을 구체화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중앙은행의 사회적 책임 또한 그 요구가 계속될 것입니다. 팬데믹의 충격과 그로부터의 회복이 계층별·부문별로 불균등하게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양극화 현상은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더 심화할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특히, 지난 10여 년간 중앙은행의 비전통적 통화정책 수단 활용과 이 과정에서 나타난 자산가격 상승에 대한 부정적 인식 속에, 중앙은행이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입장에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려 한다 하더라도, 소득 양극화와 부문 간 비대칭적 경제충격의 문제들을 과연 통화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두 번째 질문인 이번 인플레이션이 진정되었을 때 장기 저성장의 흐름이 다시 나타날 것인지, 만약 그렇다면 이전에 활용했던 정책들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선진국을 위시하여 한국, 태국, 그리고 어쩌면 중국 등 인구고령화 문제에 직면해 있는 일부 신흥국에게 있어 저물가와 저성장 환경이 도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폴 크루그먼 교수가 선진국 중앙은행에게 조언한 것처럼, 한국이나 여타 신흥국들도 "무책임할 정도로 확실하게 (완화적 통화정책을 지속하겠다고) 약속"해야만 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지난 10여 년간 중앙은행의 실제 자산규모 변화를 보면 신흥국의 경우 그러한 사치를 누릴 여유는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G7 국가의 중앙은행 자산규모는 2007∼2020년 중 GDP 대비 3.8%에서 31.0%로 크게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신흥국의 경우 4.0%에서 6.2%로, 역사적으로 매우 높은 수준이기는 하나,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증가에 그쳤습니다. 이는 무엇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신흥국의 경기부진 정도가 선진국에 비해 크지 않았기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기축통화국이 아니라는 점도 신흥국 입장에서 재정이나 통화정책을 마냥 확장적으로 운용할 수 없었던 주요 제약요인이었습니다. 선진국과 같은 비전통적 정책수단 활용은 자칫 통화가치 절하 기대로 이어져 자본유출 가능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인플레이션 기대 안착에 있어서도 선진국에 비해 신뢰성의 제약이 더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따라 신흥국은 통화정책 운용에 있어 보다 신중하고 보수적으로 행동해야만 했습니다.

그 결과로, 과거 평균에 비추어 보았을 때, 지금 선진국이 직면하고 있는 고인플레이션 상황까지는 이르지 않게 되었지만 이를 다행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신흥국의 경우 선진국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확장적 재정·통화정책과 더불어 일부 국가에서는 그간 터부시되어온 국채 직접 인수에까지 나섰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심각한 환율 절하나 자본 유출이 초래되지는 않았는데, 이는 신흥국의 자산매입 등 비전통적 정책수단들이 금융위기나 코로나 위기 등 글로벌 공통충격에 대한 전 세계적 대응 차원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글로벌 유동성이 풍부한 가운데 선진국에서 훨씬 더 큰 규모의 자산매입에 나섬으로써 국제금융시장에서의 신흥국에 대한 불이익은 크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향후 개별 신흥국이 구조적 저성장 위험에 직면하여 홀로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사용할 경우에도 같은 결과가 나타날지는 의문스럽습니다. 대규모의 글로벌 유동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 코로나 위기 극복 과정에서와 비슷한 수준의 확장적 정책이 다시 이루어진다면 환율과 자본 흐름 및 인플레이션 기대에 미치는 함의는 사뭇 다를 것입니다. 자국의 저물가·저성장 국면에 대비한 신흥국만의 효과적인 비전통적 정책수단은 무엇인지 분명한 답을 찾기 쉽지 않으며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이기도 합니다. 또한, 오늘 이 자리는 양적완화가 기간프리미엄 등을 통해 금융시장을 어떻게 왜곡시키는지, 신흥국의 경우 정책목표 달성을 위해 외환시장 개입이나 자본통제 등의 다른 비전통적 통화정책 수단 활용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도 논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내외 귀빈 여러분!

중앙은행은 진화하는 생물체와도 같은 존재입니다. 300년이 넘게 중앙은행이 걸어온 역사는 바로 끊임없는 진화의 과정입니다. 중앙은행의 책무에 대한 해석과 이를 달성하는 방식이 끊임없이 진화해 왔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쪼록 이번 컨퍼런스가 우리 앞에 놓인 여러 도전에 대한 생각과 고민을 서로 공유함으로써 코로나 위기 이후의 대전환기에 중앙은행이 사회적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다양한 측면에서의 풍부한 논의가 이루어지길 바라며 다시 한번 이번 컨퍼런스가 성공적인 결실을 맺기를 기대합니다.

 

[Queen 김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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